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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악당 ㅣ white wave 1
최재원 지음 / 백조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재원, <아무도 모르는 악당>, 백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솔직하게 썼나 하는 걱정도 드는...)
문학이란 읽는 자와 쓰는 자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도 모르는 악당>은 일단 즐겁게 쓰인 글이다. 읽는 사람이었던 나는 열 번 중 여덟 번은 재미있었고, 남은 두 번은 공백으로 두고, 추가로 다섯 번 갸우뚱했다.
스타일은 일관적이다. 8편의 이야기는 모두 두 겹 이상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에서는 철수와 M, '노인-88012346'에서는 나와 노인, '대한UFO교'에서는 동진과 미란,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에서는 지렁이와 물고기와 비둘기와 개와 사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에서는 이야기 속의 나와 이야기를 하는 나, '개새끼를 다루는 법'에서는 꿈 속의 나와 현실의 나, '아무도 모르는 악당'에서는 존과 머독, '다리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에서는 한국에서의 나와 미노르카에서의 나.
우선은 재미가 있다. 하나의 서사 뒤켠에 감추어진, 혹은 직렬의, 혹은 병렬의 서사는 저마다 비밀이나 반전을 가지고 있었다.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 '아무도 모르는 악당'이 반전의 재미를 가장 잘 살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뭐, 후자의 경우는 영화 람보를 본 사람이라면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안 봤다. 이런 류의 기법은 이미 많이 사용되어 새롭지는 않지만, 애초에 내가 비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반면 ‘노인-88012346’,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와 ‘개새끼를 다루는 법’에 쓰인 비밀과 반전은 조금 뻔했다고 할 수 있겠다. ‘노인-88012346’에서 주인공이 기계 인간 수술을 받기 위해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좀 빤히 보였다. 특히 ‘아 시발 꿈’ 같은 류의 장치나 결말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는 액자 속을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결말에서 얻는 효과가 있었다지만, ‘개새끼를 다루는 법’의 결말은... 잘 모르겠다. 개새끼에게 ‘개새끼!’라고 외치는 장면은 묘한 공감성 수치를 이끌어 냈지만, ‘그녀가 나의 개새끼를 데리고 사라졌다’라는 결말을 개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의 경우는, 비밀이나 반전이 쓰였다기보다는... 운에 의한 결과주의 반어법이라고나 할까. 개체가 점점 의도치 않게 덕을 쌓아가는 것에 대한 문장의 냉소가 피식피식 웃겼다. 인간으로 태어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지만, 사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전생에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모순을 재치 있게 짚었다.
‘다리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는 결말 부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작가 노트에 쓰여있는 말마따나, 고아가 아닌 다른 종류의 괴로움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에 화자가 탄 배가 어머니가 계신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배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말했듯이 즐겁게 쓰였으나 모든 작품이 즐겁게만 읽히지는 못했다. 너무 자주 보이는 맞춤법 오류와 오타가 글의 재미를 반감시켰고, 고정관념도 수 차례 보였다. 물론 문학은 PC의 도구가 아니지만, 나의 성향으로 인해 글과 작가에 대해 계속 의심하며 읽으니 온전히 재미있게 읽을 수만은 없었던 개인적인 아쉬움.
다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된 메타포를 더 잘 이해하며 읽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건 내 문화 경험이 일천한 탓. 황금가지에서 나온 전작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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