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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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믿음은 뿌리가 깊고, 견고하다. 이를테면 주류경제학이 전형적 인간상으로 상정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핵심 요소는 합리성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욕망을 최대한 충족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으로 사고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경제학은 종교라고 선언한다. 경제학이 가정하듯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도록 행동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언론학자 강준만도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본다. “많은 경우 이성은 감정의 이거나 호위 무사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과, 감정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우리는 마침내 감정 독재체제 하에 살게 됐다고 주장한다. <감정 독재>50가지의 심리학 이론을 빌려 감정 독재체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노력 정당화 효과기본적 귀인 오류

 

강준만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해병대 출신의 엄청난 자부심에서 노력 정당화 효과를 읽고, 자신의 지각과 타인의 지각에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현실을 통해 기본적 귀인 오류를 설명하는 식이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해병대 특유의 자부심은 그들이 받은 혹독한 훈련에서 비롯된다. 높은 지원율을 뚫고 합격해 엄청난 기합과 지옥 훈련을 겪은 이들은 해병대라는 이름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노력 정당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강준만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감정 노동자들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하는 것도 노력 정당화 효과로 해석한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란 생각이 그들을 탐욕과 오만의 포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각할 때는 길이 막혀서 늦었어라고 하며 지각의 원인을 외부 상황 탓으로 돌리지만, 타인이 지각하면 늦장을 부리다가 늦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지각의 원인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것은 기본적 귀인 오류.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적 제약은 잘 알기 때문에 내 문제는 세상 탓을 한다. 하지만 타인이 처한 상황은 잘 모르기 때문에 타인의 문제에는 사람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 귀인 오류가 자주 나타나는 미국 사회에서는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사회 구조적 문제보다는 범죄자 개인의 정신적 문제에서 찾으려 한다. 강준만은 이상복 <중앙일보> 기자의 말을 빌려 이런 식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일시적 공포는 피할 수 있지만, 책임을 사회에 묻지 않으니 같은 사건이 재연되기 마련이다라고 말한다.

 

<감정 독재>는 이처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지, 그런 판단들이 어떤 부정적 결과를 낳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감정 독재인가, ‘제한된 합리성인가

 

강준만이 <감정 독재>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이론과 사례는 흥미롭고,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하지만 그의 논의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데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준만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누군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오류를 저지른 상황에서 시작하니 그가 설명하는 여러 효과 역시 인간의 비합리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한된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소개한 여러 심리학 이론이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제한된 합리성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의 의사결정을 분석한다. 지식의 불완전성, 예측의 어려움, 행동 가능성의 현실적 범위 등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인간은 완전한 합리성을 추구할 수 없고, ‘제한된 합리성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체스에는 10120개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이를 모두 분석하고 자신의 차례마다 최선의 수를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항상 최선의 수를 두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상대방을 이길 수만 있다면 굳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복잡한 실제 상황을 다루기 위해 단순화된 모델을 구축한다. 이것이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완전한 합리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가끔 오류가 있지만 가격 대 성능비가 탁월한 단순화된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순화된 모델의 합리성

 

이 책이 다루는 50가지 심리학 이론도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단순화된 모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준만은 노력 정당화 효과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그만큼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현실일 수도 있다. 부와 명예, 화목한 가정 등 세상의 가치 있는 것 중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보면 노력 정당화 효과는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한 단순화된 모델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기본적 귀인 오류역시 반드시 단순화된 모델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건의 책임이 실제로 사람에게 있을 때가 많다면, 부족한 정보로 책임 소재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 탓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실 강준만이 든 지각 사례만 해도 지각한 사람을 탓하는 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지각도 하던 사람이 한다. 수년간 만나면서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자주 지각하는 사람도 있다. 지각하는 사람과 지각 안 하는 사람의 분류는 시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오래 만날수록 처음 했던 분류가 들어맞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남의 지각에 사람 탓하는 것은 가끔 오류는 있겠지만, 대체로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특정 상황에서 오류를 낳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낳는 심리적 메커니즘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노력 정당화 효과기본적 귀인’, 그리고 그가 소개한 다양한 심리학 이론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도를 지나치지만 않으면 합리적인 사고방식일 수 있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감정 독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제한된 합리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경우 이성은 감정의 이거나 호위 무사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준만의 말과 달리 감정 독재로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감정은 이성의 이거나 호위 무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사 결정을 감정 독재로 설명하려든 그의 판단도 일종의 오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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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대하여 동문선 현대신서 9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현택수 옮김 / 동문선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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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4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정치에 입문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정치신인이 총리가 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그의 이름은 베를루스코니. 텔레비전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 전방위 매체를 거느린 매체 재벌이었던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거느린 언론사를 동원해 선거전을 펼쳤고, 마침내 자신이 속한 우익연합의 승리를 이끌었다. 19943월의 이탈리아 총선은 텔레크라시telecracy), 즉 텔레비전(television)에 의한 지배(cracy)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는 계기가 됐다.


