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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도 괜찮은, 나를 돌보는 한 줄 고백
이민서 지음 / 좋은피알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표지에 적힌 문장부터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서툴러도 괜찮다는 말은 흔한 위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이 쉽게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너져본 사람이 다시 자신을 일으키며 건네는 말이라서 더 깊게 다가왔다.
이 책은 단순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에세이가 아니었다.
상처를 덮어두라고 하지도 않고, 아픔을 빨리 이겨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그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조용히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위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동생의 죽음이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긴다.
죄책감, 후회, 원망, 미안함, 수치심 같은 감정들이 뒤엉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책 속 문장을 읽으며 나도 젊은 엄마를 갑자기 잃고 방황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엄마의 죽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문득 한 문장에 무너지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갑자기 그리움이 올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장면마다 나 역시 묻어두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아픔을 이야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담긴 마음돋보기는 읽는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건넨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내 안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은 무엇인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다.
질문들이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거창한 답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떠오르는 마음을 한 줄씩 적어보면 되는 방식이라 부담이 적었다.
특히 감정을 다루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화가 나면 그저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서운함, 두려움, 무력감, 억울함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나도 살면서 화라는 감정 뒤에 진짜 마음을 숨겨둔 적이 많았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고 먼저 알아차리게 해준다.
알아차림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읽으며 느꼈다.
자기 이해 글쓰기 부분도 좋았다.
나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 장점도 잘 모르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상처받는지, 어떤 말에 자주 흔들리는지도 그냥 지나치며 살 때가 많다. 그런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나를 얼마나 모른 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써보는 책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상처를 없애주는 책이라기보다 상처 앞에 혼자 서 있지 않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픔을 대단하게 포장하지 않고, 무너진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준다. 충분히 잘해왔고, 이제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문장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면서,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했던 말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돋보기의 질문과 극복 방법들을 그냥 넘기지 말고 하나씩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끝나는 위로보다, 내 마음에 직접 적용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한 줄이 큰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작은 시작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상실을 겪은 사람, 마음이 무너진 적 있는 사람, 엄마라는 이름이나 책임감 속에서 자신을 잃어본 사람에게 조용히 닿을 책이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 상처를 서툴러도 괜찮으니 한 줄씩 꺼내보자고 말한다.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상처 위에서도 다시 꽃 피우는 시간이 올 수 있다는 말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았다. 나를 돌보는 일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내 마음을 한 줄 적어보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