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 자전 고전 - 아버지와 아들, 책으로 말을 걸다
김기현.김희림 지음 / 홍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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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목사와 아들 희림 군의 첫 번째 공저였던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에 대한 서평을 쓴지 6년째 되는 때, 새로운 두 사람이 함께 쓴 책, ‘부전자전고전이 나왔다. 첫 공저인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철학 부자의 변증학개론 시즌1’이었다면, 이번 책은 시즌 2’라 부를 만하다. 첫 공저를 읽을 때에도 나는 커다란 절망감에 휩싸였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희림 군의 독서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학위가 2개나 있는 나보다 훨씬 깊고 폭 넓다는 것에 너무나 놀랐었고,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 자신을 매우 초라하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려 고전으로 신학자이자 종교 철학자인 아버지와 대작을 하는 수준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는 정말 넘사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버지 목사의 필력이 다소 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아마 아들만 칭찬만 들어도 배부를 아버지 김기현 목사이기에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지 싶다.^^

 

이 책의 초고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기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먼저 아들과 어떤 도구가 되었던 자유로운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들의 로망(?)을 저자인 김기현 목사는 이미 이룬 것 같아 부러웠다. 저자는 맺음말에 거친 초고를 읽고 매만져주었다는 감사의 표현으로 이름까지 거명하시면서까지 나를 치켜세웠지만, 이미 초고부터 잘 다듬어진 글이었다. 단숨에 쑥 읽혀 내려가고,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가득한 책이 바로 부전자전고전이다.

 

이 책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철학의 만남을 통해 현실 세계에 주요 중심 주제들을 대부분 망라하면서도, 심도 있게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존재로부터 시작된 철학적 대화는 국가정의에 대한 담론을 넘어, ‘사랑진리의 강을 건넌 후, ‘학문이라는 종착역을 맞이하게 된다. 주목할 부분은 각 주제에 대한 편지를 쓸 때마다 인용하는 책들을 각 장의 말미에 목록으로 정리해 두었다는 점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이 책에 소개된 책들만 소화해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 블루로 힘겨운 시간을 지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차갑게만 느껴지는 신학과 철학라는 도구를 가지고 부자간의 정을 가득 먹음은 교환 서신으로 풀어낸 책, ‘부전자전고전을 통해 우리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불어 알찬 신학적, 철학적 지식으로 우리의 지식의 곳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부자지간에 책으로 서로 말을 걸 듯, 이제 독자에게 이 책으로 말을 건다. 그 대화의 바다에 푹 빠져 보시길 바란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억되고 싶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고 싶다. 동시에 아들인 너를 기억하고 너에게 기억되는 나이고 싶고. 그게 아빠야. 내가 된다는 것, 그것은 기억하고 기억되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p34)

아빠와 제가 나누는 편지를 읽는 독자들께 이 글이 딱딱하고 어려운 고전 해설이나 비평이 아니라 여전히 공부하고 배우는 학자와 학생이 주고 받는 읽을 맛 나는 지상(紙上) 대화이면 좋겠습니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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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요람 하조니 지음, 김구원 옮김 / 홍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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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책에서 헬레니즘 문화 영향을 받은 ‘해석학적 기저’ 의해 구약성서를 읽어내는데 있어 ‘이성과 계시분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만약 구 성서를 이러 이분법적 구조로 읽게   ‘굴절 렌즈‘가 되어 구약의 저자들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구 본문을 과장하거나 도리어 저자들이 강조했던 부분은 보지 못하는 우 범하게 된다는 말이다(p21).

 

그래서 저자  책을 통해 ‘구 성서를 이성적 저서로 공부해야  이유 체계적으로 논증하고  과정을 통해 구성서 읽기를 통해 우주 본질 정의로운 삶에 관 보편 담론을 이끌어 낼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위해 몇몇 장애물들을 나열하고,  장애물을 극복할 도구도 제시한다(p22).

 

저자는 이러 목표를 이루기 위해 1부에서 먼저 1장을 통해 구 성서의 구조 다룬다성서는 일종의 ‘다양한 길이와 장르의 글들이 모 선(p53)’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어떤 합리적인 배 순서로 묶여 있는지를 살 다양한 문 구조에 대 이해 가져 , 철 사상을 탐구하는 전략을 세  있게 된다고 필자는 말한다.

