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괜찮은, 나를 돌보는 한 줄 고백
이민서 지음 / 좋은피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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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표지에 적힌 문장부터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서툴러도 괜찮다는 말은 흔한 위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이 쉽게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너져본 사람이 다시 자신을 일으키며 건네는 말이라서 더 깊게 다가왔다.
​
이 책은 단순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에세이가 아니었다.
상처를 덮어두라고 하지도 않고, 아픔을 빨리 이겨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그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조용히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위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
작가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동생의 죽음이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긴다.
죄책감, 후회, 원망, 미안함, 수치심 같은 감정들이 뒤엉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책 속 문장을 읽으며 나도 젊은 엄마를 갑자기 잃고 방황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
엄마의 죽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문득 한 문장에 무너지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갑자기 그리움이 올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장면마다 나 역시 묻어두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
이 책의 좋은 점은 아픔을 이야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담긴 마음돋보기는 읽는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건넨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내 안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은 무엇인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다.
질문들이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거창한 답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떠오르는 마음을 한 줄씩 적어보면 되는 방식이라 부담이 적었다.
​
특히 감정을 다루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화가 나면 그저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서운함, 두려움, 무력감, 억울함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나도 살면서 화라는 감정 뒤에 진짜 마음을 숨겨둔 적이 많았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고 먼저 알아차리게 해준다.
알아차림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읽으며 느꼈다.
​
자기 이해 글쓰기 부분도 좋았다.
나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 장점도 잘 모르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상처받는지, 어떤 말에 자주 흔들리는지도 그냥 지나치며 살 때가 많다. 그런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나를 얼마나 모른 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써보는 책이었다.
​
나에게 이 책은 상처를 없애주는 책이라기보다 상처 앞에 혼자 서 있지 않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픔을 대단하게 포장하지 않고, 무너진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준다. 충분히 잘해왔고, 이제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문장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면서,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했던 말이기도 했다.
​
책을 읽으며 마음돋보기의 질문과 극복 방법들을 그냥 넘기지 말고 하나씩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끝나는 위로보다, 내 마음에 직접 적용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한 줄이 큰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작은 시작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이 책은 상실을 겪은 사람, 마음이 무너진 적 있는 사람, 엄마라는 이름이나 책임감 속에서 자신을 잃어본 사람에게 조용히 닿을 책이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 상처를 서툴러도 괜찮으니 한 줄씩 꺼내보자고 말한다.
​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상처 위에서도 다시 꽃 피우는 시간이 올 수 있다는 말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았다. 나를 돌보는 일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내 마음을 한 줄 적어보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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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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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윤동주는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고 시험 문제 속에서 읽었고 가끔은 마음이 힘든 날 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던 윤동주는 아주 일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완성된 시만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었다.
시가 되기 전의 흔들림과 망설임,
지워진 말과 다시 고친 문장들을 따라가는 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시는 맑고 단정한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그 맑은 문장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래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다시 붙잡은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문장이었다.
​
제목처럼 이 책은 오래된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낡은 종이와 빛바랜 글씨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한 시인이 무엇을 바라보았고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붙들었는지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책장을 빠르게 넘기기보다 자꾸 멈추게 되었다.
​
처음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도 있었고 원고와 노트, 퇴고의 흔적을 따라가는 책이라 가볍게 읽히는 에세이는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책은 술술 읽고 덮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천히 읽을수록 깊어지는 책이었다.
한 문장을 읽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나에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완성보다 과정이었다.
우리는 보통 완성된 결과만 바라본다.
좋은 시, 좋은 글, 좋은 문장만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뒤에 있는 시간을 보여준다. 시인이 어떤 단어를 골랐고 어떤 표현을 버렸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좋은 문장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닿았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쓰고 나서 지우고 다시 고치고 결국 처음 마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좋은 글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다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위로를 받았다.
​
윤동주의 시가 더 새롭게 보인 것도 좋았다. 그동안 나는 윤동주를 맑고 순수한 시인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 속 윤동주는 더 입체적이었다. 시대의 아픔 속에 있었고 낯선 곳에서 흔들렸고 자신의 언어를 끝까지 찾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교과서 속 시인이 아니라 살아서 고민하고 움직이고 쓰던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
이 책은 윤동주를 다시 읽게 만든다.
이미 알고 있는 시도 다르게 보이게 하고 익숙한 이름 뒤에 숨은 시간을 보게 한다.
시 한 편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이 지나갔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윤동주의 시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진다.
그냥 외우던 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언어처럼 느껴진다.
​
표지도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오래된 서랍과 노트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닫혀 있던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는 듯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
윤동주의 문장처럼 조용하고 단단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감성 에세이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묵직할 수 있다. 하지만 윤동주를 좋아하는 사람,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
글을 쓰는 사람,
문장 앞에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책이다.
읽는 속도보다 머무는 시간이 더 중요한 책이었다.
​
책을 덮고 나니 윤동주가 남긴 시보다 그 시를 쓰기 위해 지나왔을 시간들이 더 오래 생각났다.
지워진 말과 고쳐진 문장까지도 한 사람의 삶이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완성된 시인의 얼굴만 보여주지 않는다.
쓰고 지우고 흔들리며 끝내 자기 언어를 찾아가던 윤동주를 만나게 해준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윤동주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도 귀한 일인지 다시 생각했다.
오래된 노트 속에 남아 있던 것은 낡은 문장이 아니라 끝까지 사라지지 않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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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지만 로망 찾아 떠납니다 - 좋아하는 일들로 나를 채운 나트랑 한 달 살기
김세현(클로드)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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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표지부터 마음이 갔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가득했고 제목에는 엄마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바다와 엄마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이 책을 펼쳐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나트랑 한 달 살기라는 여행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잠시 미뤄두었던 나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
