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문화 - 대서양에서 지중해까지 프랑스 문화 3부작
이상빈 지음 / 아트레이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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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다른 책에서도 늘 자신이 바라본 프랑스의 모든 순간을 담았다. <프랑스 지방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지방문화>는 프랑스가 다양한 지방을 통해 세계성을 구축했다는 점을 밝히며 우리의 관심을 더 넓게할 것을 주문한다. 단순한 여행정보가 아닌, 지방 고유의 역사, 문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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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 - 종(種)의 최후 현대 예술의 거장
정준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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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스트라빈스키에게

- 스트라빈스키 : 종의 최후란 이름의 길잡이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페이지만 있는 인용문은 모두 스트라빈스키 : 종의 최후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 《》 : 단행본, <> : 작품 제목

 

 2008년 클래식 음악에 막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스트라빈스키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스트라빈스키 : 현대 음악의 차르(이하 현대 음악의 차르’).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21, 현대 음악의 차르는 부제를 종의 최후로 바꾸고 독자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스트라빈스키 : 종의 최후(이하 종의 최후’)<불새>, <봄의 제전> 등의 대표 발레곡들로만 기억되는 스트라빈스키가 오랜 삶을 살며 음악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기울인 많은 노력을 보여준다. 그가 남긴 음악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며 20세기의 수준을 증명할 것(p.452)이란 믿음이 책 곳곳을 지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종의 최후를 읽는 일은 곧 지은이의 믿음을 따라가는 것과 같은 얘기가 된다. 책 위에 펼쳐진 길을 우리는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가.


 먼저 스트라빈스키가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음악을 배운 뒤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만났을 때로 돌아간다. 이어서 발레 뤼스(Ballets Russes)에 합류해 쓴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위에서 말한 두 작품 말고 <페트루시카>, <결혼> 등이 생각난다. 또 페르골레시 등 18세기 작곡가들의 음악에 자신의 악센트를 부여해 재생한(p.201) <풀치넬라>도 있다. 소포클레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이디푸스 왕>도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 지은이가 추천한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Patricia Kopatchinskaja)의 연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유튜브에서 듣고 나서 책을 보니 <아곤> 등 음렬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음악도 있단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 아래 있던 음악에서 신고전주의, 거기서 음렬주의를 기반으로 한 작품까지. 스트라빈스키가 구현한 음악 세계는 몹시 광범위하여 작품들만 모아 보면 연결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종의 최후에서는 여러 작품들에 논리성을 부여한다. 왜 스트라빈스키는 일찍부터 발레에 눈을 돌렸는지, 왜 객관적이고 감상하기 편한 예술을 향한 귀향(p.199)을 주장했는지 설명한다. 여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음렬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그가 선택한 음악 사조들의 당위성과 배경을 설명한다는 점은 종의 최후가 지닌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스트라빈스키에 익숙한 애호가들도 음악을 반추하며 그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음악의 차르와 다른 특징도 돋보인다. 2008년에 출간된 책에선 러시아 시대(1882 1914)와 스위스 시대(1914 1920), 프랑스 시대(1920 1939), 그리고 미국 시대(1939 1971)까지. 모두 4부로 나누고 시대마다 함께한 명사(名士)들의 이름을 각 장()의 표제로 삼았다. 그러나 종의 최후는 다르다. 20장 중 17장과 19, 20장을 빼고 대표곡들을 표제로 하여 관련된 이야기와 해설을 중심으로 짜임새를 바꿨다. 시대와 인물, 혹은 사건들이 스트라빈스키가 남긴 음악을 에워싼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또 스트라빈스키가 어떤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주목하게 된다(그가 야심가적인 면모와 냉혹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 흥미가 생긴다).


