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내연애 이야기 달달북다 2
장진영 지음 / 북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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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과 사랑의 공통점은 모두 어마어마한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사내연애'는 일과 사랑이라는 욕망의 덩어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전작들에서도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인물들을 그려왔던 장진영 작가가 그리는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가 믿음직한 이유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의 주인공 배수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고 28살이라는 나이에 조바심을 느끼며 모델 에이전시에 취업한다. 수진의 꿈은 디자이너였지만 학력도 경력도 마땅치 않은 수진에게 디자이너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수진이 모델 에이전시를 선택한 이유는 최소한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일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수진은 자신의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자신의 주업무인 신인개발에 쏟을 시간이 부족함에도 부장과 사장의 사적인 심부름과 미팅 동석도 군말 없이 수행했고 아무것도 먼저 알려주지 않는 사수 밑에서 다른 팀의 신입 동기들에게 정보를 얻어가며 회사의 시스템을 익혔다. 월급 160만 원에 회사에서는 상사들에게 무시와 착취를 당하는 나날 중 수진에게 찾아낸 숨구멍은 바로 자신의 사수 목지환 팀장, 그리고 마케팅 팀의 이승덕 팀장과의 사내였다. 수진은 모두가 말리는 사내연애를 했고, 그것도 동시에 두 명과 했다. 하지만 자극적인 단어들에서 예상되는 스릴과 사건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목지환 팀장과는 회식 후 술김에 한 번 잤을 뿐이고 이승덕 팀장과는 자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을 뿐이다. 이 둘은 수진의 지루하고 때때로 모욕적인 일상에서 잠시 도피하게 해주는 일탈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수진이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어 염 부장으로부터 받는 연락으로 시작된다. 염 부장은 수진이 사귀었던 팀장 중 한 사람이 수진의 번호를 물어봤고 자신이 알려주어도 될지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한 것이었다. 수진은 이미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현재로부터 자신의 직장 생활을 회고한다. 신입 동기들 중 오로지 자신만 사장과 부장의 사적인 심부름을 해야 했던 것,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페미니스트였던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소외감으 느꼈던 것, 사장의 미팅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사장의 '클러치 거치대'가 되어 때로는 사장의 오피스 와이프 취급을 받아야 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수진은 그 직장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자신이 발굴했던 신인 미형과 역시 자신이 로드 매니저 노릇을 했던 에이전시 간판 모델 초리 최를 기용해 런웨이를 장식했고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이 소설은 장진영 작가가 작업일기에서 밝혔듯이 주인공 배수진이 "대성공을 거둔" 소설이다. 20대 후반에 가까스로 취업한 여성이 두 명과 동시에 사내연애를 했다. 이 단순한 문장은 그 여성이 겪게 될 고난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의 배수진은 다르다. 동시에 사귀었던 두 명의 남성은 수진의 인생에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며 수진은 보란듯이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당당히 선다. 역시 작가의 작업일기 표현처럼 '판타지'같은 일이다. 그러나 반갑다. 이것이 보여주는 현실의 결핍이 있을지라도 이 소설을 읽고 통쾌하지 않을 독자는 드물 것이다.



더욱 만족스러운 점은 이 판타지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장은 어떤 과장된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수진의 사내연애 일대기와 그의 성공담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는 수진의 성공을 응원하게 만들고 또한 믿고 싶게 만든다. 부진했던 일과 사랑에서 언제나 꿈꾸던 모습으로 훌쩍 건너가는 수진의 이야기는 칙칙한 현실을 환기하고 싶은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흥미진진한 설정과 짧은 분량에도 존재하는 반전 역시 소설을 읽는 기쁨이었다. 장진영 작가가 써주기만 한다면 수진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어지는 소설인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 칙릿을 찾는 모든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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