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서점 - 똑똑한 여행자들의 도쿄 재발견 Tokyo Intelligent Trip 시리즈 1
현광사 MOOK 지음, 노경아 옮김 / 나무수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하나로 통일될 듯 하다. 바로 광화문 교보문고다. "왜?" 라고 묻는다면 또한 답은 한 가지. "책이 많고 서점이 크니까."

사실 책이 많기로 따지면 인터넷 서점이 최고 아닐까. 바로 재고 여부가 판단되고 심지어 다른 인터넷 서점의 재고 여부까지 알려준다. 하지만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책은 아무래도 서점에서 보고 사는게 좋지." 그래서 사람들은 간다. 초대형 서점인 광화문 교보문고나 그 바슷한 서점들로 말이다. 실제 주말이나 휴일의 광화문 교보문고는 '한국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북새통이다.

<도쿄의 서점>을 읽어보면 몇 가지 사실에서 놀라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점은 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쉽게 말해 동네 서점이다. 그런데 왜 도쿄를 대표하는 서점인걸까? 도쿄를 대표하는 서점이라면 우리네의 기준으로는 위치나 규모로 봐서 '신주쿠 기노쿠니야'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서점들은 모두 '작지만 강한' 서점이다. 그리고 '편집 매장' 이 대부분이다. '편집 매장'은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인데 쉽게 말해서 대형 서점처럼 신간위주의 배치가 아니라 작은 매장이지만 최대의 효율이 나도록 책을 엄선하여 진열하는 것을 말한다. 책을 진열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매장이 있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서점 나름의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여행과 도시에 관한 책을 취급하는 "도쿄즈 도쿄"에서는 홋카이도 코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시코쿠 코너에는 이시이 신지의 <4와 그 이상의 나라> 를 진열하는 식이다. 눈치 챘겠지만 하루키의 소설책 배경은 홋카이도고 이시이 신지 책의 배경은 시코쿠라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서점 "비앤비"의 경우는 상품 진열을 전부 내용에 따른 구분, 즉 '문맥 진열'을 따르고 '이 서가에는 아무래도 이 책이 필요하다'라고 판단되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구해온다고 한다. 공간에 대한 제약은 있지만 시간을 넘나들고 오너와 직원이 정말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 잘 알아야만 서점을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그대로 고객들에게 전해져서 단골 손님을 만들게 된다.

이 서점들에게는 미래형 서점이라는 말도 잘 어울린다. 사실 책을 좋아하다 보면 하나의 책이 다른 책을 부르고 몇 개의 책은 아주 긴밀한 연결고리 같은 것을 가지기도 한다. 연관된 책만 배치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소품을 같이 두고 판매하거나 식물과 식물재배에 대한 책을 같이 진열하기도 한다. 서점에 가서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아이디어나 신선한 기운도 느낄 수 있다면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책을 보니 이런 '편집 매장'만을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BACH'라는 회사도 있고 서점 소개 사이사이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서점 기획자'라는 직함도 보인다. 한국에는 이런 직업이 아직 없는 듯하다. 사실 한국에서 동네 서점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지 않은가. '도쿄의 서점'에 나오는 개성있고 사랑받는 서점은 아직 우리에게는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듯, 이런 편집 매장, 독특하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서점을 어느 날 직접 만나게 된다면 그 매력에 푹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이런 서점 좀 우리 동네에 만들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너무 오버인가?

 

< 인상깊은 구절 >

P.023  B&B에서 판매할 책은 직원들이 협의하여 선정한다. 신간이나 화제의 책이 아니라도 '이 서가에는 아무래도 이 책이 필요하다'라고 판단되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구해온다.통상적인 입하 경로로 구하기 어려울 때는 발매원인 출판사, 지방의 중개회사나 헌책방까지 동원하여 끝끝내 찾아낸다.

P.023 개점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에 관련된 이벤트를 개최한 것도 그렇고, 그야말로 '미래형 서점'답다.

P.082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진열장은 '홋카이도, 도후쿠, 간토' 등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기념품점으로는 보기 드물게 커다란 책과 사진집까지 대담하게 진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내에서 <바람의 마타사부로>를 읽고 나서 도호쿠를 구경한다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책은 그렇게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죠."

P.093 "인터넷이 생활에 깊이 침투한 결과, 정보를 전하는 미디어로서 책의 역할은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서만 전할 수 있는 것도 있죠. 그런 주제에 진지하게 임하는 출판사의 책은 역시 매력적입니다. 그런 책을 직접 펼쳐서 읽을 만한 장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P.093 "지금 출판업계와 서점업계는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오프라인 서점만의 매력과 의의를 인정하는 독자도 분명 있습니다. 이 매장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었죠. 책의 매력을 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그러니 서점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그 방법을 계속 바꾸어야 합니다."

P.097 "처음에는 디자인과 겉표지만 보고 상품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그 소장품을 보신 어떤 분이 프랑스 문학자 가지마 시게루 선생의 <파리 5단 활용>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시더군요. 그 책을 보고 파리에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도시민의 소비를 촉진하는 다양한 장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와 거의 비슷하죠. 깜짝 놀란 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즉 현대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전환기인 지금, 서점을 찾는 고객들 역시 20세기의 방향을 주도한 사상에 어느 때보다도 깊은 주의를 기울영 할 것 같습니다."

P.110 '독서'는 결코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책에는 읽자마자 효과가 나타나는 즉효성도 없고요. 그러니 마음에 와 닿는 책을 발견하면 '잘 씹어가며' 읽어서 내 피와 살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생활에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나타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책은 비효율적인 미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P.110 설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귀엽고 멋진 선어!>을 동시에 읽는다 해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또 책을 읽다가 도중에 그만두어도 괜찮습니다.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사실 책을 많이 읽을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최근까지도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와 성경을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계속 곁에 두고 지낼 만한 몇몇 책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풍요로운 독서 생활을 즐기는 셈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