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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지나 지음 / 이음 / 2021년 6월
평점 :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는 로맨스 판타지의 '클리셰'를 여성의 욕망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 로맨스 판타지가 여성의 욕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로맨스 판타지에 여성의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서문에서 작가가 "나는 이 책을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은, 가볍게 재미있는 읽을 거리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한 것처럼(18p),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이다. 물리적인 무게감도, 추상적인 무게감도 말이다. 문학 연구자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다양한 로판 웹소설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보다 보면 무척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로맨스 판타지에 드러난 여성들의 욕망과 결핍을 새로운 시선에서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아주 새롭고 재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이 로맨스 판타지에서 원하는 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로맨스 판타지가 그것을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주된 내용이며, 예시 작품은 크게 '정석적인 로맨스 판타지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 하에서 새로운 플롯을 개척한 작품 분석하기' 이렇게 두 가지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작품을 보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풀어준 점이 가장 좋았다. 나는 아무래도 최근의 경향에는 무디기 때문에, 책에서 예시로 드는 작품들과 그에 대한 설명을 실감 나게 이해하지 못할까 봐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필요한 것만 정리해주는 군더더기 없는 설명 덕에 전혀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설명을 맛깔나게 잘 하는 탓에 실제로 직접 찾아보고 싶은 작품들도 여럿 생겨 버렸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탱알 님의 추천사였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남성이 위협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거나, 권력 차를 상기시키는 기호로 변화한 이상 이성과의 ‘가장 친밀하고 안락한 관계’라는 신화도 심문에 부쳐져야 했던 것이다. ... 그러나 현실이 거북하다고 욕망까지 단념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성애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추천사의 말마따나 '페미니즘 리부트는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억압받아 왔고 지금도 억압받고 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혐오와 차별과 폭력이 만연하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정체성과 지위와 욕망은 여전히 다양하다.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짚어준다.
이성애는 배척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배척받아야 할 것은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권력과 폭력과 혐오다. 삶에서 누군가를 사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이미 그 자체로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의 디폴트가 되기도 한다.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은 최상의 정치적 올바름을 구현하지는 않을지언정 때때로 놀랍도록 솔직해진다."
- 탱알의 추천사 중에서
놀랍도록 솔직한 여성들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게 되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