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권지은 지음 / 부크럼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살다 보면 유난히 듣고 싶은 말이 생기는 날이 있다.
괜찮다는 말보다 먼저 알아봐 주는 말이 필요하고, 힘내라는 말보다 그동안 많이 애썼다는 말이 먼저 닿아야 하는 날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순간에 조용히 곁에 앉아주는 책이다.
​
무너진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고, 울고 싶은 마음을 서둘러 닦아내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나를 가만히 바라봐 주며, 잘하고 있다고, 잘 나아가고 있다고, 너무 늦은 것도 너무 부족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
표지에 놓인 복숭아를 보며 마음도 참 복숭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작은 말 하나에 쉽게 멍이 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은 오래 물러져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걸 예민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에도 이유가 있고, 오래 서운했던 마음에도 그만한 시간이 있었음을 다정하게 짚어준다.
​
읽는 동안 가장 크게 남은 건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나도 많은 순간 괜찮은 척을 먼저 했다.
속으로는 힘들었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했고, 서운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누구보다 내 편이 필요했으면서도 혼자 버티는 쪽을 택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거창한 조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 많이 애썼다는 말, 여러 일 사이에서 잘 버텨 줘서 고맙다는 말, 앞으로도 변함없이 응원한다는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
사랑에 대한 문장들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랑은 늘 예쁘고 환한 모습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후회가 남고, 때로는 미련이 남고, 때로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사랑했던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계산 없이 마음을 내어준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관계에 있어 최선을 다해 본 사람이 후회가 적다는 문장을 읽으며, 오래 길게 아프더라도 마음을 다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덜 미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위로가 과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너무 쉽게 던지지 않고, 먼저 아팠던 시간을 인정해 준다.
모든 건 결국 다 변한다는 말도 무책임하게 들리지 않았다.
​
평생 회복하지 못할 것 같은 이별도, 죽도록 힘들었던 날도, 살다 보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지나간다는 걸 조용히 알려준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
지금 당장 괜찮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 마음도 조금은 다른 얼굴을 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
책 속에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식물이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듯, 사람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 특히 좋았다.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곳에서 끝까지 인정받으려 애쓰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을 많이 닳게 한다.
​
충분히 애쓴 나의 노력과 마음을 귀하게 받아들여 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계속 작아지게 만드는 자리에서 버틸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웠다.
​
읽다 보면 이 책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편지 같기도 하고, 결국 나 자신에게 보내는 답장 같기도 하다.
다정한 문장들이 많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다.
상처와 후회와 외로움을 지나온 사람이 건네는 말이라 더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긋게 되고, 어느 문장 앞에서는 오래 멈추게 된다.
그 멈춤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
책을 덮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간까지 내가 알아봐 주면, 그 마음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았다.
​
이 책은 지친 마음에게 필요한 에세이 도서다.
관계에 마음이 다친 사람, 혼자 애쓰느라 지친 사람,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오래 서 있던 사람, 괜찮은 척하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에세이다.
​
읽고 나면 큰 해답을 얻었다기보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나답게 버틸 수 있는 말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오래 곁에 두고 마음이 소란한 날마다 다시 펼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미, 퀘렌시아
온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표지의 차분한 색감부터 마음이 조용해졌다.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이 책은 바쁘게 읽고 넘기는 소설이 아니라, 잠시 멈춰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퀘렌시아라는 말이 주는 느낌도 좋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어쩌면 내가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던 마음의 쉼터가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청연재에 가보고 싶어졌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고, 마음공부를 배우고, 현묘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읽는 동안 계속 그런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천천히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느낌보다 조용한 상담을 받는 기분에 가까웠다.
​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뜨끔했고, 어떤 문장은 오래 붙잡고 싶을 만큼 다정했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었고, 실제로 읽다가 멈춰서 같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게 되었다. 그냥 좋은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하고 지나온 마음, 설명하지 못해 덮어 둔 감정, 나도 모르게 참아 온 울음 같은 것들이 문장 사이에서 조용히 건드려졌다.
​
이 책은 삶의 고통을 거창하게 해결해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고통은 끝내 정확히 설명되지 않고, 어떤 질문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위로가 되었다.
​
우리는 늘 답을 찾아야 하고, 괜찮아져야 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꼭 지금 모든 것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울어도 된다고.
감정은 억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
나는 특히 현묘라는 인물이 좋았다.
누군가를 다그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상대가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현묘에게 상담받고 싶어졌다.
내 마음속에 엉켜 있던 말들을 꺼내 놓으면, 현묘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말로 내가 놓치고 있던 마음의 방향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위로가 억지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내라는 말보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말이 더 깊게 닿을 때가 있다.
