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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인 남자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줄리안 시먼스 지음, 정향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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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줄거리


위압적인 아내 클레어에게 억눌려 사는 소심한 대머리 남성 아서 브라 운존은 숨막히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붉은기 도는 갈색 머리와 턱수염을 가진 결혼보조 유한회사 사장 '이즌비 멜런'이라는 이름의 가짜 신분을 만들어 이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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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서가 클래너리 터브스의 볼품없는 발명품 '말끄미다끄미'에 투자해서 아내의 돈을 날리고, 이즌비의 결혼보조 유한회사를 찾아온 치명적인 여자 퍼트리샤 파커와 얽히는 등 몇 가지 실수로 두 개의 삶은 차츰 서로를 압박하고, 궁지에 몰린 아서는 마침내 한쪽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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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와 이즌비가 불륜 사이였으며, 클레어가 자신과 함께 도망가지 않자 분노와 질투에 휩싸여 살해했다는 내용으로 연출한 계획은 치밀하고 실행은 거침없었지만, 그 계획을 마무리한 이후에는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낀점


한 인간의 자만과 파멸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인데, 배경이 생각보다 오래 된 과거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오레 전 출간된 소설이었으며 작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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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니고 처음부터 아서가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잘 드러나 있었지만 계속 그가 어떤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과연 자신을 죽였다는데 매가리없는 아서와 허울뿐인 결정사를 운영하는 감자 스파이 이즌비 중 어떤 자신을 죽인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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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가 퍼트리샤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줄 알고 부인을 둘이나 두고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한방 먹은거였다는 걸 알았을 땐.. 딱히 통쾌하지만은 않았음 어쨌든 주인공으로서 또 어떤 고난을 겪어서 독자를 지치게 하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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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가 진지한 마음을 먹으면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지고, 완벽해지는 상황에서 하나씩 뭔가 사소한 우연으로 어긋날 때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인간의 삶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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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압박과 억압이란 무엇인가? 아서가 직접 죽인 사람만 해도 클레어, 클래너리, 어쨌거나 아서 브라운존/이즌비 멜런 자신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이즌비로서의 삶에서 배우자인 조앤까지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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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을 쉽게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아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리긴 했지만, 이 나비효과가 사실 100% 아서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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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가끔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인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편인데 오늘날처럼 모든 것이 디지털과 법의 관리 하에 놓여진 시대에, 특히 우리나라처럼 모든 국민에게 열세 자리 고유의 숫자를 부여하는 사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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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일탈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고 위태로워지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게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최선이지 않나 싶습니다



인용구


아서가 은행 계좌를 찾고 있었던 것처럼 클레어는 사회적 부속품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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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독살범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수한 살인 수단 중에서, 독이야말로 일반적으로 가장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수단이라 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도끼 살인범, 교살범, 총살범, 심지어는 희생자의 시신을 토막 내는 살인범에게도 동정을 보이지만, 독살범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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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결례가 판을 친다. 그는 그것이 사람들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현대 생활이 워낙 다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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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의 심정과 세상사 사이에 일종의 섬유벽이라도 놓인 듯, 감정으로부터 절연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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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주위의 어둠 속에 자유라는 불모지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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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유란 오직 제약과 관련해서만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생활 습관과 사고 습관은 신념과는 다르다." 그는 정확히 이런 말, 아니면 그 비슷한 말을 일기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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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
정해연 외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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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드립니다

1. 아이돌을 좋아하시는 분 2. 여러 장르 소설을 한번에 읽고 싶으신 분 3. 보여지는 사회의 이면을 좋아하시는 뷴




줄거리


정해연, 김아직, 정명섭, 박지선 네 작가가 '아이돌'이라는 소재로 각자 자신있는 장르인 미스터리, SF, 액션, 판타지 소설로 말아온,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반짝이는 아이돌의 무대 뒤 은밀한 이중생활을 그린 앤솔러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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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아이돌 그룹 러비쥬 살인 사건

음악방송에서 마지막 방송이자 1등 기념으로 간 펜션에서 타이틀 사비 파트분배 문제로 갈등이 일어난 다음날 갈등의 원인이었던 멤버 나나 살인사건을 자신의 추리력으로 해결하는 러비쥬 멤버 서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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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직 엔딩 요정의 비밀

그룹을 살리기 위해 외계 행성 AT37에서 개최되는 서바이벌에 참여해 경쟁 구도를 몸소 느끼다가 크럼을 향한 윤리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일루언 멤버 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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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PMC 아이돌