 한편 종의 최후가 낸 길을 걷는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가만. 지은이의 관점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그렇다. 이 책을 쓴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이나 생각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쓰기 힘든 스트라빈스키 저작이므로 필자의 관점을 좀 과감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p.17)고 스스로 머리말에서 밝히지 않았는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용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서술에서도 지은이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현대 음악의 차르》 음악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결정짓는 기준은 프롤레타리아에게 유익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었다당국에게는 베토벤이 가장 모범적인 예술가였고쇼스타코비치의 작품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잣대에 맞게 해석되었다. (현대 음악의 차르, p.249)

 종의 최후》 『시대의 소음이 시대적 양심을 가진 쇼스타코비치와 그와 대비되는 스트라빈스키의 모습을 편파적으로 대조시킨 것과는 별개로 이 두 거장의 음악을 들어보기로 한 독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많은 쇼스타코비치 팬이 그를 베토벤에 비유한다. (중략그 비유가 맞는다면 스트라빈스키는 모차르트에 견주어야 할 것이다베토벤은 말과 음악이 하나라고 했지만모차르트의 음악은 말을 넘어선다. (p.441)

 

 지은이는 책을 읽는 독자들끼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도 과감하게 짚는다. 머리말에 쓴 선언을 그대로 지킨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을 접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반박하고 비판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지은이의 관점을 접한 독자들이 자신의 그것과 견주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은 종의 최후가 지닌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종의 최후는 오직 음악만을 이야기하는가? 아니다. 19세기가 저물고 있는 때(1882)에 태어나 20세기 한복판(1971)에서 숨을 거둔 스트라빈스키의 삶은 늘 시대 안에 머물렀다. <봄의 제전>을 쓴 해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비로 출판(p.125)하기도 했고 <병사 이야기>는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로잔에서 1회 공연에 그쳤다(p.184). 소련 방문(1962)을 할 수 있었던 건 스탈린이 죽고 난 뒤 호전된 분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고(p.429 p.430). 이렇게 종의 최후는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배경을 언급하고 림스키코르사코프, 댜길레프, 니진스키 등 여러 인물과의 음악적 작업에 대해서도 충실히 소개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스트라빈스키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스트라빈스키를 알기 위해선 스트라빈스키만 알아선 안 된다. 종의 최후의 서평을 준비하면서 떠올린 문장이다. 그는 여든을 바라보던 1960년대에도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임을 과시했다(p.420). 스트라빈스키는 어떤 주의나 사조에 매몰되지 않았다. 오로지 시대가 원하는 음악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색다른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이런 영리하고 샘 많은 여우의 모습을 따라가는데 종의 최후는 믿음직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장-이브 보쇠르(Jean-Yves Bosseur)서양 음악의 역사(Histoire de la Musique Occidentale)에서 스트라빈스키를 설명하며 쓴 첫 문장과 함께.

 

Stravinsky occupe une situation exceptionnelle dans l’évolution du vingtième siècle.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음악 발달에 있어 특별한(exceptionnelle) 지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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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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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을유문화사에서 진행한 국화와 칼서평단 활동의 결과로 작성되었으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음을 알립니다.

 

  을유문화사에서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e Culture)6판을 새롭게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받고 난 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를 몇 분. 일본에서의 극우의 득세와 우리 정부의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징용에 대한 문제 제기에 반발하며 일본의 경제 보복이 몇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 국화와 칼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유효한가? 쉽사리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 책의 옮긴이와 초판연도가 눈에 들어왔다. 201810월 세상을 떠난 고() 김윤식 선생이 공동역자인 오인석 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국화와 칼을 번역한 것은 1974년이다. 굴욕적 수교(1965)가 있고 난 뒤 9년이 지나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책. 그 때 옮긴이가 지닌 문제의식이 과연 우리에게 유효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국화와 칼6판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리란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과 본문을 보며 국화와 칼2019년의 우리에게 알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1. 방법론 : 우리는 어떻게 일본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문화 인류학의 방법론에 의거한 저자의 연구는 매우 전문적이다. 여기서 전문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일본 기행문이나 견문기가 아니라 엄밀한 학문적 노작(勞作)이라는 뜻이다.” (p.15)

 

