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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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애달프고

가장 단순한 소설이다.”

-브라이언 보이드 (오클랜드 대학교 석좌교수, 나보코프 연구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책은 <롤리타>를 읽어본 게 전부인데 책 모임으로 만났을 때도 꽤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러시아 이민자로 미국의 대학에서 러시아어 강의를 하는 프닌.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표현되고 영어도 완전치 못하다. 일상에서도 실수 연발인 그를 만나봤다. 첫 장면에 기차를 잘못 탄 프닌은 그것 조차 모르는 상태이다! 지성의 장인 대학 안에서 조롱과 은근한 멸시, 교묘하게 그 안에서 배제당하는 프닌. 언어적 한계로 인해 9년이나 종신교수가 되지 못하고 결국 그 대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 주변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프닌의 시선과 그들이 바라보는 프닌은 참 다르다. 교양인이라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 안에 나의 모습도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이민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아직 시혜적이지 않은가. 나와 다른 이를 구분하고 은근한 차별을 하는 지금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음이 느껴져서 씁쓸했다.

 

다양한 프닌어들이 소개되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으니 어느새 어설픈 매력의 프닌에 중독된 듯하다. 그렇지만 결국에 대학을 떠나게 되는 프닌의 모습이 애달프고 슬프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있고 마지막쯤 나보코프가 서술자로 나와서 더 혼란스러웠다. 차근차근 읽어야 할 책이었다. 재독해야 할 책. 나에게 나보코프는 넘기 어려운 산이었지만 가장 단순한 소설이라고 하니 나는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뿐.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슬픔을 그냥 좀 가지고 있게 내버려둘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짜로 소유한 것이 슬픔 말고 뭐가 있습니까?”(p.76)

 

누가 저 사람의 개성을 원할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 세상은 티모페이의 원더풀한 개성 따위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내팽겨치겠지. 세상이 원하는 건 기계야, 티모페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p.242)

 

그때 소형 세단이 과감하게 앞 트럭을 추월했고, 그렇게 마침내 자유로워져서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빛나는 도로가 은은한 안개에 감싸여 황금색 실처럼 가늘어지는 머나먼 그곳-끝없이 겹쳐진 산들이 아름다운 원경이 되어주는 곳,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누군가는 볼 수 있었다. (p.289)

 

@moonji_books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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