군필돌이라는 컨셉으로 리얼한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사하라로 향했다가 현지인들에게 민간군사기업으로 오해받는 보이그룹 PMC 담당 임명섭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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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눈물을 마시는 요괴

아이돌이자 요괴를 쫓는 퇴마객 지안이 숙소 근처 사생팬에게서 수상한 기운을 느끼고 창귀를 추적하며, 스케줄로 향한 프랑스에서까지 강력한 요괴인 ‘눈물을 마시는 요괴’와 만나는 신비로운 판타지 세계




느낀점


현 시점 최애 걸그룹 멤버 수 4명, 이 책에 담긴 소설 총 4편, 각 단편마다 에스파 멤버 한 명씩 상상하면서 읽겠다 다짐하였으나.. 첫 작품인 정해연 작가의 <아이돌 그룹 러비쥬 살인 사건>부터 주인공 이름이 예리인 바람에 바로 머릿속에는 레드벨벳 예리만이 둥둥 떠오르고 있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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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의 <아이돌 그룹 러비쥬 살인 사건>속 러비쥬는 망돌도 아닌 음악 방송에서 1등을 거머쥔 걸그룹이니 뭐하나 빠질 것 없는 그룹 같았지만 그날 밤 맏언니이자 리더 나나와 막내 혜주가 싸웠으며 1등한 다음 날 리더는 죽기까지 하다니 한순간에 팬덤 가슴 찢어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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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은 균열이 선명했는데, 아이돌도 결국은 팀이라지만 각자 인사평가(...)를 대중으로부터 받는 라이벌이 되기도 하니 각자의 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해서 의지할 동료이기도 하지만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한번 다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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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직 작가의 <엔딩 요정의 비밀> 속 리더 선유 칭찬해.. 잔혹한 서바이벌에서 그룹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악플 세례를 감안하면서까지 밉상(?) 캐릭터를 받는 대신 이전 앨범 타이틀곡을 BGM으로 넣어달라는 조건까지 내세우는 야망과 외계 생명체 크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윤리의식을 같이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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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걱정하는 거 아니라지만, 유일하게 남자 아이돌을 다루는 정명섭 작가의 <PMC 아이돌> 속 멤버들과 임 실장을 보면 그것도 꼭 맞기만 한 말은 아니구나 싶네요 물론 아직 데뷔 전이니 연예인은 아니고 임 실장도 일반인이라 좀 이야기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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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장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공포감을 선사한 박지선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요괴> 속 지안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하투하 이안이 떠올랐는데.. 실제로 제 최애가 무속 신앙의 힘으로 요괴를 무찌르는 일을 하고 있다면 멋있을 것 같음! 하지만 지젤은 일본 무속으로 싸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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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는 영인시, 김아직 작가는 일루언처럼 계속 가지고 가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영인시는 대체 무슨 도시인 것인가 거의 고담시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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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비쥬의 나나 외에도 남은 예리와 지연과 혜주, 일루언의 선유와 송이와 베카와 세월, PMC의 정창식과 우현광과 김민준과 서유태, 윈디시티의 한지안과 나은아와 에스더와 서밋 모두 잘 됐으면.. 얼굴도 모르지만 같이 음악방송에 서는 세계관이 있을까요




인용구


상처를 째 고름을 짜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면 흉터가 남을 수 있다. 흉터가 남은 피부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가끔은 상처를 그냥 덮어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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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투항 선언은 승자의 뜻을 되묻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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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란 나의 삶은 르포여도 최애의 삶은 happily ever after라는 고전동화의 엔딩이길 바라는 이들의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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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어. 인간이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야. 단지 우리는 선을 넘는 요괴들을 물리칠 뿐이야."

"승리도 패배도 없는 싸움을 하는 이유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게 인간의 삶이니까, 요괴와 인간은 해와 달, 낮과 밤, 쌍둥이 같은 존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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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1등급 고미정이 망하면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우신영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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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신영 작가의 <대치동 1등급 고미정이 망하면> 아래와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드립니다 1. 대치동의 학구열을 간접체험해보고 싶은 사람 2. 생활 밀착형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3.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4. 음식 이야기라면 한번 다시 읽어보는 사람 5. 막판에 터지는 사이다 대사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 6. 학교와 학원에 치여 사는 사람