  포털에서 국화와 칼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준다. 바로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시기 미국은 서양의 상식과는 다른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일본을 면밀히 분석하여 전후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는 활동이 절실히 필요했고 국화와 칼은 그 의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의뢰 주체는 미 전쟁정보국). 베네딕트는 철저히 인류학적 방법으로 일본의 문화 분석에 착수했고 사료 분석이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과의 면담 등의 방법이 활용되었다.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채집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녀가 진행한 연구 과제 분석과 자료 수집의 성격은 <1장 연구 과제 일본>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인류학적인 접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하나 준다. 연구의 목적이 어떠하든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서 엄정한 학문적 방법론을 고집할 것. 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연구 대상과의 면담 등 직접적인 방법도 적절히 혼합해야 하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원인을 잘 살펴볼 것.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대표되는 극우의 집권이 계속될 것이라 예측되는 지금의 정국에서 우리가 일본을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2. 인식론 : 일본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의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때 어떠한 질서와 충동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고찰은 제3메이지유신(明治維新)’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 (p.16)

 

일본인은 국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제관계로 계층제도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인은 일본이 국제적 계층제도의 피라미드에서 차츰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미 서양 여러 나라가 정점을 차지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의 상태를 감수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 밑바탕에는 역시 계층제도에 대한 견해가 깔려 있다.” (p.75)

 

  《국화와 칼의 내용을 다소 과격하게 줄이면 이렇다. 일본인들은 각자가 알맞은 자리에 위치해야 편안하다고 느낀다. 이는 오랫동안 사무라이()가 지배한 일본의 봉건 제도와 밀접하게 결합되고 있으며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 외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계층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 기무(義務), 기리(義理) 등은 그런 계층제도를 유지하는 장치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는 차츰 상승하고 있는 국력에 발맞춰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맞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벌였다. 군국주의가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본 그들은 미국의 정책에 순응하고 평화주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군국주의가 다시 힘을 얻게 되면 일본은 다시 그 야욕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국화와 칼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폐기(내지는 개정)하고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것도 이를 방조, 혹은 독려하는 미국이 없다면 불가능한 활동이다. 즉 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금 알맞게 유지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뿐 아니라 세계의 바람직한 질서를 위협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도 이 틀에서 해석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처럼 개인, 사회, 국가, 세계 등 모든 대상을 향해 알맞은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고 차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속성에 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국화와 칼의 시선은 매우 강력한 인식 논리다. 당장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의 마지막에 쓴 말이 현실이 되고 있지 않은가.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일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체득했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p.406)

 

3. 마치며 : 1970년대와 지금의 한국, 그 사이에 놓인 국화와 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다. 가끔 출판된 사사로운 인상기나 체험기는 주관성 때문에 오히려 일본에 대한 이해를 그르칠 수 있었다. 일본 연구의 고전이 된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번역할 가치가 있었다.” (p.17)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자 한국과 일본의 교류는 날로 늘어갔고 그 반대급부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한층 깊어졌다. 국화와 칼이 출간된 1974년은 광복(1945)을 맞이한 지 약 30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었고 굴욕적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의 열기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경제적 밀착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역자들은 일본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때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비교할 수도 없이 늘어났다. 일본이 아직까지 종이신문을 바탕으로 하는 언론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인터넷이 생기면서 일본 언론을 인터넷으로 보고 분석하는 네티즌들도 늘어났으며 일본에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불매운동 진행 전까지 날로 늘어가는 추세였다. 서점에서 일본어 학습 서적을 보려면 서점 입구에 들어서고 1분도 되지 않아서 찾을 수 있고 NHK 뉴스 콘텐츠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선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나 활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1970년대에 역자들이 품었던 올바른 일본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화와 칼6판은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 일본의 문화를 짚어보고 오늘의 현상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알려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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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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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전쟁의 영광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

 

  나팔 소리가 하늘을 메우고 뿌연 먼지가 피어오른다. 이내 함성과 비명이 뒤섞인다. 소리가 잦아들자 먼지가 걷히고 어지러이 널린 시체들이 보인다. 몇 줄의 역사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참혹한 현장. 전쟁은 이런 광경을 몇 번이고 목격해야 하는 비극이다.

  1812년의 조국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대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인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꺾고 조국을 지켜낸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기록된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역사. 그러나 이는 조국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아픔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레프 톨스토이(Лев Толстой, 1828 1910)는 전쟁을 겪으며 흐느끼고 아파했던 이들에게 주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빗발치는 총알을 무릅쓰고 가장 앞에 서는 사람들은 바로 청년들. 결국 조국전쟁을 다룬 대서사시인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는 나폴레옹의 침략을 겪은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전쟁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삶을 살아가는지를 다룬 성장기이도 하다.