나는 워킹맘이라는 말에 오래 머물렀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병원 책임자로 일했고 많은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았다.
그때는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쉬지 못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퇴근 후 책 한 장 읽을 힘조차 없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고 나를 돌볼 여유는 늘 뒤로 밀렸다.
​
지금은 남편과 함께 정비소 일을 하고 있다. 덥고 추운 공간에서 일하는 날도 많고 몸은 분명히 고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때보다 훨씬 가볍다.
잠깐 짬이 나면 책을 펼치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읽는다.
책을 읽는 시간이 내 안에 다시 생겼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예전보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조금 더 나다운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마흔이 넘어서야 나를 찾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젊은 날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일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되돌릴 수 없는 장면들이 남았다.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아이들은 이미 많이 커버렸고 친구들이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서운한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대신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더 생각하고 나를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다.
​
작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다. 엄마이지만 로망을 품고 엄마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반가웠다.
나트랑 한 달 살기는 나에게도 꿈같은 이야기였다.
현실에서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일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작가와 함께 설레고 함께 행복했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바다를 보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여행지를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트랑의 풍경과 생활 팁 사진들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고 중간중간 시가 더해져 감성이 살아났다.
여행 정보와 에세이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 달 살기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작은 길잡이가 되고 엄마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 되어줄 책이었다.
​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책 속에서 아이가 손목 골절로 깁스를 한 채 여행하는 장면은 몹시 안타까웠다.
여행지에서 아이가 다치면 엄마 마음은 얼마나 무너질까 싶었다.
즐거움 속에서도 걱정이 따라오고 설렘 속에서도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엄마의 로망은 혼자만의 자유가 아니라 아이와 가족과 현실을 모두 안고 가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읽는 내내 작가의 글 하나하나에 같이 설레고 같이 행복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자주 나를 뒤로 미룬다.
가족을 먼저 챙기고 아이의 시간을 먼저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은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나중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하고 싶은 일을 나에게 허락하는 삶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나는 이 책을 읽고 여행이란 꼭 멀리 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잊고 살던 자리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 엄마라는 역할만 남은 줄 알았던 삶에서 다시 내 이름을 불러보는 것.
그것도 충분히 여행이 될 수 있다.
작가의 나트랑 한 달 살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여행이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
엄마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더 깊게 읽게 될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놓쳐버린 시간들 때문에 서운했던 사람.
일과 가정 사이에서 나를 잃어버린 적 있는 사람.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허락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따뜻한 용기를 건넨다.
​
나에게 이 책은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이미 아이들은 자랐고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 시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를 채워가면 된다.
엄마지만 로망을 가져도 되고 엄마지만 떠나는 꿈을 꾸어도 된다.
이 책은 그 당연한 말을 바다처럼 시원하게 건네주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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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좋은 문장 필사 - 어른의 어휘력과 문해력을 위한고전 소설의 첫 문장과 명문장 쓰기
김정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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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필사책은 처음이었다. 책을 읽는 일은 익숙했지만,
문장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는 일은 어쩐지 나와는 조금 먼 일처럼 느껴졌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마음에 담아두거나 사진으로 남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내 마음을 다르게 움직였다.
​
서문을 읽고 깜짝 놀랐다.
작가는 지난해 엄마를 떠나보낸 것 같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3년 전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책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를 사는 것도 버거웠고,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몰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때는 어떤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래서 더 오래 멈췄다.
누군가의 상실이 내 상실을 건드리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작가의 어머니도 이 여사님이라고 불린 듯했다.
우리 엄마도 이 여사님이었다.
너무 작은 우연인데 이상하게 크게 다가왔다. 책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끝까지 필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이 책은 고전 소설 속 첫 문장과 명문장을 따라 쓰는 필사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예쁜 문장을 모아둔 책은 아니었다.
문장을 읽고, 낯선 어휘를 살피고,
문해력 질문을 통해 그 문장이 가진 뜻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그냥 베껴 쓰는 시간이 아니라 문장 앞에 머무는 시간이었다.
​
나는 이 점이 참 좋았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모든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줄거리만 따라가느라 중요한 문장을 놓치기도 하고, 다 읽었다는 사실에만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필사는 속도를 늦추게 했다.
손으로 한 글자씩 옮겨 적다 보니 문장이
조금 더 오래 남았다.
눈으로 읽을 때는 지나쳤던 단어가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
첫 문장부터 마음에 깊게 들어왔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남을 판단하고,
또 남에게 판단받으며 산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좋은 문장은 결국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걸 다시 느꼈다.
​
필사하면서 고전이 조금 가까워졌다.
고전 소설은 어렵고 무겁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은 한 권을 통째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 한 문장씩 천천히 다가가게 해준다. 데미안,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무진기행, 설국 같은 작품들이 멀리 있는 책이 아니라 내 손끝에 잠시 머무는 문장이 되었다.
​
특히 좋았던 건 문장 아래에 이어지는 질문들이었다.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인물의 감정은 어떤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는 질문들이 있어서 그냥 감성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서 이 책은 필사책이면서 동시에 어휘력과 문해력을 키워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
나에게 이 책은 필사를 시작하게 해준 첫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전을 쉽게 만나는 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하루 한 장 마음을 다독이는 책일 수 있다.
나에게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고, 무너졌던 시간을 다시 조용히 바라보게 해준 책이었다.
​
책을 읽는 것과 문장을 쓰는 것은 달랐다.
읽을 때는 문장이 지나갔지만, 쓸 때는 문장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필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이 책 한 권을 끝까지 필사해보고 싶다.
빠르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보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천천히 써보고 싶다.
엄마를 잃고 한동안 아무것도 읽지 못했던 나에게, 다시 문장을 붙잡게 해준 책이라 더 고맙다.
​
고전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
필사를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
좋은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 권을 다 읽는 것보다 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더 깊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는 필사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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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는 대만 여자, 썸머의 게스트하우스 일기
썸머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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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히 여행자가 머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게스트하우스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며 서로의 삶을 잠시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첫 손님 이야기였다.