줄거리


생일날에 시험을 망치고 편의점 컵라면과 음료로 저녁밥을 해결하는 대치동 키즈 고미정과 성탄절에 아빠가 도망가 과일 트럭이라는 달콤한 꿈을 먹고 사는 편의점 알바생 백영만은 각각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감정적으로 삭막한 가정과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감정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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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정의 생일에 백영만이 폐기 직전의 보름달 빵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배고픈 백영만에게 스트레스와 강박으로 손톱을 뜯는 고미정이 김밥을 사 주면서 가까워진 두 동갑내기가 험난한 대치동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쌍방 삽질하는 이야기입니다


느낀점


대치동의 이미지 자체가 워낙 부와 명예와 재력과 학구열 이쪽이고, 이 소설 역시 그 이미지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정말 대치동 고등학생으로 살아본 것처럼 그들의 학원 뺑뺑이, 저녁 편의점 식문화 같은 것들이 상세하게 담겨있어서 잠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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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과는 비교되지 않는 학구열이었지만 제법 교육열이 있었던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학원가에서 분식집 컵볶이를 먹거나 미니 피자를 먹었던 기억도 나고, 그 시절 공부는 힘들었지만 고미정과 백영만처럼 (뒤늦게나마)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함께인 추억이 오히려 몽글몽글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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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은 어떻게 다들 고난 속에 살아가고 있냐.. 고미정 가족은 공부에 극성인 모친 윤지완 때문에 부친 고길상까지 밖으로 돌아다니고 고미정은 말라비틀어지고, 윤지완의 아버지 윤재경은 퇴직 후 집에서 짐덩어리가 된 모습까지 알고 싶지 않았던 미래까지 보게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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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정의 생일에 촛불을 불기 위해 케이크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윤지완이 '사랑하는' 은 입모양으로만 부르는 것도, 싸웠다고 애가 열이 38.9도를 찍는데 살펴보지도 않고 나가는 저게 엄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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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해도 안 되는 게 있고 무조건 자신을 투영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의사 자격은 있을지 몰라도 엄마 자격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함 제가 공부를 그만큼 못한 거 아니냐는 말에는 할 말 없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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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초중고 입시생활 12년 동안 별의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고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사람인지라 읽는 내내 윤지완이 끔찍하게 싫었거든요 딱히 윤지완의 서사도 집중해주지 않아서 좋음 고미정, 백영만, 박수복, 노서영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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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얼굴뿐인 백영만과 박수복 모자는 고미정 가족과 반대로 화목하지만 가난한 가족의 끝판왕을 보여주며 대치동의 또 다른 현실을 맛보게 해주었고, '올리브유보다 매끄러운 화술에 K-성형 기술로 다듬어진 미모를 자랑하는 다른 강사들'과 달리 문학이 그저 수능에 나오기 때문에 유용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논술강사 노서영마저 자신의 현 상태에 만족할 수 없는 누구하나 행복한 사람 없었지만 부디 행복을 찾길 바라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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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기준이 항상 높은 1등급의 성적표인 건 아닌데, 저도 만약에 언젠가 부모가 된다면 저렇게 내 아이들을 성적으로 옥죄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워지고.. 방임과 집착 그 사이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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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이 생각나는 ㅋㅋ 백제호텔 뷔페 '시티뷰'에서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필 윤지완을 마주쳤지만 폭언에 기죽지 않고 말로 갚아주는 게 통쾌했음 반란은 그게 끝이었..나 싶지만 19살이 처음으로 하는 반란이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내심 소중히 여겼던 말티푸 모찌를 물건으로만 생각한 업자에게 말하는 걸 보면 나름의 각성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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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친구들과의 풋풋한 추억 때문에는 돌아가고 싶지만 공부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고, 먹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괜히 편의점 컵라면이나 맥도날드 햄버거 이런 거 한번 먹으러 나가고 싶어지면서 밥 한 끼의 소중함을 다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용구


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반항이 추구미가 아니다. 촌스럽게 사춘기라고 말대꾸하지도 않는다. 올리브영 색조 화장품 코너에서 서성대지도 않는다. 그런 것도 열기가 있어야 하는 법. 다섯 살부터 하얗게 불태운 아이들은 재가 되어 있었다. 호르몬 파티나 사춘기 놀이를 할 여유도, 의욕도 없었다. 그런 건 달리기 속도만 낮출 뿐이니까. 부모가 컬링을 하듯 매끄럽게 닦아 놓은 트랙 위에서 어차피 도달할 결승점은 정해져 있었고, 중간에 기권하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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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애들은 틀에서 찍어 낸 붕어빵처럼 비슷비슷해서 쉽지 않았다. 줄이지 않은 교복 차림, 화장기 없는 적당히 단정하고 적당히 모범적인 인상. 하지만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는 없는 미묘한 부티가 났다. 은근히 좋은 시계, 교정을 마친 치아, 비속어 없는 말투. 하긴 사장님께 듣기로는 성장호르몬, 드림렌즈, 치아 교정이 이 동네 아이들의 기본 코스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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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가 한국에서 천천히 망하고 싶으면 자식한테 예체능 시키면 돼. 우리 집처럼."