 

저자는 다양한 문학구조들이 배열되어 있는 양상을 ‘구조물로 건축되었다(p55)’ 비유한다 구조물을 구성하는 세 개 중요한 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서’, ’선지자들의 설교’ 그리고 성문서(히브리어 ‘크투빔’)이다. 

 

역사서 분량으로 보았을  구약성서의 거 절반을 차지한다. 태초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최종멸망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구 성서의 뼈대 이루고 나머지 구약성서의 부분들이 이 감싸고 있는 구 성서의 전체구조  때에, 역사서 구 성서의 기초이며 핵심임을 암시한다

 

‘선지자들의 설교’ 구 성서의 1/4 해당하는 분량이다. 히브리어 ‘나비’ 불리는 선지자들은 대 설교 통해이스라엘 유다 왕들  제사장들을 아우르 국가 권력층들을 향해 권력 남용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하나님을 종교적 생활 양식을 질책함과 동시에 포로 생활 이후 귀환 것과 회복의 메시지 담는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였다.  

 

끝으로 성문서는 나머지 1/4 해당한다. 일반적인 기독교 구 성경의 순서와는 다르게 히브리 구 성서에서 성문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시잠언욥기, 메길롯(두루마리,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 그리고 다니, 에스라-느혜니야이다. 다양한 문 장르를 통하여 앞선 역사서에 대 비평적 해설을 제공한다(p63).

 

이어지 2장에서 저자 구 성서의 저 목적을 다룬다. 저자 먼저 역사서 ‘증언이나 증거로 읽는 것’에 반대한다만약 이 방식으로 역사서 읽게  경우, 포로 후기 유대인들에게 이 역사 기적적 사건들에 대해 믿을 만 증언을 제공하는  외에 쓰임새가 없어져버리는 샘이다. 그렇게 되 구약성서의 ‘역사서’ ‘몇몇 유대 종교적 교리들을 전해주 신약 성서의 열등한 아류(p79) 전락하고 만다. 유배 중인 유대인들로 하여 이방신을 버리게하고 이스라 하나님과 그 율법으로 돌아오게  그들이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게하는 것이 역사서 저목적이다

 

예언 설교들은 진리와 선을 깨닫는 것의 어려움과 관련된 심리학과 인식론의 문제 건드린다(p88). 성문서는 주제에 있어서 역사서 선지서에 느슨하게 연결된다. 하지 공유하는 주제 분명하다. 바로 현세의 원리에 관 지식과지혜 얻는데 집중한다(p89). 

 

3장은 성경 저자들이 ‘구약성서’를 통해 논하고자 ‘철학적 문제’ 무엇인지를 논한다. 역사서 대부분의 장르인 내러티브 통해서 구약성서의 저자 우리가 실제 삶에 부딪히는 미묘하고 복잡 다양한 상황들을 이야 방식으로 다룸으로서 추상적, 이론 논설이 아 보다 피부에  닿는 ‘우월 철학적 사유’ 하게 만든다

 

선지자들의 설교 문학적 관점에서는 ‘시’인 동시에 논증이다놀라운 수사학적 탁월성과 문학성을 지 동시에 특정세계관과 윤리관을 논증하는 것이 선지서 저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선지서 통해 우리 그들의 사상을 밝히는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어지는 2부에서 ’다 편의 사례 연구’를 기술하여 앞선 1부에서 언급한 ‘구 성서의 철학적 읽기’의 예 제시한다. 4장과 5장의 내용만 언급해 본다면, 4장에서는 가인으로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흐르 내러티브에 대 해석을 통해 ‘농경의 방식’이 제국적인 국가의 악과 우상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보여줌으로 주류가 아 주변인(양치기)로서 삶의 방식을 구약성서가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5장에서는 출애굽에서 시작하여 사사기 걸쳐 통일 왕국분열 왕국의 시대 아우르 역사서 흐름을 분석하여 거기에 드러나 ‘정치철학’을 파해친다.요컨데 정치 발전을 위해서 국가를 세  밖에 없지만 근동의 ‘열방’들처럼 힘이 무제한적이어서는  된다. 제한 통일 국가의 덕목을 제시함으로 ‘제한 민족국가’와 ‘현실 국가’의  극단사이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백성과 하나님의 지지 얻는 것이 ‘인간의 정치적 사명’임을 드러낸다(p203).