 

(2) 올라가며 : 고민하고, 흔들리는 청년들

 

 그런데 대단한 전쟁을 겪기로 예정된 이들이 어째 우리보다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똑같거나 못하다. 1권과 2권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쉽게 고민하고, 기운을 잃거나 방황하여 우리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산상속자가 되지만 아내와 갈등을 빚고 번민을 거듭하는 피예르 베주호프. 나름의 야심을 갖고 전장에 나섰으나 아우스터리츠(Austerlitz)에서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고향에서 아내의 죽음을 보고 삶에 대한 회의를 갖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안드레이의 부재 중 아나톨 쿠라긴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나타샤 로스토바. 모두가 방황하는 청춘들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생각 또한 다소 설익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피예르를 보면 특히 그렇다. 1권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야회에서 그는 나폴레옹을 예찬하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을 옹호한다. 연회에 있던 사람들이야 차르 궁정과 관련된 이들이니 그렇다 해도 글을 읽는 독자들도 선뜻 피예르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피예르 뿐만 아니라 안드레이, 니콜라이 로스토프 등 다른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견해는 물론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전쟁과 평화1권과 2권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미성숙이다.

 

(3) 정상에서 : 그들이 찾은 것은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사랑이었네

 

 

문학동네의 '만화로 읽는 불멸의 고전 시리즈' 중 《전쟁과 평화》 표지.

안드레이와 나타샤의 무도회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문학동네 홈페이지 - http://www.munhak.com/)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던 피예르의 말은 진리이고, 나도 지금은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를 묻는 일은 죽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생명이 있는 한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 (2p.334 335)

 

  안드레이와 나타샤가 만난 2권의 무도회 장면은 흔히 무도회장 특유의 아름다운 광경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평가해보면 그 대목에서부터 조금씩 등장인물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는다고 말하고 싶다. 함께 춤을 추면서 서로에 대한 연정이 싹튼 둘은 말할 나위 없고 프리메이슨 운동 등에 힘을 쏟는 등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던 피예르에게도 사랑이 조금씩 파고들었다. 이제 마음에 들어온 사랑이 각자에 맞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나타샤 곁을 떠나기로 한 안드레이와 그를 기다리다 아나톨의 손을 잡은 나타샤. 이 둘이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보로지노 전투에 참전한 안드레이가 치명상을 입는다. 그가 합류한 부상병 대열은 피난을 떠난 로스토프 가문의 행렬과 길을 같이하게 되고 마침내 둘은 사랑의 불이 꺼졌다고 생각될 때 다시 만난다. 자신을 배신한 연인. 하지만 안드레이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울음을 터뜨리는 나타샤. 그렇다.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타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사랑했기에 행복했다. 당연히 어떤 조건도 붙지 않았다. 둘은 그저 지나간 허물과 아픔을 잊고 행복한 순간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간직한 채 안드레이는 눈을 감는다.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옐렌과의 부부관계가 파경으로 치닫고 삶의 의미를 얻지 못해 떠돌던 피예르. 하지만 역설적으로 불타는 모스크바에서 포로로 잡히고 난 뒤에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니 바로 농민보병 플라톤 카라타예프(플라투샤)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포로라는 비참한 처지에도 감자에 소금을 쳐서 먹는 걸 잊지 말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플라톤을 보며 피예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보냈던 스스로의 모습이 떠올랐으리라. 어찌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내 눈 앞에 있는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출발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전쟁과 평화에서 보인 피예르의 방황은 결국엔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데서 비롯된 문제들이었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피예르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고난과 역경, 흔들림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4) 내려가며 : 프랑스어로 가득한 19세기 초의 러시아, 그리고 승리의 원동력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내 소설에서 역사적 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대목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여러 자료에서 나온 것이고, 집필하는 동안 나의 서재는 참고자료들로 완전한 하나의 도서관을 이루었으며, 자료의 제목들을 여기에 열거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언제라도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 (4, p.544)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 것처럼 전쟁과 평화19세기 초 러시아의 상황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톨스토이가 도화지가 아닌 책 위에 그린 그림들을 하나 둘 살펴보는 것도 전쟁과 평화에 다가가는 또 하나의 독법(讀法) 중 하나라 대표적인 측면만 여기에 짧게 제시하고자 한다.

