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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꾸물꿈 - 전국 중고생들의 학급 문집 글 모음
신경림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꾸물꾸물 꿈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하시죠? 고등학교 졸업할 때 학급문집에 글을 썼던 기억, 다들 있으실 겁니다. 제가 졸업하던 해의 학급문집이 너무 재밌어서 전해의 작품들도 모아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글쓴이도 고등학교 학생들일 뿐이었지만 그 내용이 재치가 넘치고, 큰 감동을 주었죠. 이 책은 그런 ‘우리 반 학급 문집 만들기’ 캠페인 모음집입니다.
시를 쓴 학생도 있고, 잔잔한 수필을 쓴 학생도 있습니다. 만화를 그린 학생, 재치 넘치는 단
한줄을 쓴 학생도 있지요.
<아버지의 시집> 이라는 박상우 학생의 시가 재밌습니다. 스무 살 때 이 학생의 아버지가 시를 읽고 메모를 써 뒀나봐요.
“나를 기만하는 것은 자유롭게
체념은 부자유 속에서”
당시의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가 된 아들이 이 메모를 읽고 손발이 오글거렸겠죠. ‘나도 허영의 머리카락 날리며 낡은 것은 존엄하다 말하겠지’라고 혼자 읊조렸습니다. 이 시를 보고 있노라니 아버지와 아들의 친근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 아들도 스무 살이 될 무렵에 제가 쓴 글을 읽고 이렇게 반응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드네요.
<부모님의 손>을 쓴 김세훈 학생도 감동적이에요. 부모님의 손은 못났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죠. 나이를 그만큼 먹고, 고생도 많이 했으니까요.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 엄마(또는 아빠) 손은 못생겨서 싫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를 잘 키워 주신 흔적이라 말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에도 이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했었던가 반성하게 됩니다.
내년 1월이면 저도 둘째가 태어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다가 둘을 키운다는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납니다. 첫째와 둘째만 키우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관계까지도 키워야 하니까요. 제주 남경고 김민경 학생은 동생과 비교하는 듯 보이는 부모님에게 섭섭했나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구도 동생과 자신을 비교한 적이 없답니다. 스스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라는 거죠. 제 아들, 딸이 이런 대견한 생각을 했으면 좋겠네요. 안 하거나 못 해도 좋지만요.
<애벌레>라는 한 줄짜리 시를 쓴 김민철 학생이 있습니다.
꿈을 꿈을 꿈을 향해 기어간다.
이 책 제목이 될 정도의 간단하고도 멋진 시네요.
소설가가 되고픈 꿈이 있는 학생에게 필요한 재능은 뭘까요? 화려한 문체, 기발한 사건 전개, 날카로운 시대 묘사 등이 떠오르네요. 제가 만약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라 예비 소설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위치가 된다면 행복하겠죠. 그때 어떤 재능을 가진 학생을 찾아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변다은이라는 학생. 동물을 좋아하기만 하지, 키우는 것은 싫어합니다. 동물 청소도 하지 않고, 먹이조차 잘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이런 반성을 한다는 깨달음이 멋진 학생이에요. 제가 후원하고픈 학생은 이렇게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으며, 우직한 재능이 있어야 되겠네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은 것들』을 읽은 김수진이라는 학생도 있습니다. 비교적 어려운 책일텐데 바쁜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네요. 이 학생도 그렇고 이 학생의 부모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에요. 가르침을 받고 싶네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치’를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보다니. 저도 어릴 때 이런 책을 읽었으면 얼마나 좋앟을까요.
요즘 청소년들이 한심하다고 느끼시거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등 부정적인 생각이 많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