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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
가와시로 사키 지음, 황국영 옮김 / 놀 / 2024년 8월
평점 :
“꼭 러브호텔에서 차야 했냐, 이 나쁜 놈아!” 책의 첫 문장을 읽고 흠칫 놀랐다. 실연의 아픔을 음식과 대화로 치유하는 소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솔직하게 실연의 상황이 중계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는 제목에 드러나는 것과 같이 ‘비긋다’라는 음식점 겸 카페에서 연애 혹은 실연의 과정에서 각인된 음식의 레시피를 식당에 제공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장편 소설이다. 점장인 아마미야와 단골 손님이자 스님인 구로다,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털어놓다 졸지에 직원이 된 모모코는 사랑을 끝낸 손님의 레시피를 전수받고 최선을 다해 손님을 위로한다.
나쁜 남자와의 연애, 나만 목매는 연애는 어쩌면 식상한 소재다. 사랑에 목말랐던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리며 붙잡고 있던 연애를 끝내고 나를 정말 사랑하긴 했는지 궁금해하거나 지난 연애에서 받은 상처를 돌이켜보며 분노하는 장면은 굳이 찾아 읽고 싶지 않기도 하다. 불건강한 연애. 이 문제에는 마음을 써서 위로해주거나 상황을 정리해 줄 객관적인 분석 없이도 이미 ‘끝내야 하는 일’이라는 명백한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명료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에 취해 슬픔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불행을 해결하지 않는 모습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는 그런 우려를 비껴가 새로운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실연한 손님들이 찻집 ‘비긋다’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신이 바라던 것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실연의 상처를 말하는 손님들은 사랑이 끝나는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이 연애에서 바랐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자신이 환상을 좇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본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은 자신이 무언가를 애써 모른 척 해왔다는 사실이다. 연인이 자신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연인은 내가 상상한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진짜 문제는 사랑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원하는 건 한 번도 내 손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 것이다.
힘겨운 오답노트 정리가 끝난 뒤엔 후련함이 찾아온다. 틀린 문제를 되짚는 건 아픈 일이지만 직면한 뒤엔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바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고 종종 그 방법은 엉뚱하다. 하지만 그런 엉뚱한 모습일수록 내가 강렬하게 바랐던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다. 실연의 아픔은 자신이 했던 그 실수를 되짚게 만들고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더 정확한 방향을 알려준다. 꼭 연애 문제가 아니더라도 씨름하고 있는 문제가 있거나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에 산뜻한 위로가 되어줄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먹는다는 건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회복시키는 일이기도 하다고요.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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