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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저자 희정의 글을 <일할 자격>으로 만났다. 일터의 정상성을 질문하고 노동할 자격을 규정짓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책이어서 깊이 가슴에 남았는데 또 다른 책으로 만나니 기뻤다. 그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노동자, 쓰러지다>,<아름다운 한 생이다>,<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등등 제목만으로도 어떤 글을 써왔는지 보인다. 자신을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고 하는 저자의 글이 나는 좋다.
1부 균형 잡는 몸 에서는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로 일하는 베테랑을 소개한다.
2부 관계 맺는 몸 에서는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로 일하는 베테랑을 소개한다.
3부 말하는 몸 에서는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으로 일하는 베테랑을 소개한다.
베테랑들이 말하는 베테랑이란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는 해 준 것이 없는데 이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어서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긴 시간과 노력들을 보니 그들의 자부심은 당연하다 못해 존경스럽다.
하나하나 소중한 노동자인 우리. 안전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고 제때 쉬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생기는 질병들, 일로 인한 몸의 변형을 고스란히 개인이 안고 가는 모습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복지가 보장된 사회에 살았다면 이렇게나 힘들게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를 보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의 안정이 불안하기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개인이 책임지지 않고 연대하여 개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는 살 수 없으니까. 우리는 노동자 이전에 사람이니까.
이들 중 인상 깊었던 베테랑은 조산사 김수진이다. 산모를 환자가 아닌 ‘출산의 주체’가 되도록 조력하고 이끄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그의 말에 뭉클해졌다. 첫 아이가 예정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유도분만을 하자는 병원에 말에 입원해서 유도제를 맞고 2박 3일 만에 아이를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했다. 5박 6일을 입원했고 회복은 더디고 출산의 경험은 내게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다. 눈 뜨면 관장하고 유도제 맞고 내진하면서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고 저녁이면 밥 먹고 자고 다시 일어나면 도돌이표. 조산사 김수진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출산 문화에 의료가 깊이 개입했고 병원에 많이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산모는 환자가 아니다.
“이 직업을 유지하는데는 어떤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한가요?” (p.8)
베테랑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장인, 달인, 고수라고 불러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p.9)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이다. 이른 아침 작업장, 주방, 목욕탕, 출산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성실은 성실하게 몸에 새겨진다.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실이 자신과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살린다고 믿지만, 몸에 성실히 새겨진 노동의 기록은 대가를 요구한다. (p.12)
자신만의 원칙이 무엇이건, 모두 견디고 버티고 인내하며 꼴을 갖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었다.
그 ‘가짐’은 때로 이해의 영역을 넘어가기도 했다.
노동은 내내 헤아리고, 읽어 내리고, 귀를 여는 일이었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연결된 노동의 속성으로 인해, 나는 그가 다채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것을 본다. (p..13~14)
이렇게 한길로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고맙다는 그 말이 좋았다.
한 사람이 한길로 살아온 여정을 쫓으며 건전지가 아닌 사람의 존엄을 본다. 수모와 존엄 사이에서 단련되고 쌓여 가는 숙련의 질감을 더듬었다. (p.73)
“법에 우리는 없어요. 한국에서 로프공은 법적으로 자격증이 필요 없는 직종이라. 안전 교육도 따로 없죠.”(p.97)
그렇다. 일은 좋아서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잘살고 싶어 한다. 이 성실하고 재주 많은 로프공이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을 베테랑의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p.98)
“저는 오랫동안 일하면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별것 아닌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베테랑을 꿈꾸거나 이미 베테랑이 되었다며 내 앞에 앉아 자신의 일을 설명해주던 사람들이 입 모아 하는 말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잘 일하고 싶다.(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