"누나, 한국에서 빠르게 망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주식? 코인? 사기?"

"자영업. 그게 더 직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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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당과 탄수에서 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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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문학소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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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은 자기 주변의 남자아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생일 선물로 문구 세트 대신 할아버지 빌딩을 증여받는 아이들. 돌잔치 날 유아용 수트를 입고 청진기와 판사봉을 움켜쥐는 아이들. 물리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도 첼로 레슨을 받는 아이들. 사춘기 따위 생략하고 제 아버지의 미니어처가 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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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육의 목적이 그런 거 아냐? 현실의 쓴맛을 찍먹해 보고, 세상사의 험난함을 예행연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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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완 교수가 도착한 데가 어딘데? 무시하는 남편과 공동 명의인 건물? 눈에 안 차는 딸이 뭉개고 있는 집? 아픈 사람들만 북적대는 병원? 그것도 아님 약통으로 가득 찬 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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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만 한 가방을 멘 어린아이들이 한 손에는 영단어장을, 한 손에는 마실 것을 든 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기우유, 초코우유, 바나나우유. 하나같이 달콤한 빛깔의 우유들. 학원 뺑뺑이의 쓴맛을 단맛으로 덮어 보려는 발버둥일까. 미정은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공차를 마시던 제 모습을 발견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 최고 천재라 믿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자신의 등급을 너무 정확히 통보받는 아이들. 겨우 10대에 공부 인생이 망했다고 고지받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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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를 모유처럼 먹고 큰 아이들은 빈곤을 조롱하고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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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한 건 신용 카드가 아니라 축하 카드였다고요! 아줌만 그냥 날 억지로 키우는 거 같았어요. 주문해서 받은 옷이 맘에 안 드는데 시간 아까워서 반품도 못 하고, 그래서 그냥 옷장 구석에 처박아 놓고 입지도 않는 옷처럼 날 대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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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신선한 음식을 먹을 일이 있을까? 취직하면 모니터 앞에서 샌드위치 먹고, 결혼하면 새벽 배송된 밀키트 먹고, 나이 들면 실버타운에서 제공되는 도시락 먹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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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기쁨에 대하여
한은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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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은형 작가의 에세이 <먹는 기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드립니다


1.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

2. 먹을 것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분

3. 떨어진 입맛을 다시 돌이키고 싶은 분

4. 한은형 작가를 좋아하는 분

5. 자극적인 사회에 지쳐 잔잔한 책이 필요한 분



줄거리


딱히 줄거리랄 건 없지만.. 먹을 것에 대해 지식도 해박하고 경험도 풍부한 한은형 작가가 음식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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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제철음식 이야기 Season, 작가의 추억이 녹아 영혼을 가득 채워주는 소울푸드 이야기 Soul, 천천히 완성되며 느리게 사는 감각을 되새기는 슬로푸드 이야기 Slow, 음식이 만들어주는 상상력을 따라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 Story 네 파트로 나뉩니다