  《전쟁과 평화가 보여주고 있는 19세기 러시아의 모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어의 사용빈도가 높다는 점이다. 18세기부터 표트르 대제(Пётр I, 재위 1682 1725)와 예카테리나 2(Екатерина II, 재위 1762 1796)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서구의 제도와 사상이 러시아로 들어오게 되고 이후 많은 러시아의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평상시에 구사하게 되는데(당시 유럽 문화를 주도하던 국가 중 하나가 프랑스였으므로) 톨스토이는 이를 놓치지 않고 전쟁과 평화에 프랑스어를 쓰는 귀족들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전쟁과 평화를 배우는 러시아 학생들이 프랑스어로 된 부분을 보며 골머리를 앓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비록 프랑스어 원문을 표기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박형규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펴낸 전쟁과 평화에는 프랑스어로 표기된 부분이 이탤릭체 번역으로 되어 있어 얼마나 이 책에서 프랑스어의 사용 비중이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과연 러시아는 어떻게 프랑스를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말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민중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그 까닭으로 제시했다. 차르도, 스페란스키도, 그 어느 권력자도 민중의 의지를 의도한 방향으로 끌고 올 수 없었다. 오로지 민중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했다. 그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결정적인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특히 위대한 인물로 인해 역사적 흐름이 바뀌었다는 흔한 믿음을 부정한다. 운명론이나 결과론, 그리고 소수의 위인들에 구애받지 않은 톨스토이의 서술 방식은 조국전쟁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고, 이는 지금에도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5) 나오며 : 우리 시대에 전쟁과 평화를 내미는 까닭

 

  왜 전쟁과 평화를 읽어야 하는가. 이제 그 답을 할 때가 왔다.

  처음엔 이 책을 통해 19세기 전반의 러시아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덮고 마음속에 남은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에서 진정한 시작이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사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전역(戰域)이나 정치적 상황, 풍습 등을 아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소중히 하고 이를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이라고 안드레이가, 피예르가, 나타샤가 돌아가며 말하는 외침을 듣는다면 이 책에서 얻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언제부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평가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작아질 때가 많고 심지어 누군가에 대한 연정을 품을 때도 고민을 거듭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 전쟁과 평화는 말한다. 삶을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이라 불리는 이 책을 먼지더미 속에서 꺼내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놔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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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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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길었다는 연휴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연휴를 활용해서 해외여행을 즐기고 싶어 했고 아니나 다를까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출국인원수가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이렇게 긴 연휴를 이용해서 휴양지나 관광지로 떠나면 참으로 좋으련만, 여러 이유 때문에 비행기에 오르지 못해 뉴스를 보면서 아쉬움을 삼킨 이들도 분명 많으리라 본다. 특히 평소에는 장기간 휴가를 내서 다녀오기가 어려운 유럽 여행을 가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번 연휴가 무척 야속했을 것이다.

, 유럽 여행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지금도 프랑스가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꾸준히 손꼽힌다는 사실. 201511월에 파리 테러도 있었고 요즘에도 크고 작은 테러가 발생하고 있어 가기가 망설여질 법도 하지만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 맛있는 음식, 거기에다 프랑스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아직까지 많은 관광객들을 향해 손짓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새로운 생활정보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은 여행서적들이 수시로 발간되어 예전에 비해 프랑스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 구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여행서적에 담겨 있는 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발품을 팔며 인터넷 검색이나 관련서적, 혹은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추려내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창비의 전방위 세계 읽기 프로젝트 시리즈 중의 하나로 기획된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의 출간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책을 빠르게 살펴보니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프랑스를 이해하고 가까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 쉽게 쓰였다. 하지만 깊이 있는 내용 역시 담고 있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를 빠르게 훑어보기만 해도 아주 쉽게 쓰였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이 보다 쉽게 프랑스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교양 제공의 목적으로 쉽게 프랑스 문화와 사회를 알려주고자 하는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만약 쉬운 내용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까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여러 프랑스 관련 서적 중 하나가 되었을 위험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그 전에 자세히 보지 않았거나 알지 못했던 프랑스의 모습까지 담고 있어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러 테러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언론 보도와는 달리 프랑스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북아프리카(마그레브) 출신 이민자에 대한 차별에 그 무게를 두고 있는 대목은 사람들에게 테러에 외부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프랑스 관련 전공자나 지역 축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역사 테마파크 퓌뒤푸(Puy du Fou)와 여기서 공연되는 방데 지역의 역사적 비극에 바탕을 둔 야간 야외극 시네세니(Cinéscénie)에 대한 내용도 소개하는 등 국내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들도 다루고 있어 프랑스를 깊이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2)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한 지식을 제공한다