 

결론적으로 저자 구 성서 전체는  작품의 저자들이 은유, 유비, 유형을 활용하여 일 원인이나 본성에 대 이론들을 정립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 성서를 읽을 때에 이러 ‘저자들의 철학적 사유’ 발견하게 되고, 저자들은 독자들로 하여 이러 이성적 사고 통하여 윤리학정치철학인식론형이상학, 구 성서의 믿음에 관용을 발견하기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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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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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러 장르로 씌여진 책이다. 이야기도 있고, 편지도 있고, 역사적 기록도 있다. 그리도 또 하나의 빼 놓을 수 없는 장르 도 있다. 시라고 하면 시편만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잠언, 전도서, 욥기’, 그리고 대부분의 선지서들도 시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자는 장르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설교학자들은 강조한다. 하지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의 저자 월터 부르그만은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설교를 로 하라는 말인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렇다면 이제 설교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다행이도 책을 읽어보지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저자는 설교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설교의 임무와 가능성은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새로운 형식의 담화로 드러내는 것이다. 극적인 담화, 예술적인 담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대화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담화, 과학 기술의 이성을 탈피한 담화, 추상성을 띠는 존재론에 얽매이지 않는 담화, 구체성을 겁내지 않는 담화가 바로 그것이다.”(p13)

 

이를 위해 저자는 설교자로 하여금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인이되라는 것은 함축하여 짧은 문구로 독자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서 를 쓰는 시인의 역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산문의 세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시인”(p14)으로서의 설교자를 말한다.

 

설교자는 그러한 시인이 되어 하나님은 배상이 이루어진 뒤에 만아 있는 통증을 해결하신다는용서의 담화를, ‘하나님은 신실함과 보증이 담긴 말씀으로 소외와 분조의 순환을 끊으신다는친교의 담화를 그리고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그분에게 복종할 때 새로운 삶을 주어진다는복종의 담화를,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순응을 요구하는 세계를 향해 주목할 만한 저항의 용기를 보이고, 스스로 순응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주장하는 오만함이 그분의 준엄한 위엄 앞에 항복하여 찬양할 때에 참된 자기 자신된다는자유의 담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복음을 산문으로 환원하게 되면 결국 우리의 신앙공동체는 복음의 약속을 오용하게 되고, 오용은 삶의 왜곡을 일으키고, 삶의 왜곡은 마비와 통증, 소외와 분노, 쉼 없는 상태와 탐욕, 순응과 자주권으로 귀결되고 만다.”(p208) 말씀이 던지는 돌직구변화구로 다듬어 유인구가 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설교자는 뻔한 스토리와 밋밋한 시놉시스로 평균 시청률은 유지하는 드라마 작가가 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과 대담한 담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때에 설교자는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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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앵무새 -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읽기
스캇 맥나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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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앵무새와 동거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책 제목 파란 앵무새는 저자의 기발한 은유의 산물이다. 저자는 파란 앵무새를 이렇게 정의한다. “파란 앵무새 구절이란 우리의 거룩한 정신의 정원에 들어오게 하기 보다 새장에 가두고 입을 막고 싶어 하는 이상한 성경 구절을 말한다(p297).” 성경을 가까이 하고 꾸준히 읽고 묵상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은 여지없이 이 파란 앵무새 구절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절에 대해 우리는 매우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파란 앵무새를 만날 때마다 지름길로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런 지름길을 5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는 율법 모음집으로 대하는 방법, 둘째는 축복과 약속 모음집으로 대하는 방법, 셋째는 로르샤흐 잉크 얼룩으로 대하는 방법, 넷째는 거대한 퍼즐로 대하는 방법, 다섯째는 유명 쉐프의 레시피처럼 대가의 결정을 따르는 방법 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지름길을 선택하는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저자는 파란 앵무새와 같은 성경말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3가지 길을 제시한다. 첫 번째 길은 성경을 이야기로 읽는 것이다. 성경을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1차적으로는 성경 전체가 통일된 이야기의 요소(플롯, 등장인물, 저자)’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의 통일성은 곧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이 이야기가 성경을 하나로 묶고 있다.(p95)”는 사실을 인지할 때에 우리는 파란 앵무새를 새장에 가두지 않고 자유로이 정원을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어선 안 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어느 누구든지 기여할 수 있으며 상호 협력 하에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처럼 거대한 하나님의 이야기인 성경의 맥락아래에서 끊임없는 위키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성경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음을 인정하고 성경을 대해야 한다. ‘앵무새를 성경 전체의 맥락 아래에 두는 것이다.