느낀점


자극적인 스토리에 익숙해서 처음에는 잔잔하다.. 생각했었는데, 정말 파트별로 다른 음식의 이야기도 이렇게나 많은 데다가 각 파트가 함유하고 있는 분위기(?)를 읽으면서 그대로 제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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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에서는 지금 당장, 올 봄에, 다가오는 여름에만 먹을 수 있거나 특별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생각나는 동시에 저번 겨울에 많이 먹지 않았던 겨울간식 찐빵이나 붕어빵이 그리워져서 계절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버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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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에서는 계란밥, 냉면같이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맛은 끝내주는 음식들이 나오는데 제일 배고팠던 것 같음.. 좋아하는 음식들도 많이 나왔어요 뭇국에 소금빵에 카레에 제일 가짜 배고픔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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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는 파트명도 그렇고 나오는 음식들도 그렇고 바쁘다바빠현대사회에서 조금 숨쉴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는 내용이었고 배치도 한참 Season과 Soul을 읽다가 중간에 들어있으니 책 내용도 돌아볼 법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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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에서는 해외에서 무덤을 걸은 후 배고파 의도한 것과 다른 걸 먹거나 공항 입국 시 적발될까봐 불안해하거나 하는 스토리로 여행 또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예술매체와 음식을 연관지으며 잘 모르던 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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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별 최애 에피소드는 여러 지역명을 알게 해 준 <개불 여행과 나른한 수박> 음식 업계 상품 기획 PM의 삶이 궁금해진 <감자칩 연구원이라면> 음식이 우연히 인연을 만들어 준 <스타벅스 샐러드 토크> 따뜻한 초코라떼 말고 '코코아'를 마시고 싶게 한 <코코아를 기리는 노래> 그리고 음식이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 자체에 공감케 한 <참새의 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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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읽으면서 작가와 제 자신의 입맛을 비교하게 됐는데, 저는 백도보다 황도를, 딱복보다 물복을 좋아하는 데다가 라면을 잘 먹기 때문에 입맛 차이가 좀 있는 걸로 보입니다 오히려 작가의 어머니께서 신맛을 싫어하시고 망고, 복숭아, 멜론 좋아하시는 게 너무 저였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신맛을 싫어하긴 하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들깨 토핑이 싫어서 내적 친밀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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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면 떡볶이, 미디예 돌마(+양고기 케밥), 냉면, 깻잎 통조림, 대학교 앞 할머니보쌈에 대해 쓸 것 같습니다 그냥 좋아하거나 추억이 감긴 음식들.. 그것들이 날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작가가 ‘Surprise’로 5S를 만들었다면 저는 S.O.S로 5S를 만들 듯 저건 구원해달라는 뜻이지만 아무튼 그런 결로 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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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여러 음식이 먹고 싶어졌는데, 특히 감자칩과 복숭아 그리고 김밥... 작가가 맛있어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아무래도 더 묘사도 맛깔나기 때문에 저도 읽으면서 동화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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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과는 연관없지만 지금까지 해본 서평단 중 가장 굿즈가 혜자였던 책으로 남을듯


인용구


내 기준에 맛있는 라면은 일단 면발이 꼬들꼬들해야 한다. 그렇다고 설익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라면에 첨가하는 것들은 각각의 라면에 어울리는 걸로 넣어야 한다. 너구리에는 다시마와 미역을, 안성탕면에는 건표고 슬라이스와 홍고추를, 열라면에는 순두부를, 맛있는라면에는 청경채를 넣는 식이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지만 나는 라면을 이렇게 끓인다. 그렇기에 라면을 묶음으로 사지 않는다. 세 종류의 라면을 하나씩 사둔다. 내가 생각하기에 절대 라면에 넣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양파다. 맛이 들큼해진다. 달걀을 넣는 방식도 달리해야 한다. 안성탕면에는 계란을 풀어서 원을 그리며 뿌려주고, 열라면에는 달걀 하나를 온전히 깨 넣어 소프트 에그로 익히고, 신라면이나 너구리에는 달걀을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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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진하게'라면 나는 '은근히'를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은 상당히 다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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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만이 아니라 내가 만났던 사람과 내가 본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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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은 언제나 연약하다는 게 탈이다. 눈길은 더러워지게 마련이고, 세상에는 곱게 취하는 법 같은 건 없다. 나만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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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책이나 어린이를 위한 소설보다 이런 잡지와 신문, 그리고 어른들이 읽는다는 소설을 훨씬 좋아했다. 사무치도록 좋아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를 홀리게 하는 그런 것들을 읽느라 밥 같은 건 안 먹어도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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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게으름을 피우다'라는 말에 질책이나 한심한 시선이 들어 있다면, '나태하다'라는 말 안에는 자유의지 같은 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혼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을 넘어선 느낌. 굳이 서두르려 하지 않는 느슨함과 또 굳이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공존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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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지 않아서, 손해 보지 않아서 잃었던 마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기꺼이 내게 져준, 그래서 아직까지 내 마음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어 던지게 한 이솝 우화에 나오는 그 햇님 같은 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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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상을 좋아하고. 나를 상상으로 이끄는 것들을 좋아한다. 음식들은 나를 자주 상상하게 만들고, 상상은 나를 알 수 없는 저 세계로까지 데리고 간다. 그러니까 내게 음식을 상상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음식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다 보면 또 자연히 상상에 이르고. 이런 식이다. 아이슬란드에는 검은 갈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검은 갈치가 누비는 아이슬란드 심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이란의 쿰에서 난다는 '쿰 소한'이라는 과자를 상상하면 쿰의 양탄자와 향신료와 견과류와 꿀과 그것들이 뒤섞인 냄새가 밀려오는 것이다. 알던 음식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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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알았다. 통영에서 고깃집과 치킨집이 번성하는 이유를 말이다. 해산물이 질리도록 풍족해서 그런 것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게 아니라 해산물이 비해산물을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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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나 비현실적이고 귀여운 인간이 있다니! 그가 꾸는 꿈은 비현실적인 가운데 또 구체적이어서 현실적인 인간인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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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 미래라든가 과거 따위는 무시하고 순간의 느낌에만 충실하던. 그 저돌적인 순간들. 코코아를 마시면 '작은 나'를 만나는 느낌을 받는다. 잃어버렸던 대담함과 모험심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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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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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 17번째 서평단 도서는 전혜진 작가의 <김밥천국 가는 날>

