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누아르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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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는 주인공 박 선이 직장 선배 미쓰리 언니를 좇는 이야기이다. 1986년 한양물산의 사무직 여직원인 박 선은 자신을 착취하는 고향의 가족들과 연을 끊고 서울에서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박 선은 남몰래 주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 광화문에서 본 멋진 여성들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여직원은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존재다. 말 그대로 성 착취를 당하거나 자신의 목표를 말하더라도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이때 미쓰리 언니는 처음으로 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아준다. 미쓰리 언니는 선에게 “그러면 정말 웃지 마요. 끝까지 이 회사에 남아야죠.” 라고 말해준 첫 번째 사람이다. 선은 이 말을 듣고 미쓰리 언니를 선망하게 된다. 미쓰리 언니에 대한 호감의 시작은 연애 감정일 수도 동경일 수도 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이든 선은 강렬하게 미쓰리 언니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품게 된다.


미쓰리 언니는 곧 회사에서 사라진다. 그녀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선은 미쓰리 언니가 자신에게 부탁한 글을 보며 미쓰리 언니의 정체를 짐작해 볼 뿐이다. 미쓰리 언니가 자신에게 맡긴 글을 보며 박 선이 깨닫는 것은 여성에게 필요한 건 로맨스가 아니라 누아르라는 사실이다. 여성을 사적 존재로만 취급하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로맨스의 대상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조리한 사회와의 피비릿내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달달북다 칙릿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인 <러브 누아르>는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다. 칙릿은 여성의 일과 사랑을 그리는 장르다. 이때 한정현 작가는 여성에게 일과 사랑이 양립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칙릿 장르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행한 장르로 여성의 성공적인 일과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칙릿이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80년대에도, 칙릿이 탄생한지 20년이 넘은 2024년에도 여성의 일과 사랑이 양립하는 일은 요원하다. 여성은 언제나 한 쪽을 포기하거나 다른 한 쪽을 선택하더라도 더 완벽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 책을 읽으며 칙릿이라는 장르와 여성의 일과 사랑이라는 것이 아직 이 사회에서는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단지 재미있는 장르라고만 여겼던 칙릿을 이렇게 문제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여성에게 일과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되었고 이 주제에 관한 한정현 작가님의 후속작을 기다리게 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면 정말 웃지 마요, 끝까지 이 회사에 남아야죠.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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