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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ㅣ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평점 :
"『사피엔스』를 아시나요?" 라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2015년 11월 한국에서 출간된 이후로는 인문교양서의 필독서로 자리잡으며 지금까지 각종 매체에서 언급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피엔스』를 읽어보셨나요?" 라고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말 유명하고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두껍고 무거운 벽돌책을 읽기를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기면 더 흥미진진하고 가벼운 책들로 마음이 갔다. 그런데 『사피엔스』가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었다니! 『사피엔스』를 읽어보고는 싶었으나 방대한 분량과 무게감 있는 내용에 겁을 먹어 시도해보고 있지 못하던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원작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이렇게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영사에서 출간된 그래픽 노블 버전의 『사피엔스』는 원작에서의 각 장을 주제로 한 권의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 4권으로 이루어진 그래픽 노블 시리즈를 만들었다. 인지혁명을 주제로 한 1권과 농업 혁명을 주제로 한 2권은 출간되었고 3,4장을 주제로 한 두 권의 그래픽 노블 시리즈는 곧 출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내가 읽어본 책은 원작의 2장에 해당하는 농업혁명을 주제로 한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문명의 기둥』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 역사에 대해 제기한 다양한 사유 중 가장 논쟁적인 주제인 농업 혁명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류 진화의 역사에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인류 문명의 눈부신 탄생과 발전의 이면을 보여준다.
『사피엔스』를 그래픽 노블로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이 책을 세시간 만에 다 읽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던 중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픽션 박사, 유발 하라리, 사라 스와티 교수, 조이, 로체스 형사와 같은 등장인물들이 인류 역사의 이면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 쉽게 책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재치있는 그림과 가독성 있는 말풍선 속의 말들은 계속 나의 손을 다음 페이지로, 다음 페이지로 움직이게 했다. 더불어 『사피엔스』의 문장들이 말풍선 간의 분절된 형태로 담긴 것은 기존 줄글에서는 미처 주목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는 원작의 빛나는 문장들에 대한 주목도를 높였다. 이미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라고 할 지라도 그래픽 노블을 통해 『사피엔스』 를 만나는 일은 유발 하라리 교수의 깊이있고 획기적인 사유를 다시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문명의 기둥』은 미리 언급했다시피 농업혁명을 주제로 하는 책이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이용해 전세계적으로 번식을 한 사건으로, 즉 밀이 인간을 길들인 사건으로 바라보았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은 밀에 길들여지면서 자유와 여유가 존재했던 수렵 채집 생활에서 하루종일 노동을 하며 매일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는 농경사회로 진입해야 했다. 농경사회에 진입한 인간은 이제 불안과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을 통해 사유재산을 가지게 된 인간은 언제 다른 집단에게 재산을 약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기후에 따라 한 해 농사가 흉작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사피엔스가 문명과 국가를 건설하게 만들었고 그 사회 내에서 차별적인 위계질서가 만들어졌으며 그러한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종교와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이 만연하며 이는 우리가 합리적이며 절대적이라고 믿는 일종의 허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유발 하라리는 역설한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진리란 없으며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들은 결국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야 했던 인간의 발명품에 불과하다는 것이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던 농업혁명과 인간의 역사는 유발 하라리에 의해서 완전히 비틀린 모습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농업혁명이라는 선대 사피엔스의 그릇된 선택에 의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유지시키는 덧없는 허구를 우리의 신념으로 받아들이며 허구 위에 세워진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개미에 불과한가.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사회가 허구를 통해 유지된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일 뿐 선과 악의 가치와는 무관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허구는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다만 유발 하라리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이 소수자들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살피며 끝없이 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유발 하라리의 통찰은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할 준비단계인 것이다. 기계의 작동원리도 모른채 기계를 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사피엔스』가 더 높은 가독성과 흥미를 챙겨 그래픽 노블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사피엔스』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도, 이미 감명 깊게 읽어본 사람도 색다른 즐거움과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문명의 기둥』을 읽어본다면 좋겠다. 『사피엔스』 가 이렇게 경쾌할 수 있다는 것을, 경쾌한 와중 유발 하라리의 묵직한 통찰이 이토록 일목요연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