이런 사람들은 읽어보세요


1. 분식이 소울푸드인 사람 2. 먹을것 소재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 3. 인천과 연이 깊은 사람 4. 다양한 주제의 단편소설집을 선호하는 사람 5. 일과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 6. 여성으로서 집과 직장에서 대우받지 못한다 느끼는 사람




줄거리


치즈떡볶이

지금까지 만난 시간을 전부 다 합쳐도 24시간이 안 될 것 시니어 회원의 본인상 후 40대 후반이라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학습지 교사 유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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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감다뒤' 과장의 피드백 때문에 매일같이 항의 전화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문득 젊은시절의 꿈이었던 영상 찍기를 다시 시작해보려는 지방직 공무원 최은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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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라이스

결혼 후 산후우울증을 앓는 동안에도 남편 김상철과 시동생 상훈의 밥상을 차리다 막내고모의 조언으로 혼자 간 김밥천국에서 식사를 하게 된 후 그곳에서 숨통을 터왔던 신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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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만두

말기암 앞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가족에게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아픔을 돌아보는 은심의 회원이자 상철의 세무사 친구 최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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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베트남에선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서는 조롱과 차별로 속상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놓지 않는 결혼이주여성 응우옌 티 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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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애매한 경력과 취업난으로 꿈을 포기한 뒤 그나마 현실과 타협해서 비정규직 공무원이 되었다가 우울증 약을 먹는 수준에 이른 후 다시 꿈을 향해 다가가는 유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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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덮밥

의경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무섭기로 악명 높았지만 혹시나 말단 병사가 밥을 굶을까 조용히 카드를 쥐여주던 상사를 우연히 만나 그를 향한 고마움을 새삼 깨닫는 교통사고 현장 출동기사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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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

자신을 성폭행했던 황상식 팀장 때문에 우울증과 자해를 시작하다가 암으로 인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 후련한 웃음과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미리 흘리기 위해 식사하는 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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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수시로 늦춰지는 퇴근 탓에 어린이집에 전화해 연신 죄송하다고 사정하는 일상 속, 퇴근 후 아이 민서와 콩국수를 먹으면서도 사랑을 느끼는 돌싱 워킹맘 송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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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면

출생율이 떨어진 세상에서 임신이라는 '애국'을 했지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육아휴직은커녕 직장에서는 그저 “반쪽짜리 일꾼”, “짐짝” 취급을 받는 삶에 지쳐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남유현




