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통이 삶의 기본값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내 삶의 첫 번째 기억들 중 하나는 부모님과 먹기 싫은 음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이다. 나이는 네다섯살에 불과했지만 부모님과 어렴풋하게 식사를 두고 갈등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고통은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맞추어야 했던 고통이다. 나를 꺾고 상황에 나를 맞추는 것의 고통이 삶의 어느 시기이건 함께했다. 나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던 마음이다. "겨우 이 정도에 힘들어 한단 말이야?"라는 생각으로 나는 나를 두 번 죽였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삶에 고통은 언제나 함께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사회>는 나처럼 고통 자체를 죄악시 하는 사회를 말한다. 저자 한병철이 말하는 '고통 없는 사회' 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다. 고통을 삶에서 추방하고자 한다. 여기서 고통을 삶에서 추방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 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예술과 창조가 탄생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고통'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통이 '악'으로 규정되는 순간 고통은 인정되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하며 사회는 같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안락함을 가장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고통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 없는 사회>의 전언이다.
고통을 멀리 하는 것은 분명 행복하기 위해서이지만 고통을 멀리함과 동시에 우리는 행복과도 함께 멀어진다. 고통을 회피하는 인간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드러내는 모든 과정은 사랑에 빠지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하지만 내가 조종할 수 없는 타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노출된다는 것 자체는 고통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평가받는 것 만큼 두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삶의 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고통 너머에 있는 가치인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자신을 세계에 기꺼이 내던지고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색을 이어가는 과정 가운데에서 인간은 희, 노, 애, 락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감각한다. 고통을 멀리하고 온실 속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고양된 가치에는 가닿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되 고통스러워하는 자신까지 혐오하는 일은 그만두자. 한병철은 고통을 출산에 비유했다. 고통 뒤에 생명의 탄생이 있는 것처럼 그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조건이 고통일 뿐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분명 괴롭지만 괴로움을 일으키는 고통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행복도 함께 지워진다. 출산의 고통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아기가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밤 12시가 되는 순간 오늘이 끝나고 내일이 시작되는 것 처럼. 고통과 행복이 맞닿아 있음을 인정하는 성숙한 인식만이 행복을 향한 항해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