원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군인이 된 청년은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작가는 그런 손님을 그저 숙박객으로 대하지 않았다. 함께 김밥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청년의 결혼식에 초대받게 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몇 번의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모습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소박한 김밥 한 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거창한 선물이나 특별한 도움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건네는 일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식 초대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초대받은 것처럼 먹먹하고 감동스러웠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해녀 할머니들 이야기였다.

택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던 두 분의 할머니.
어느 날부터 연락과 택배가 뜸해져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찾아갔더니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는 너무 슬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그 인연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안부와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감동만 있는 책이 아니다.

숙박비를 주지 않고 떠나버린 손님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당한 상황도 작가의 유쾌한 시선으로 풀어내니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웃음과 감동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세실리아가 떠나기 전 남겨준 유니콘 스티커 이야기도 참 슬펐다.

어른들에게는 평범한 스티커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가장 아끼는 보물일 수 있다.
그런 소중한 것을 작가에게 선물로 주고 떠난 마음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장면을 읽으며 사람의 진심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여행 에세이를 읽는다는 느낌보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결국 모두 외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인연이었다.

작가는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짧게 만난 사람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를 떠난 사람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연락하고 안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은
결국 다시 돌아온다.

이 책은 여행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 이야기이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웃게 만드는 따뜻한 에세이였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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