베를루스코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현대사회에서 텔레비전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이 가진 이 영향력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고 있는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텔레비전에 대하여>에서 텔레비전이 정치적 삶과 민주주의에 큰 위험을 준다고 선언하며 텔레비전이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 위협하는지를 설명한다.


시장에 종속된 텔레비전

 

부르디외는 저널리즘, 특히 텔레비전이 점점 더 시장의 요구에 종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시장의 요구가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된 것이 바로 시청률이다. 텔레비전은 높은 시청률을 위해 사람들이 정말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보다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쉬운 선정적인 사건사고를 전달하려 한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텔레비전 뉴스의 시작에 프랑스 축구대회의 결과나 갑자기 편성된 다른 스포츠 사건, 혹은 정치행위의 가장 일화적이고 의례적인 면(외국 국가원수의 방문, 혹은 자국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다루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그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특히 정치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자연재해사건화재 등 단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을 즐겨 다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텔레비전에 대하여> 88

 

하지만 텔레비전이 이처럼 선정적인 사건사고에만 몰두하는 것은 사람들을 탈정치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건사고는 정치공백화 현상을 만들고, 사회적 삶을 탈정치화시키며, 일화나 소문(스타나 왕족의 삶은 국내적 혹은 세계적인 사건이 됨)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말하자면 텔레비전 뉴스는 정치적 영향이 없는 사건들에 한하여 주의를 끌면서 교훈을 얻고자이것들을 극화시키거나, 혹은 사회 문제들로 전환시킵니다.”-<텔레비전에 대하여> 88

 

획일화된 뉴스

 

그렇다고 해도 시청률 경쟁에 뭔가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경쟁 속에서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뉴스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부르디외는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기자들은 서로 속보를 찾기 위해 경쟁하지만, 주요 텔레비전 방송국의 뉴스들은 서로 비슷하다. 다른 텔레비전 뉴스가 다뤘기 때문에 우리도 그것을 다뤄야 하고, 우리가 먼저 다루면 다른 텔레비전 뉴스도 우리를 따라서 다룬다. 그래서 결국은 모두가 똑같아진다.

 

기자들은 무엇인가를 먼저 보고 보이게 하기 위하여, 거의 아무 짓이나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자들보다 항상 앞에 있거나 그들을 앞지르기 위하여, 혹은 그들과 달리하기 위하여 기자들은 서로 베낍니다. 그리하여 결국 모두 똑같아집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배타성의 추구가 창조성독자성을 낳는데, 언론에서는 획일화와 평범화를 가져옵니다.”-<텔레비전에 대하여> 33

 

결국 시청률 경쟁은 텔레비전 뉴스가 선정적인 사건사고에만 매달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탈정치화하고, 뉴스의 획일화를 가져온다. 이는 정치적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시청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시청률이야말로 민주적이라고 말한다. 다수결의 논리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보는 뉴스를 방영하는 것이 민주적이란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수의 논리에 따라 판가름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학자 잭 도널리는 사회가 다수의 뜻에 따라 소수를 학대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때론 다수의 의사에 반해서라도 소수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수결과 소수의 권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게 민주주의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청률은 민주적이지 않다. 시청률의 논리는 철저하게 다수결에만 의존한다. 사람들이 적게 보는 프로그램은 광고가 안 붙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폐지당한다. 선정적이고 상업적이지 않는 뉴스 역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제작되지 않는다. 시청률의 논리 앞에서 소수의 권리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포장된 시청률과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디외는 시청률을 향해서만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 이는 시청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시장 논리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시장논리는 소수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획일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이다. 동네상점이 없어진 곳을 메운 프랜차이즈 상점들은 우리의 입맛과 취향을 동질화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는 소수의 권리나 다양성이 설 곳이 없다. 시청률에 대항한 싸움이 시장에 대항한 싸움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날카로운 문제의식, 아쉬운 결론

 

시청률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부르디외의 지적은 날카로울뿐더러 세계적으로 텔레크라시(telecracy)의 문제가 대두하는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정작 시청률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에 대한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다.


