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
체이스 퍼디 지음, 윤동준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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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빛나는 모습이 내게 가져다 줄 고양감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는 조금 다른 결의 생각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계기는 내가 나 자신을 '나쁜 사람' 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내가 다른 이에게 유해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그것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멋진 사람이 되어 즐거워 할 나 자신만을 떠올리던 나의 열망이 반경을 넓혀 주변 사람도 내가 이 세계에 있음에 의해 즐거울 수 있기를 바라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깨달음 이후의 실천이 뒤따를 때 유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 무해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무해해지기 위해 내가 어떤 것에 유해한 존재인지를 조금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유해해지는 순간은 숱하게 많았다. 나의 게으름으로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소한 일부터 나의 무신경함으로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경우까지 나의 유해함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무시로 일어났다. 나는 나의 모든 유해함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반성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지한 순간에는 나의 나쁨을 받아들이지 못해 되려 분노를 표현하는 시간을 줄이고 겸허하게 내가 가진 '악의'를 인정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만 유해함이 발생하는 것 또한 물론 아니었다. 내가 배출하는 쓰레기들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었고 내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모든 것들에는 지구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육식 또한 그러했다. 내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나의 유해함이었다. 내가 육식을 하게 된 것이 명백한 나의 악의는 아닐지라도 내가 동물들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는다. 꼭 먹고 싶은 날에는 가족들을 설득해 메뉴를 치킨으로 정하기도 한다. 각종 SNS와 책들에서 고기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나의 식습관을 고칠만큼의 반성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태를 지속하던 와중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을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대체육을 활용한 식품들이 꽤 판매되고 있고 비건 식당들도 점차 많이 생겨나는 추세이다. 한마디로 비건과 나는 낯을 익혀 간간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 정도의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에서 다루는 내용이 사뭇 새로웠던 이유는 대체육 중에서도 세포배양육을 다룬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푸드테크 산업을 이끌고 있는 스타트업 '저스트'를 중심으로 세포배양육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시장에서 배양육이 정상적으로 유통되어 현실적으로 현재 식품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배양육은 간단히 말해 동물을 죽여서 만든 고기가 아닌 연구실에서 동물의 세포를 통해 생산한 고기라고 할 수 있다. 배양육은 콩과 같은 식물로 만든 대체육보다 훨씬 더 우리가 먹던 고기에 근접한 맛과 식감을 가졌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는 상품이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은 그만큼 만드는 데 많은 연구와 비용이 들며 기존 식품 산업에 대한 행정적 규제와 비건 식품에 대한 거대 식품 회사들의 견제를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 역시 지니고 있는 분야이다.

'저스트'가 배양육을 만들어 유통하기 위해 치르는 분투의 기록을 읽으며 나는 세포배양육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둘러보기에 바빴다. 나에게 전혀 새로운 스타트업, 그리고 배양육의 세계에서 사활을 걸고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단 이야기로서 흥미로웠다. 새로운 세계에 감탄하며 책을 읽던 중 나를 멈칫하게 만든 문장이 있다. "자본주의가 동물을 위하도록 해보자."(117p) 이 문장은 '저스트'가 배양육을 만들기로 결정하며 한 말이다. 이 문장에서 내가 파동을 느낀 이유는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합리적 방식을 모색할 때의 멋짐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단순히 윤리적인 이유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만을 타겟층으로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맛과 건강이라는 즉물적인 이익에 따르는 사람들의 취향에도 부합하는 비건 식품을 만들자는 것일 것이다. 고기를 소비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문화와 그것을 통해 이익을 꾀하는 거대 기업. 이 시스템은 비건을 명백하게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고기에서 얻는 즐거움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하는 수익 창출을 만족시키는 비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의 해답을 배양육으로 내놓은 '저스트'의 모습은 진부한 말이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반짝거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변화하게 될까. 배양육을 통해 동물의 생존권을 보호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수익 창출을 꾀하는 기업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자극을 받았다. 내가 바라는 바를 위해 변화를 멈추지 않는 모습. 고민을 거듭해 해답에 가까워져 가는 모습을 보며 무해해지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실질적인 노력들을 고민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나의 식습관 개선에서 대체육이 점점 더 유의미한 해답이 되기를 바라본다. 나의 존재로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기. 내가 바라는 바와 배양육을 비롯한 비건 식품을 만드는 기업들의 생각이 꽤 비슷해 보인다. 언젠가 나도, 비건 식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원하는 이상향에 닿아 있기를 바라며.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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