 

두 번째 길은 성경을 우리와의 관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더 깊은 관심을 두고 성경을 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귀 기울여 그분과 관계를 맺는(p124)”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성경읽기이다. ‘귀 기울이기이다. 우리는 성경 속 하나님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통해 그 분께 주목(attention)’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듣게 되는 말씀이 내 속사람 가운데 흡수(absorption)’되어, 이 모든 것을 토대로 행동(action)’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세 번째 길은 분별 양식을 통해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시대는 변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별하는 양식(p167)”이 있음을 우리는 이미 신약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분별 양식은 신약 성경의 기본 방향과 현대의 상황을 비교하여 그 이유가 적합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p188~189) 또한 분별 양식은 신학적 발전’(p193)이라 부를 수도 있고, ‘더 깊은 원리’(p195)라고 말 할 수도 있으며, ‘지식의 확대’(p197)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시대와 교회, 같은 교회 안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분별 양식을 통해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일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파란 앵무새를 바라 볼 수 있다.

 

내가 파란 앵무새를 길들이려는 시도는 헛되다. 반대로 내가 파란 앵무새의 자유로운 날갯짓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하나님성경을 통해 나를 설복해 가시는 것을 매 순간 경험하는 것이 옳다. 내 인생의 정원에 파란 앵무새가 마음껏 노닐도록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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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일상
김병년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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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인가, 우상숭배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QT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말씀 묵상의 세월은 20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지금도 그 때 했던 QT책이 다 남아 있다. 이사를 몇 번 하면서도 아내의 잔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내 책꽂이 한 켠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가끔 옛 적 QT노트를 들춰보곤 한다. 첫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조잡했다. 주어진 본문 읽고는 하나님 이러이러하게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떤 날은 주님! 오늘은 진짜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나요. 죄송합니다. 아멘!” 보면서 키득키득 거린다.

 

10대를 지나 2~30QT노트로 넘어오면 제법 묵상의 깊이가 느껴지는 멘트들이 QT노트를 수놓는다. “! 내가 대학생 때 이런 통찰을....” 나도 모르게 으쓱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다가 문득 내 맘에 주님이 물으신다. “통찰? 그게 니끼가!” 순간 도둑놈 심보가 들켜 얼굴이 화끈거린다.

 

묵상의 매너리즘은 메시지가 어디로부터인지 착각하는데서 비롯된다. ‘쉐마라고 하지 않았나? 말씀을 펴놓고는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인데, 나는 들리는 게 아니라 내 속에서 떠오르는 거야!’ 이러고 앉아 있으면 게임 끝이다. 멸망의 길이 활짝 열렸다.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79)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나는 매일 아침 묵상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병년 목사님의 책, ‘묵상과 일상은 이처럼 왜곡된 묵상의 태도와 관점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터닝 포인트이다. 저자의 담백하고 묵직한 묵상의 여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잠잠히 각자의 묵상의 시간과 일상의 간극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의 깊이 있는 묵상에 대한 통찰이 전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성공한 묵상과 일상의 조화를 나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다. 안 되는 건 왜 안 되었던 건지, 그래서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포장 없이, 가감 없이 고백한다. 그러하기에 그 고백에 우리는 토를 달 수 없다. 그저 조용히 내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기 바쁘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말씀 묵상이 더 깊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영적 꼰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묵상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점점 수단이 되어간다. 설교하기 위해, 가르치기 위해 묵상은 도구가 되어 간다.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은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한다.”(92) 그 평범한 일상을 비범함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시들어 가자 말씀 묵상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 졌다.

 

묵상이 점점 도구가 되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나도 모르게 말씀 묵상만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불신앙(?)’ 때문이다. 이상하다. 목사가 어떻게 말씀만으로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목회의 자리에 서면서 점점 내 마음에 독버섯처럼 이런 믿음 없음이 자라고 있었다. 경험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묵상이 내 삶에 언제나 형통함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151) 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말씀은 답안지가 아니라 길라잡이이다. 부끄럽다. 목사 되기 전에는 말씀의 인도하심을 믿었는데 이제는 내 지식과 경험을 더 믿고 있는 꼴이라니...

 

이 책을 통해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의 말씀 묵상! ‘자기 방식으로의 사랑, 우상숭배가 아닌 들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말씀 묵상을 회복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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