부르디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교육이다. 19세기 프랑스 공화국의 창시자들이 교육의 목표를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하여 법을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며 주장하고 노동조합 등을 만들 줄 알도록 필요한 수단을 갖추게 하는 것에 뒀듯 오늘날 텔레비전 뉴스의 생산자들은 교사노조협회 등과 연대해 텔레비전의 수용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받도록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텔레비전이 미치는 해악의 심각성에 비하면 한가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연하다. 비유하자면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약은 안 주고 그저 밥 잘 먹고, 푹 쉬고, 체력관리 잘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청자 교육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교육을 통해 시청자 수준이 높아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에도 텔레비전은 끊임없이 시청자를 탈정치화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인데 이 책에는 그동안 무엇을 할지에 대한 대답은 빠져있다.


또한, 이 책은 텔레비전을 종속시킨 시장의 한 축인 광고주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시청자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광고주도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많이 할 것이고,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역시나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광고주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결론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포장된 시청률과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부르디외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 돼야 한다. 시청률, 나아가 시장논리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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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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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세월호 참사를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후 한동안 언론은 온통 세월호 참사에 관한 뉴스뿐이었다. 구조현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청해진해운과 구원파, 유병언 같은 이름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시간이 흐르자 '세월호 피로감'을 말하는 이들이 나올 만큼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졌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수많은 기사를 봤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 공식 인터뷰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는 큰 기대감이 없었다. 이미 세월호 참사는 알만큼 아니까 이 책을 통해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될 거란 기대 없이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나는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고 있었다.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훌륭한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슬픔이다. 유가족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아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을 슬픈 마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똑같다. 

아이와 사이가 좋았던 부모는 아이와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아이와 사이가 나빴던 부모는 잔소리만 하고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후회한다. 그런 슬픔은 어느 순간에 사람을 무너뜨린다.

"승희를 (안산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하고 다음 날 장례식 치를 준비를 해야 해서 집으로 가려는데, 우리가 진도 내려갈 때 차를 단원고 옆에다 주차하고 갔었거든요. 차를 탔는데 승희 아빠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매일 넷이 타다가 셋이 탄 그 느낌,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 2학년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씨, 본문 23쪽 중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몇 번이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르기를 반복했다. 딸이 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했다는 생존 학생의 증언을 듣고 아버지(2학년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씨)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아는데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훌륭한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황장애 때문에 원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없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내딛는 걸음마다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광화문 광장을 향한 어머니(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의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상상해보려 했지만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듯 짐작조차 하기 힘든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사가 일어난 일시와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의 심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면서 세월호 참사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과 대책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에 놓인 것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죽어간 이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참사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서 대책을 세우는 것은 모두 그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는 셈이다.

"유가족도 실종자 가족 속 타는 건 알기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는 비슷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도 때론 그렇다. 딸의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진도체육관에 내려와 넉 달 동안 실종자 가족과 함께 지낸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씨는 "유가족도 실종자 가족 속 타는 건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진도에 가서 범대본 회의나 TF회의에도 난 그저 따라만 들어가지 아무 말 안 해요. 실종자 가족의 마음이 우리 마음보다 애절하고 더 강하잖아요. 내가 뭐라고 할 얘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가끔 유가족들이 진도에 와서 또 자기 할 말을 다 할 때가 있어요. '왜 예전에 애들을 못 구했냐'라며 관계자들한테 따지는 거지. 그 사람들은 시신이라도 찾은 사람이잖아. 그런데 여기 실종자 가족들은 못 찾았고. 그러니까 실종자 가족은 정부가 뭔 얘기를 하나 들으면서, 애들을 찾을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라도 있나 간절해 죽겠는데 유가족이 엄한 말만 하니까 실종자 가족들이 우리에게 화를 내는 거야. 유가족들 내려오지 말라고." - 본문 270쪽 중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끔찍한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들도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하물며 나를 비롯해서 그런 슬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유가족과 실종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매일 넷이 타다가 셋이 탄 그 느낌,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느낌이 뭔지, "딸이 죽고 나니 훌륭한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심정이 뭔지 모른다. 그런 느낌은, 그런 심정은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는 지겹다"며 세월호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광화문광장에서 '폭식투쟁'에 임했던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지겨워해도 될 만큼 타인의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 신형철, <눈먼 자들의 국가> '책을 엮으며' 중에서

어쩌면 그 지겨워하는 태도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지겨워하면서 타인의 말에 귀를 닫기 때문에 세상의 그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월호 참사를 잘 안다고, 이제는 지겹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면서 유가족의 말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줄이는 길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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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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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란 글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어라', '세월' 같은 말의 의미는 변했다. 많은 사람은 이제 세월이란 단어를 들을 때 세월의 사전적 의미인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당시 배 안에서 죽어간 이들을 먼저 떠올린다.

