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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1999년, ‘머리도둑’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가 나타난 가상의 도시 ‘의천’. 한반도 북쪽에 위치하며 환태평양대지진 후 바뀐 세계정세 속 러시아, 중국, 합중국의 자치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자리에서 ‘머리도둑’사건을 맞닥뜨린다. 세간에 흐르는 새로운 마약과 범죄, 권력 다툼 등등에 얽혀 들어가며,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놀라움은 끝도 없이 더해간다. 인물은 입체적이고, 사건들은 뒷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다. 가상의 과거 세계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현재와 닮은 모습들에 전율을 느꼈다. SF로서 흔히 언급되는 ‘미래’를 다루지 않기에 신비로움이 더해진다.
24년 만에 책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30여년묵은 장르소설 마니아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예측 불가능하게 팡팡 튀는 독특함으로 나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끝나가는 게 무척 아쉬웠다. 20년 뒤에 읽어도 통통 튀는 매력이 잔뜩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왜 듀나 작가를 이제야 만난 걸까? 듀나 작가를 모른 채로 장르소설 마니아라고 외치던 스스로를 반성해본다. 작가는 진짜 천재다. ‘듀나’라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 책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구구절절 어색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레 세계관에 스며들어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세계관에 읽는 내내 이 책의 장르와 분위기, 앞으로의 내용을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집중에 집중을 더해가며 빨려 들어가 읽은 소설을 오랜만이었다.
늘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 나서기에 평소 재독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 책은 세 번은 기본으로 읽어야겠다. 휘몰아치는 내용에 정신없이 스며들다보면 책이 끝난다. 이 멋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 버린 것도 아쉽고, 미처 다 적응하지 못했는데 끝나 버렸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크다. (뒷이야기를 30권쯤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작중에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을 있는 그대로 3D로 바라보는 ‘입체시’에 대해 언급된다. 내가 나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던가 하는. 계속 독특하게 느껴지던 화자 ‘나’의 서술방식이 입체시에 기반을 둔 느낌이 들었다. 물성을 가진, 내 손안의 《몰록》이라는 책마저도 몰록 속의 세계관에서 꺼내 온 듯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몰록》의 작가가 어리고 낙천적이라 표현한다. 수정을 거쳤으나 결국은 24년 전에 쓰인 이 책은 잘 다듬은 고전 같다. 시대를 넘나들며 의미를 갖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오리지널 SF에 가깝게 조금은 고지식하고, 어린 작가의 감성으로 적당히 낙천적이며, 깊이 있는 주제로 무한히 본질에 다가가는, 대중적이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소설이다. 장르소설 마니아이든 장르소설이 어려운사람이든 책을 읽는 모두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