빨리 괜찮아지라는 말보다 아직 아파도 된다는 말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왔다.
아픈 사람에게 빨리 걸으라고 하지 않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르라고 말해 주는 책이었다.
​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퀘렌시아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가장 편안했는지,
누구 앞에서 가장 나다웠는지,
어떤 순간에 숨을 쉬었다고 느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장소가 꼭 바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쉼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 잘 맞는 소설이다.
큰 사건과 빠른 전개를 기대한다면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장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책이다.
​
나처럼 책을 읽다가 자주 멈추고, 밑줄 긋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는 독자라면 더 깊게 닿을 것 같다.
​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을 조금 덜 몰아붙이게 되었다.
상처를 없애려고만 하지 않고, 그 상처와 함께 앉아 있는 법을 배운 기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해 준 책으로 남았다.
청연재라는 공간도, 현묘의 말들도, 퀘렌시아라는 단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이빙 타임 ㅣ 몸쓰기 시리즈 7
김강윤 지음 / 라라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냥 보는 바다가 아니라 직접 몸을 담그는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수영을 좋아하고 잠수해서 전복도 잡을 수 있을 만큼 물속에 들어가는 감각을 좋아한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된 수영을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늘 마음 한쪽에는 스쿠버다이빙을 꼭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바닷속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조금은 알고 있기에 이 책을 더 궁금한 마음으로 펼치게 되었다.
​
처음에는 다이빙에 관한 기술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스쿠버다이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었다.
​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삶을 어떻게 다시 보게 만드는지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
작가는 소방관이자 스쿠버다이빙을 오래 사랑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글에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의 설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진심이 담겨 있다.
​
바다는 멀리서 보면 잔잔해 보인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 보면 수면과 수중은 다르고 얕은 곳과 깊은 곳도 다르다.
​
보이는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곳이 바다다.
이 책은 그 바다의 성질을 삶과 자연스럽게 이어낸다.
​
살다 보면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여도 마음 안쪽에서는 조용한 파도가 계속 출렁일 때가 있다.
​
괜찮은 척해도 사실은 숨이 가쁠 때가 있고,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계속 버티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이 책은 무작정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숨을 고르고, 몸에 힘을 빼고, 지금 있는 자리를 먼저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내가 가장 오래 붙잡은 부분은 다이빙의 느림이었다.
​
나는 뭐든 빨리 해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었다.
일도 빨리 익혀야 했고, 병원에서 오래 일할 때도 책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렸고, 퇴사하고 나서야 내가 정말 숨 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느림이 더 깊게 들어왔다.
​
물속에서는 서두를수록 공기를 빨리 쓰고 몸이 먼저 지친다.
​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려고 힘을 꽉 주면 오히려 나를 지키는 힘부터 사라진다.
​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몰아붙일 때, 필요한 건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안정된 호흡일지도 모른다.
​
작가는 바닷속에서 기다림을 배웠고, 멈춤을 배웠고, 천천히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
그 말이 참 좋았다.
다이빙은 아래로 내려가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시 올라오는 일이다.
삶도 가끔은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둡고 낯설고 무서운 시간 속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호흡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바다를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아서다.
물속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감동적인 풍경 뒤에는 안전과 훈련과 기다림이 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믿음직했다.
​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제대로 배우고 천천히 익혀야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쿠버다이빙을 더 배우고 싶어졌다.
​
무작정 멋진 바닷속을 보고 싶은 마음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 어떻게 내 몸을 믿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싶어졌다.
​
바닷속 그림 같은 풍경을 보는 감동은 분명 크다.
하지만 그 풍경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조급함을 내려놓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이 책은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좋고, 아직 다이빙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좋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속의 고요함이 주는 위로를 느낄 수 있다.
​
요즘 너무 빨리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싶은데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시작하기 전의 떨림도 괜찮다는 마음을 받을 수 있다.
​
나에게 이 책은 다이빙을 미리 배우는 책이면서 동시에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다.
​
물속에서는 빨리 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삶에서도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나를 잃지 않고 오래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젠가 제대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게 된다면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려가고,
천천히 둘러보고,
천천히 올라오고 싶다.
​
그 느림 속에서 바다도 보고 나도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나무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 책은 나무보다 사람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무의 생김새나 숲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머무는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는지 묵직하게 묻는 책이었다.
​
진재운 작가는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오랜 시간 자연과 생명,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기록해온 사람이다.
그런 시선으로 만난 한 여인의 삶이 이 책 안에 깊게 담겨 있다.
​
책 속 여인은 나무를 단순한 식물로 보지 않는다.