후쿠시마도 어떤 사건 이후 뜻이 바뀐 단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후쿠시마라는 단어에는 그늘이 졌다. 후쿠시마라는 단어는 이제 단순히 일본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체르노빌과 더불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엄중한 경고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이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은 이런 후쿠시마 이후의 세상을 사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탈바꿈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각계 전문가 21명과 인포그래픽 팀을 모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고, 핵과 방사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의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실이 바로 <탈바꿈>이다.

탈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탈핵을 주제로 한 책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러 권 나왔다. 하지만 <탈바꿈>은 그런 책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

첫째, 애초 입문서로 계획된 만큼 초보자가 읽기 좋다. 원전에 관한 내용은 용어부터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탈핵 용어사전'을 부록으로 삽입해 전문 용어를 설명하고 있고, 본문도 비교적 쉽게 쓰여 있다. 특히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동영상과 책, 언론기사들을 소개해 이후에 더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둘째,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탈바꿈>은 후쿠시마의 실상과 한국의 원전 실태를 비롯해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독일의 탈핵 사례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윤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소장이 제기한 의료방사선 문제는 다른 책이나 언론기사에서 잘 다루지 않던 문제라 흥미로웠다.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과정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의료방사선이라 하는데, 한국은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 등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영국의 '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를 사례로 들어 구체적인 정책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셋째, 단순히 원전이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선경 방사능안전급식 실현을 위한 서울연대회의 대표는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다.

전 대표는 방사능 정밀검사를 실시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식품을 이용하거나 마트에 방사능 검사 체계를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며,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에 식품 방사능 검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한다. 모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실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는 무료로 방사능 검사를 해준다고 하니 서울시민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듯하다.

핵폐기물 문제가 기술 문제?

그럼에도 내용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지만,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탈바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핵폐기물을 다룬 대목이다. 일본의 반핵운동가 고이데 히로아키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에 비유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음을 꼬집은 것이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이 때문에 설령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원전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핵폐기물 문제는 탈핵 진영에서 원전을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탈바꿈>에 서술된 핵폐기물에 관한 설명은 아쉽다. 김익중 동국대 교수는 현재 우리 기술로는 50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방폐장을 건설할 수 있는데 사용후핵연료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지 않는 한 50년에 한 개씩 중간저장소를 약 2000개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중간저장소를 2000개나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고,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는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10만 년 동안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내가 원자력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면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50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방폐장을 만들어놓고, 그동안 기술을 발전시켜 오랜 시간 쓸 수 있는 방폐장을 건설하면 된다고 반박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중간저장소를 2000개나 만들 필요도 없고,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는 횟수도 줄어드니 그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게 줄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한 것처럼 핵폐기물 문제가 기술 문제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해결되거나 심각성이 크게 줄어드는 문제인 셈이다.

또 아쉬운 점 하나는 정부의 원전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설명하는 데만 주력하다 보니, 정부가 이런 잘못된 원전 정책을 왜 추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이 위험하고, 핵폐기물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없는데다 독일 같은 성공적인 탈핵 사례도 있는데 정부는 왜 계속 원전을 확대하려 하는지 이 책만 봐서는 알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탈바꿈>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책 한 권만으로 탈핵의 모든 것을 아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데다 이 책은 탈핵 입문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데다 '탈핵 용어사전'을 실어 전문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이 책은 참고할 만한 각종 동영상과 책, 언론 기사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가는 것부터 하나씩 보면 된다.

소설가 장정일은 <공부> 서문에서 "공부란 원래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쓴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그 '조금 한' 공부를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나눠줬다. 그러니 그 다음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공부'할 차례일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탈바꿈>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이 책에 소개된 탈핵 동영상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탈바꿈>을 읽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탈핵 공부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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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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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라는 한 번의 '사건'이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겼는지를 고통스러우리만치 절절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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