느낀점


<김밥천국 가는 날>은 전혜진 작가가 든든한 김밥천국 분식으로 각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지친 인천 시민들의 삶의 허기를 채워주는 열 편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2017년 3월 아이디어를 얻고 쓰기 시작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2025년 4월 책으로 엮어냈으니 8년이 걸린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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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번쯤은 김밥천국에서 이런저런 메뉴를 먹어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요? 제 경우는 어린시절 친구와 놀다가 떡볶이를 먹기 위해 김밥천국에 들어가기도 했고, 학창시절에는 시험이 끝나면 라면을 먹자고 김밥천국 문을 밀고 들어갔고, 다니던 대학가와 걸어서 10분 정도에 먹을 건 딱히 없는 동네에서 살았던 대학시절 그 동네에서 가끔 식사를 위해 들렀던 게 김밥천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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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국적 맛집 체인점인 김밥천국이 '젊음이 주는 불온함과 흥분이 배어나오는' 도시, 항만과 공항이 위치한 이민자와 이주자의 도시, 개항의 역사가 가득한 도시, 우리나라 제3의 도시 인천에서 시작됐다니! 역시 책을 읽으면 이렇게 재미있는 토막상식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아요! 내 말투 왜 이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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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을 집필한 전혜진 작가의 소개를 보니 'SF와 스릴러, 사회파 호러' 작가로 소개되어서 분명 따뜻한 이야기랬는데 함정인가? 혼자 상상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는데, 역시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대단한 미슐랭도 아니고 파인다이닝도 오마카세도 아닌 흔한 김밥천국 음식들이 인천 소시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게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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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을 소재로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까? 싶었는데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내적 갈등,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 양립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여성의 비애, 퀴어로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고독함, 외국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과 배려, 성폭행 피해자의 아픔 등등 김밥천국 메뉴판처럼 주제가 다채롭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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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 작가가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해보셨거나 공무원 지인이 있으신 건지 <치즈떡볶이> 은심, <김치만두> 진수, <오징어덮밥> 성우 외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공무원이거나 그와 연관된 직업이었는데 한정된 배경 안에서도 다양한 고충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스토리 구성력도 존경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살이 다 비슷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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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라면 다 그런 법이지만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선한 본성을 갖춘 데다가 현재의 내 상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부조리한 일을 겪어도 어디 가서 싸우거나 크게 말하지 못하고 앓아가는 걸 보고 역시 정신과를 가야 될 놈들은 안 가고 그 때문에 피해보는 사람들만 가는구나 갑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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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김치만두>의 진수는 그리움과 서러움을 한켠에 두고 세상과 작별해야 했고 <육개장>의 수연은 아무에게도 상사로부터 입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주춤하다가도 희망과 낙관으로 인생의 고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려는 다른 인물들을 보니 진수의 마지막 순간에도 미련이 없었고 수연도 언젠가는 암울한 기억을 떨쳐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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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징어덮밥> 부분 읽을 때 당연히 서장을 또 남자로 생각했는데 서장실에서 손녀를 안고 달래주면서 성우와 하는 대화에서 여자임을 깨닫고.. 왜 2n년을 살아도 이런 편견은 고쳐지지 않고 N년을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전혀 발전이 없죠? 내 블친들도 질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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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소설들은 <오므라이스> <콩국수> 였는데요, 아무래도 결혼 적령기 여성으로서 결혼임신출산육아 후 제게 닥쳐올 수 있는 갈등이라거나 불안함(임신이나 가사노동에서 여성의 노력을 은연중에 당연하다 생각하고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직격으로 던지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쫄면>도 임신 후 입덧으로 고생하며 자신의 돌아올 자리가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유현의 현재가 위태로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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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밥천국에 갈 때 주로 라면을 먹는데요, 사유는 그냥 라면에 미친 라친놈이어서입니다... 뭐 위로랄 게 별거 있나요 그저 <오므라이스>의 영주처럼 나를 위해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나를 지치게 하는 상황 대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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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을 좋아하는, 특히 인천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김밥천국 가는 날>을 읽으며 입맛을 다시고 집 근처 김밥천국에서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편하고도 따뜻한 한 끼를 먹으면 좋을 듯 합니다




