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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유지혜 지음 / 김영사 / 2021년 11월
평점 :
여행작가로 유명한 유지혜 작가의 신작 에세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가 출간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하고 섬세한 일상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묘사하는 글이다. 나의 무신경함을 보완해주는 글들은 게으른 내가 느끼지 않고 보내버린 숱한 순간들을 다시 살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유지혜 작가의 이번 에세이는 유독 일상의 아름다운 감각들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었다. 다채로운 여행의 감각과 사유를 써내려가던 유지혜 작가는 이번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에서 코로나로 여행이 불가해진 시국에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지혜 작가는 세계의 아름다운 곳에서만 삶의 환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우리는 항상 여행을 꿈꾸고 일상을 탈출하기를 바란다. 멀리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접어두고 최대한 오래 비일상의 시간에 머물기를 바란다. 일상의 평화. 일상의 행복. 이런 종류의 말들이 흔하게 떠돌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말들의 뜻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던 유지혜 작가에게 코로나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큰 절망감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유지혜 작가는 자신이 지나쳤던 평범한 날들에 숨어있던 행복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되어 지겹고 싫었던 우리의 매일매일이 유지혜 작가의 시선을 통해 매일 매일 찾아오기에 더욱 감사한, 영원히 지속될 행복의 약속처럼 다가온다.
이번 책에는 유지혜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글 사이사이에 첨부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진들이 누가봐도 아름다운 풍경이나 감상을 담은 사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진들은 정말 '평범하다'. 누구나 매일 매일 겪어봤음직한 일들이 마치 특별한 일처럼 사진에 담겨 책 속에 첨부되어 있다. 일상을 찍은 사진이지만 특별히 감성적으로 찍은 사진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정말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급하게 한 컷 찍은 느낌의 사진들이다. 페디큐어를 한 발이라든가 자신이 카페에서 마신 차, 당장이라도 길거리에 나가면 볼 수 있는 건물의 사진들이 책 속에 심상하게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마치 유지혜 작가의 일기장을 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이 특별히 행복해 보였다면 오히려 나는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정하고 섬세한 문체로 기록한 그녀의 일상에 대한 사유, 그리고 평범하디 평범한 사진들은 설득력 있게 유지혜 작가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보자고 말하는 듯 하다. 책을 읽는 순간은 유지혜 작가의 삶에 잠시 초대된 것이지만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시선,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느낄 줄 아는 부지런함들은 내 안에 남아 나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가시적인 변화는 없을지라도 삶을 느끼는 새로운 감각을 이 책을 통해 획득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매일을 살아가는 내게 깊은 충만감을 느끼게 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보낸 날이 하루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지혜 작가는 말한다. 미움, 슬픔, 절망과 같은 모든 감정들도 다 사랑이라고. 그 모든 것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내가 통과하는 희노애락의 감정의 순환고리들은 사실 무언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바라지 않는다면 굳이 겪지 않아도 좋은 감정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지혜 작가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일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지리멸렬한 감정의 순환들을 '사랑'으로 치환해서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녀의 치환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 사실 우리는 모두, 계속,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