나무마다 다른 사투리가 있고, 숲에도 저마다의 언어가 있으며, 사람은 그 앞에서 자신이 믿어온 지식과 속도와 소유를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나무가 다른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
사람은 늘 비교하며 산다.
누군가는 더 빨리 가고, 누군가는 더 많이 갖고, 누군가는 더 멋진 이름을 남기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
나도 살아오면서 내 자리와 내 속도를 믿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남들이 정해놓은 안정적인 길과 보기 좋은 삶의 기준 앞에서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
크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느리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꽃보다 그늘을 먼저 내어주는 나무도 있다.
그 모든 나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 속 여인은 이름 대신 숲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 부분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흔적이 꼭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누군가에게 쉬어갈 그늘을 남기는 일, 누군가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숲을 남기는 일,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더 오래 남는 삶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문장 하나를 읽고도 자꾸 멈추게 되는 책이었다.
​
나무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의 삶을 말하고, 숲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
특히 죽음과 남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무겁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삶이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고, 남은 시간을 더 진하게 살아내는 태도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
나무는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존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속도만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삶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오래 바라보고 돌보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
이 책을 읽고 나니 숲을 걷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았다.
이전에는 나무를 풍경처럼 지나쳤다면, 이제는 나무마다 저마다의 시간이 있고 상처가 있고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한 사람의 삶을 다 알 수 없고,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
나무의 노래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좋지만,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깊게 닿을 책이다.
​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맞는 책이다.
​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오래 남을 책이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무가 아니라 나를 읽었다.
그리고 내 삶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뿌리내려도 괜찮겠다는 조용한 용기를 얻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별들의 무희가 시작되고
정차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부터 밤하늘 같은 색감에 마음이 먼저 갔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섞인 표지가 참 예뻤고, 제목에서부터 시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별, 무희, 시작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으니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사랑, 기도, 돈, 성공, 가족, 희망 같은 단어들이 처음에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설정이 참 인상 깊었다.
말은 처음부터 상처가 아니었고, 사랑은 처음부터 명령이 아니었고, 걱정은 처음부터 통제가 아니었다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
읽다 보면 내가 평소에 쉽게 쓰던 말들이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순간도 생각났다.
걱정한다는 말로 상대를 위한다 했지만, 사실은 내 기준에 맞추고 싶었던 마음도 떠올랐다.
사랑한다는 말 안에 내 뜻대로 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숨어 있던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
이 책은 말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느 순간 내 뜻대로 해가 되고, 걱정한다는 말은 너는 틀렸다가 되고, 괜찮다는 말은 울음을 덮는 말이 된다.
돈은 사람 사이를 흐르는 길이 아니라 사람 위에 앉은 왕이 되고, 성공은 자기답게 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남보다 높이 올라가는 일이 된다.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단어들이 이렇게 다시 보이니 마음이 꽤 묵직해졌다.
​
좋았던 건 이 책이 어렵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문장은 차갑지 않았다.
시장 골목, 밥상, 병원 대기실, 장례식장, 회사 회의실, 가족 단체방 같은 현실적인 공간들이 함께 나오면서 이야기가 멀리 떠 있지 않았다.
​
별과 밤의 이미지로 시작하지만 결국 도착하는 곳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자리였다.
특히 몸에 대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말이 생기기 전에도 몸은 떨릴 수 있고, 발끝은 방향을 가질 수 있고, 손끝은 부름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
말보다 먼저 몸이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
병원 대기실에서 잡는 손, 장례식장에서 말없이 건네는 물, 식탁 앞에 밀어 주는 반찬, 화해하고 싶지만 말이 안 나와 문 앞에 놓는 국그릇 같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몸은 오래된 언어라는 말이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났다.
살아 있을 때 더 자주 고맙다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날들도 생각났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어떤 말은 오래 남아 마음속에서 계속 자리를 찾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
​
이 책은 누군가에게 화려한 위로를 건네는 책은 아니다.
대신 오늘 하나의 말을 다르게 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오늘 고맙다고 말할 수 있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어도 말 하나가 달라지면 관계의 방향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남긴다.
​
문장들이 시처럼 흘러서 천천히 읽기 좋았다.
​
줄거리만 빠르게 따라가는 책이라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를 붙잡고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고,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내가 오늘 쓴 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 책이었다.
​
좋은 말을 잃어버렸지만 아직 다시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닿았으면 좋겠다.
​
사랑한다는 말이 어려워진 사람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이 늦어버린 사람에게도,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
우리가 잃어버린 단어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좋은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이다.
​
『별들의 무희가 시작되고』는 말에 관한 소설이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누군가를 살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작게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묻는 책이다.
​
읽고 나니 오늘 내가 하는 말 하나를 조금 더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고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