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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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91일 리히터 규모 7.9의 위력을 가진 일본의 관동대지진이 시작되었다.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일본에서 당시에 조선인들에게 가해졌던 처참한 살육의 현장으로 책은 우리를 안내한다.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의 사건으로 현재의 사람이 투입되어 역사 속 사람들을 살린다. 큰 역사의 줄기는 바뀌지 않았으나 저자는 이를 통해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이뤄지는 것을 염원하는 듯 느껴졌다. 1923년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확산시켰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태평양이라는 우물에 독을 타려 하고 있다. 진정 어린 사과는 없고 안하무인의 당당함으로 버젓이 환경 범죄를 저지르는 일본의 작태에 너무 화가 난다.

 

자경단과 경찰이 민관합작으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살육을 강행하고 심지어 자국민을 살해해도 가볍게 넘어갔다니. 이 책을 읽는 동안 화가 나서 덮고 속상해서 덮기를 몇 번이나 했던지. 책 속의 두 청년이 타임슬립과 타임루프를 통해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사과와 화해가 있었기에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이 책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본다. 말로만 듣던 관동대지진 현장의 처참한 모습들이 글로써 다가왔을 때 나는 절망스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이 사건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이야기로 만들어 경고를 준 저자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이 목소리는 전해져야 하고 계속 되어야 한다. 끝까지.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2023년의 목소리들이 미래에 제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이 수없이 쓰러졌다. 쓰러진 이들은 모조리 조선인이었다. 무기를 든 일본인 그림자가 끊임없이 조선인을 살육해 강 아래로 떨어뜨렸다. (p.112)

 

지진이 발생한 91일 당일, 경찰이 주도해 유언비어를 공식적으로 확산시키기 전부터도 조선인을 공격하는 이들은 여기저기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2일에는 저 조직화되어 간토 지역에서 1,593개의 자경단이 일제히 활동을 개시했다. (p.117)

 

어제와 그제 아라카와강 근처의 피난민들은 자연재해가 준 생과 사의 갈림길을 만나 두려움에 떨었고, 어둠 속에서 낯선 이의 행동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고작 하루 이틀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적의와 정의감이 섞여 타자인 악을 단죄하겠다는 일그러진 사명감에 뭉쳐 있었다. 이 순간, 우리 쪽이라고 부를 수 없는 타자는 모조리 악이었다. (p.172)

 

경찰의 공식적인 발표로 조선인 폭동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주요 신문도 발행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피난민들이 전국 구석구석에 전한 소문은 지역 신문의 호외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던 사람들조차 뒤로 물러섰다. (p.188)

 

제한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확신한 자들이 비틀린 분노를 마음껏 폭발시켰다. 스스로 의롭다 믿었고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호송 중에 사적 복수로 폭력을 쓰기도 했는데 말리는 사람보다는 그의 울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공권력마저 이들을 막거나 처벌하기보단 독려했다. 이참에 살의를 드러내도 단죄하지 않겠다는 듯했다. 흐르는 피가 땅과 강을 적시는 걸 보며 모두가 안도했다. 박수가 터졌고 만세 소리가 울렸다. 공권력이 민간에 위탁한 불의와 광기가 살육으로 터져 나왔다. (p.192)

 

1923년 민관합작 학살은 국가와 시민 사이의 괴리감을 급격히 줄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전통적인 의식은 이제 일본이라는 국가에 속했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조선인을 적으로 설정해 탄생한 국민화 전략이었다. (p.199)

 

살육공동체, 저 평범한 일본인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 달출은 더 무서웠다. 저들은 피에 굶주린 살인귀도 아니었고 병적으로 미친 사람들도, 도덕과 양심도 없는 패악한 악귀도 아니었고,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도 아니었다. 지나가다 만났을, 어쩌면 친구나 동료였을, 어쩌면 가족이었을, 어쩌면 함께 싸웠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p.244)

 

@rabbithole_book 좋은 책과의 인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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