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어떤 역사학자가 말했다.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어떤 입장인가, 어떤 사관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정종 3권, 2년(1400년) 3월 19일


세자가 신도에서 이르니 잔치를 베풀어 매우 즐기다

세자가 신도(新都)에서 이르니, 임금과 세자가 양청(涼廳)에 나아가서 사후(射侯)하는 것을 구경하고, 인하여 잔치를 베풀어 지극히 즐기었다. 임금이 일어나서 춤을 추니, 세자가 취한 것이 심하여 임금의 허리를 붙잡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이 너의 진정(眞情)이로구나!

 -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1400년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왕위를 정종에게 맡긴 이방원은 세자에 오른다. 어느날 잔치를 벌이다 술이 취해 정종의 허리를 잡는다. 별 의미없는 행동이지었을지 모르지만 정종이 "진정(眞情)"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졌다. 


진보적인 박시백은 태종의 집권을 단순한 쿠테타로 보며  이 사건을 '우린 형제다. 그러므로 보호하겠다. 안심하라' 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방원을 철저히 권력지향으로 본것이다. 

                                                                                            -박시백, 조선왕조 실록 2편에서


이에 보수적인 이한우는 이방원의 집권을 구국의 결의로 본다. 방석,방번을 죽였지만 이방원의 뜻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왕권중심의 조선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세에 몰리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 사건도 


"너도 어쩔수 없이 인간이니 힘들어 하는 구나"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방원이 힘겨워하는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한우, 태종에서

어쩔수 없이 정권을 잡아야 하는 이방원의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다고 오버한다.


이한우는 책에서 조선을 조선의 눈으로 봐야한다고 역설하나 자신도 현대사에 묶여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유롭지 못하다. 태종에게서 박정희를 보기때문에 태종을 정당화하고 박시백은 반대로 태종의 권력욕을 강조한다. .  진정(眞情)이 어떤 의미였을까? 진정,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두 사람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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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3-1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숨고르기 후 이한우로 내달릴려고 했으나,
최진석이 발목을 붙잡고 안 놔주네요~^^

만병통치약 2015-03-18 23:13   좋아요 0 | URL
읽을수록 중독되서 걱정이에요 ^^;; 차라리 노자는 공감하면서 배울 점이 많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