동거정부라는 용어를 통해 알려진 이원집정부제와 대통령 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 그리고 복지국가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정치, 경제 이슈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비교 대상 국가가 바로 프랑스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들이 위의 내용들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매우 부족하다. 당장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 홈페이지에만 들어가서 프랑스 정치’, 혹은 프랑스 경제를 검색어로 입력한 뒤 클릭만 해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또한 다행히 관련서적을 찾았더라도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인 책이 상당수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프랑스의 정치, 경제에 대한 정보에 심한 갈증을 느낀 독자들이라면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와 경제 관련 내용들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단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그리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당선까지의 프랑스 정치사가 간단히 다뤄지고 있으며 결선투표제로 대표되는 프랑스 선거제도의 특징과 주요 정당에 대한 정보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 진출하며 점점 그 세력을 넓히고 있는 *국민전선(FN. Front National)에 대한 내용 역시 확인할 수 있기에 프랑스 정치를 개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프랑스 경제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는 점도 반갑다. 프랑스가 유럽 내에서 독일에 이은 최강대국이고, 세계적으로도 아직 주요한 경제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임에도 우리는 프랑스의 주요 산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랑제콜 중심의 엘리트 교육이 자연스럽게 항공우주산업, 군수산업 등에서의 경쟁력 확보로 연결된다는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에서 경제 관련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가 단순히 문화예술’, 그리고 인권의 나라로 알고 있는 프랑스가 사실은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밑바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3) 2017지금다룰 수 있는 프랑스의 새로운 정보들을 알 수 있다

만약 프랑스의 지방 행정 제도에 관심이 있어 어떻게 국토가 나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사전의 도판을 본다면, 아마 잘못된 내용으로 배우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201611일부터 프랑스의 지방 행정 구역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직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우리말도 된 자료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매우 반갑게도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에 새로운 프랑스의 행정 구역을 우리말로 볼 수 있다.

위의 예는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2017년 지금 구할 수 있는 최신의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사례다. 이외에도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과거와는 다른 국민전선 지지자들의 인터뷰 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노력을 기울인 노동법 개정 움직임 등 현재 프랑스에서 뜨거운 화두로 자리 잡은 내용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생겨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기 시작한 분들에게는 지금의 프랑스를 알 수 있는 기회를, 프랑스에 관심이 있어 예전에 다른 책으로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한 분들에게는 예전의 프랑스가 지금과 무엇이 다른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를 읽으면서 프랑스에 관련된 정보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라이시테(Laïcité)라는 용어는 프랑스 전공자들에게는 전혀 생소하지 않지만 막상 일반인에게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고 하면 꽤 까다로운 개념 중 하나다. 라이시테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먼저 라이시테를 우리말로 보통 어떻게 번역하는지를 참고삼아 언급한 다음 라이시테가 확립된 역사적 배경이나 그 특징을 말하면서 라이시테라는 말을 원어 그대로 써야 하는 이유를 읽는 이가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원어의 의미를 왜곡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생소한 용어를 무조건 암기하기를 강요하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서학의 전래서부터 최근의 파리 국제대학촌 내의 한국관 건립까지의 한불 관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에서 거둘 수 있는 중요한 소득 중 하나다.

왜 다른 나라, 그것도 프랑스를 알아야 할까? 여러 생각이 있겠지만 프랑스 사회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랑스라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그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까지 살펴보는 학문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그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제 테세우스의 손에 들려 있는 실타래처럼 이 책과 함께 불가분의 공화국이면서 여러 얼굴을 하고 있는 프랑스라는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책상에서 말이다.

 

*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이라는 용어 대신 민족전선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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