인용구


세상에는 그저 희미한 배경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이 있다. 경비원이나 택배 기사, 냉장고가 달린 카트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야쿠르트 배달원 같은 우체국의 집배원이나 가스 검침원, 늘 다니는 집 앞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학생도 그렇다. 사람 많고 바쁜 도시에서, 그들은 개개인이 아니라 입고 있는 작업복이나 제복, 들고 있는 수첩이나 업무용 파일에 새겨진 커다란 로고 따위로 기억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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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떡볶이를 먹다가… 떡 말고, 대파의 흰 부분 있잖아요? 양념으로 범벅이 된 그 대파의 흰 줄기를 씹은 것 같은 표정을 딱 지어요. 그러니까 너는 배경인데 왜 여기서 갑자기 튀어나오느냐, 그런 표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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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하다', '특별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유행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떡볶이 하나를 먹어도 평범한 것은 안 된다는 듯이 너도나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카레를 넣고, 누군가는 마라를 넣었다. 불닭볶음면처럼 맵고 화끈해 속이 쓰릴 정도로 강렬한 떡볶이가 나왔다. 떡 모양도 가느다란 가래떡을 손가락 길이로 썰거나, 굵은 가래떡을 납작하게 썰어 놓은 것뿐 아니라 새로운 모양이 나왔고, 어묵과 라면이나 쫄면 정도가 아니라 떡볶이에 별별 옵션을 다 추가하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떡볶이 전문점이 생기고 온갖 떡볶이들이 다 나오면서, 정작 옛날에 먹던 형태의 떡볶이는 점점 밀려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오래된 전통시장 분식집이나, 김밥천국을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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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40대 후반이면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그렇게 늦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떡볶이에 치즈 한 장을 더하듯이. 무언가가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도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쌓아가다 보면 쌓아 올린 작은 것들이 파가 되고 치즈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조금은 더 깊은 맛을 더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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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제 친구가 사 준 거예요. 제가 완전 좋아하는 머그컵인데. (…) 여기 있으면 자꾸 죽고 싶은 거예요. 근데 제일 좋아하는 머그컵이 유품이 되면 이걸 사 준 제 친구는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그냥 안 죽고 다른 일 할 거예요, 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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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는 건 원래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니라서 기적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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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사소한 음식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역사들이 담겨 있지. 일제강점기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한국인들 상당수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느꼈던 시대의 풍성한 김밥들과, IMF 시대, 그리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 외지인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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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중을 해방해야 한다고 잘만 떠들어대던 놈들도 끼니때 되면 여자가 해주는 밥 앉아서 받아먹겠다고 아우성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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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채소를 데치고 익혀서 간장과 참기름, 깨로 양념한 나물 반찬의 중심은 당연히 채소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그 중심을 참기름과 깨로 생각한다. 베트남이나 태국에서는 고수가 익숙하니까 잔뜩 넣어 먹지만, 한국의 중년층들은 그 향긋한 냄새를 샴푸에서 먼저 맡아버렸으니까 샴푸 맛이 난다고 트집을 잡는 것이다. 마치 민트초콜릿을 치약 맛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긴 해도, 비빔국수에 땅콩 분태를 넣고, 돌솥비빔밥에 모차렐라치즈를 집어넣듯이, 자기 나라 음식에도 맛있어 보이면 이것저것 집어넣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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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랬어."

"그건 감기처럼 흔한 병이라는 뜻이지, 감기만큼 쉬운 병이라는 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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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뤄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저 여자나 어린아이는 자기보다 아랫사람 취급을 하고, 자기보다 피부색이 어둡거나 개발도상국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하면 얕잡아 보고, 지방 출신이라고 하면 조롱하고, 국가유공자나 공무원이라고 하면 세금을 축내는 밥버러지라고 욕하면서 자존감을 채우는 부류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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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호락하게 죽어주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는 그만큼의 용기가 더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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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입은 은혜는 계속 생각하고, 자기가 남한테 뭘 해줬다 싶은 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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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 명 있으면 당연히 그 애한테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양쪽 집안에 할머니 할아버지 풀세트로 갖춰져 있는 줄 알지?"

​

때때로 희우는 젊은 남자들이 행복한 결혼이나 정다운 가정을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아이를 낳을 여자의 삶에 대해서는 고민 없이 지내는 게 눈에 걸리곤 했다.

​

호랑이띠, 용띠,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들은 드세다며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를 해놓고는, 그해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이 학교에 갔더니 여자 짝꿍이 모자라서 울고 있다며 불쌍하다고 했다. 여자애들이 죽도록 공부해서 대학 캠퍼스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게 되자, 공부로 여자에게 밀려서 좋은 대학에 못 가는 남자애들을 불쌍하다고 했다.

​

과거에 밖에서는 민주주의와 노동 해방을 외치던 남성 지식인들도 집에 가면 아내에게 밥을 시켰듯이,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들이 업데이트가 되는 시대가 되어도, 남자들의 관념까지 하루아침에 새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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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몫으로 할당받았다고 생각한 것이 제 의지를 갖고 자신을 거부하는 게 억울해서 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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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답시고 결혼을 하면서 자기 성 물려 받은 자식도 낳고 돈까지 벌어와서 자기를 먹여 살려줄 성능 좋은 가전제품을 기대했던 주제에, 저 새끼는 뚫린 입이라고 말이 너무 많았다.

​

멍청한 남자들이 임신한 여자는 무슨 사회적 특권층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지하철 의자의 빈자리를 빼앗아가고, 회사에 와서도 자기 일을 다 남들에게 떠넘긴다는 식의 망상들을 게시판에 올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임신한 여자는 시시각각 불어나는 아기와 양수의 무게를 감당하며 회사 일이든 집안일이든,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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