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문예단행본 도마뱀 2
김봉석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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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 제대로 못하고 /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 누구도 듣지 못하고 / 알지 못할 소리로 / 몸째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박재삼 <갈대밭에서> 중

 

책 제목은 위의 시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제목만 얼핏 봤을 때는 스무살 사랑 이야기 혹은 중년의 첫사랑 회고담인가 했다. 그런데 문득 '고백'이라는 말은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그 범주가 더 넓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만 열일곱 명이다. 시인, 대중문화평론가, 만화가, 문화기획자, 드라마작가, 사진작가, 성우, 라디오 PD, 시나리오작가 등 소위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필력이 '고백'이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단어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줄지도 궁금했다. 글 자체의 묘미를 맛보고 싶었달까. 결과적으로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은 셈이다. 필진 가운데 사진작가와 성우의 글은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 그런데 성우의 글은 너무 재미있어서 웃으면서 읽었고, 사진작가의 글은 전체 필진 가운데 가장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사진작가(자세한 약력을 보니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이훤 님이 쓴 '개인적이고 세세한 34가지 고백'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본다.

 

"좋아하는 이들을 떠올려보니 공통된 면이 있다. '곁'이라 부르는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언어에 정확하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꼭 맞는 말을 찾는 일이 스스로에게 중요한 이들. 타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나는 우리 각자가 언어 앞에서 치르기로 하는 수고가 좋다. 그런 정성과 세세함이 좋다. 언어 앞에서 성실해지는 대부분은 말과 마음이 가까웠다. 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언어로부터 시작되는 것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머물러주어 고맙다."(103쪽)

 

이 대목을 보면서, 나도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해왔구나 싶었다. 너무 가볍게 던지는 말,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도 않는 말, 경청은커녕 듣는 것은 아예 배제된 말, 친하다는 이유로 존중의 그릇에 담지 않는 말 등 같은 공간, 공동체에 있었지만 끝내 가까워지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을 자주 하는 부류가 아니었나 싶다. 이훤 작가가 개인적인 사색의 문장을 고르고 다듬어 여러 사진과 함께 보여주었다면, 저자들 중에는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거나 시나리오 형태로 보여주거나 자기 삶의 여정을 '긴 고백'이라는 정직한 글쓰기로 선보이기도 한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지 고백의 다양한 층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실상 어떤 모습으로 담았든지, 궁극적으로 저자들이 하고 싶은 것은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내밀한 말이 아닌가.

 

만화가 박순찬 님이 쓴 '마스크 뒤'라는 짧은 글과 그림도 좋았다. 잠깐 소개해본다.

 

"돌이켜보면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모였다고 해서,

마스크가 필요 없던 시절이라고 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싫은 직장 상사 앞에서,

무례한 손님 앞에서

웃는 마스크를 늘 쓰고 있었으니까.

하찮은 고백거리는 늘 마스크 뒤에 있다."(36쪽)

 

여러 저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과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들이 쓴 표현들에 공감하거나 감탄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말을 머뭇거려왔을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한 고백을 슬그머니 떠올려보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이성에게,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마음속에 맴도는 말들을 그때그때 해왔다면, 내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말하기와 관련한 수많은 책들은 어쩌면 처세와 생존을 위한 게 아닌가 싶고, 실상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서로의 문법이 다르고 각자의 단어 사전이 달라 어긋나고 엇갈리기도 한다. '고백'이라는 단어와 저자들의 이야기들은 내 안에 숨어 있던 깊은 말을 끌어올려주는 동력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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