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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퀘렌시아
온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표지의 차분한 색감부터 마음이 조용해졌다.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이 책은 바쁘게 읽고 넘기는 소설이 아니라, 잠시 멈춰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퀘렌시아라는 말이 주는 느낌도 좋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어쩌면 내가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던 마음의 쉼터가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청연재에 가보고 싶어졌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고, 마음공부를 배우고, 현묘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읽는 동안 계속 그런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천천히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느낌보다 조용한 상담을 받는 기분에 가까웠다.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뜨끔했고, 어떤 문장은 오래 붙잡고 싶을 만큼 다정했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었고, 실제로 읽다가 멈춰서 같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게 되었다. 그냥 좋은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하고 지나온 마음, 설명하지 못해 덮어 둔 감정, 나도 모르게 참아 온 울음 같은 것들이 문장 사이에서 조용히 건드려졌다.
이 책은 삶의 고통을 거창하게 해결해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고통은 끝내 정확히 설명되지 않고, 어떤 질문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답을 찾아야 하고, 괜찮아져야 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꼭 지금 모든 것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울어도 된다고.
감정은 억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나는 특히 현묘라는 인물이 좋았다.
누군가를 다그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상대가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현묘에게 상담받고 싶어졌다.
내 마음속에 엉켜 있던 말들을 꺼내 놓으면, 현묘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말로 내가 놓치고 있던 마음의 방향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위로가 억지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내라는 말보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말이 더 깊게 닿을 때가 있다.
빨리 괜찮아지라는 말보다 아직 아파도 된다는 말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왔다.
아픈 사람에게 빨리 걸으라고 하지 않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르라고 말해 주는 책이었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퀘렌시아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가장 편안했는지,
누구 앞에서 가장 나다웠는지,
어떤 순간에 숨을 쉬었다고 느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장소가 꼭 바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쉼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 잘 맞는 소설이다.
큰 사건과 빠른 전개를 기대한다면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장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책이다.
나처럼 책을 읽다가 자주 멈추고, 밑줄 긋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는 독자라면 더 깊게 닿을 것 같다.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을 조금 덜 몰아붙이게 되었다.
상처를 없애려고만 하지 않고, 그 상처와 함께 앉아 있는 법을 배운 기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해 준 책으로 남았다.
청연재라는 공간도, 현묘의 말들도, 퀘렌시아라는 단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