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율곡전서
장숙필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은 '율곡 이이'라는 책을 읽었다. 오늘 숙제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위인전 읽고 독후감 쓰기이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는 7남매 중 4째로 어릴 때부터 학문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미 13살 때 진사시 초시에 합격하고, 산에서 조용히 불도를 닦으며 수양하던 이이는 마침내 내려와 유학, 이이가 나중에 이황과 같이 연구한 성리학 등을 연구하며 남은 일생을 산다. 

이이는 1536년 (조선 중종 31년 ) 12월 26일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이는 13살 때 진사과 초시에 합격해서 명성을 떨쳤고, 금강산에서 불도를 닦고 내려와 한성시, 생원과 초시, 한성시, 식년시 문과를 통과해 '9도 장원공' 이라 칭송을 받고 호조 좌랑에 임명된 후 , 청렴하다고 소문이 난 후 예조 좌랑에 임명되고 그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윤원형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로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인 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하지만 이 때, 수렴 청정을 하고 있던 윤원형의 누이 문정 대비가 죽어서 윤원형과 그를 따르던 보우 대사를 귀양 보내서 죽이고, 왕실은 한동안 안정 되었다.이이가 이 상소를 올리고 나서 사간원 정언에 올랐다. 하지만 이이가 벼슬을 사양하는 바람에 선조는 이이에게 끈질기게 편지를 해서  이이를 정3품 홍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하지만 여진족의 잦은 국경 침입으로 선조는 문관인 이이에게 병조판서 직책을 맡기고 , 이이는 군사, 성, 무기를 고치고 나라의 국방 정비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병조판서 직책을 마치고 함경도 관찰사로 갔을 때, 어릴 때 친구였던 재령 군수 최립이 이이 가족과 이이가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 곡식을 보내왔는데, 이이는 원래 있던 조금의 곡식도 충분하고, 최립이 분명 나라의 곡식을 보냈을 것이니 받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이는 다시 청주 목사로 가서 이황에서 끊어진 향약을 실시하고 청주의 재정을 잘 관리하고 청렴하고 좋은 사또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 선조가 이조 판서 벼슬을 내렸지만 거절하고 서원들이나 서당을 세워 나라의 인재를 길러 냈다. 하지만 이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조의 끈질긴 편지로 이이는 결국 이조 판서 벼슬을 받는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편지를 받고 만언봉사와 그 유명한 ' 10만 양병설 '을 상소한다. 그리고 이조 판서에서 왕실의 사무를 관리하는 돈녕부의 종1품 벼슬인 판돈녕 부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이의 병은 더 깊어지고, 이이는 결국 누워서 49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나중에 벼슬이 좌의정까지 올라가지만 당파 싸움에 휘말리고 우계 성혼과 같이 이이와 친한 송강 정철이 병조판서가 되기 전에 이이에게 6조 방략을 듣고 간 날 이튿날인 1584년 1월 16일 새벽, 이이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이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옷을 단정하게 고쳐 입은 뒤, 자는 듯이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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