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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 이 서평은 을유문화사에서 진행한 《국화와 칼》 서평단 활동의 결과로 작성되었으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음을 알립니다.
을유문화사에서《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의 6판을 새롭게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받고 난 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를 몇 분. 일본에서의 극우의 득세와 우리 정부의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징용에 대한 문제 제기에 반발하며 일본의 경제 보복이 몇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 《국화와 칼》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유효한가? 쉽사리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 책의 옮긴이와 초판연도가 눈에 들어왔다. 2018년 10월 세상을 떠난 고(故) 김윤식 선생이 공동역자인 오인석 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국화와 칼》을 번역한 것은 1974년이다. 굴욕적 수교(1965)가 있고 난 뒤 9년이 지나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책. 그 때 옮긴이가 지닌 문제의식이 과연 우리에게 유효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국화와 칼》 6판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리란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과 본문을 보며 《국화와 칼》이 2019년의 우리에게 알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1. 방법론 : 우리는 어떻게 일본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문화 인류학의 방법론에 의거한 저자의 연구는 매우 전문적이다. 여기서 ‘전문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일본 기행문이나 견문기가 아니라 엄밀한 학문적 노작(勞作)이라는 뜻이다.” (p.15)
포털에서 《국화와 칼》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준다. 바로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시기 미국은 서양의 상식과는 다른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일본을 면밀히 분석하여 전후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는 활동이 절실히 필요했고 《국화와 칼》은 그 의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의뢰 주체는 미 전쟁정보국). 베네딕트는 철저히 인류학적 방법으로 일본의 문화 분석에 착수했고 사료 분석이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과의 면담 등의 방법이 활용되었다.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채집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녀가 진행한 연구 과제 분석과 자료 수집의 성격은 <제1장 연구 과제 – 일본>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인류학적인 접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하나 준다. 연구의 목적이 어떠하든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서 엄정한 학문적 방법론을 고집할 것. 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연구 대상과의 면담 등 직접적인 방법도 적절히 혼합해야 하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원인을 잘 살펴볼 것.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대표되는 극우의 집권이 계속될 것이라 예측되는 지금의 정국에서 우리가 일본을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2. 인식론 : 일본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의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때 어떠한 질서와 충동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고찰은 제3장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 (p.16)
“일본인은 국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제관계로 계층제도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인은 일본이 국제적 계층제도의 피라미드에서 차츰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미 서양 여러 나라가 정점을 차지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의 상태를 감수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 밑바탕에는 역시 계층제도에 대한 견해가 깔려 있다.” (p.75)
《국화와 칼》의 내용을 다소 과격하게 줄이면 이렇다. 일본인들은 각자가 알맞은 자리에 위치해야 편안하다고 느낀다. 이는 오랫동안 사무라이(侍)가 지배한 일본의 봉건 제도와 밀접하게 결합되고 있으며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 외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계층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온(恩)과 기무(義務), 기리(義理) 등은 그런 계층제도를 유지하는 장치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는 차츰 상승하고 있는 국력에 발맞춰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맞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벌였다. 군국주의가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본 그들은 미국의 정책에 순응하고 평화주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군국주의가 다시 힘을 얻게 되면 일본은 다시 그 야욕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국화와 칼》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폐기(내지는 개정)하고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것도 이를 방조, 혹은 독려하는 미국이 없다면 불가능한 활동이다. 즉 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금 알맞게 유지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뿐 아니라 세계의 바람직한 질서를 위협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도 이 틀에서 해석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처럼 개인, 사회, 국가, 세계 등 모든 대상을 향해 알맞은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고 차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속성에 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국화와 칼》의 시선은 매우 강력한 인식 논리다. 당장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의 마지막에 쓴 말이 현실이 되고 있지 않은가.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일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체득했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p.406)
3. 마치며 : 1970년대와 지금의 한국, 그 사이에 놓인 《국화와 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다. 가끔 출판된 사사로운 인상기나 체험기는 주관성 때문에 오히려 일본에 대한 이해를 그르칠 수 있었다. 일본 연구의 고전이 된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번역할 가치가 있었다.” (p.17)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자 한국과 일본의 교류는 날로 늘어갔고 그 반대급부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한층 깊어졌다. 《국화와 칼》이 출간된 1974년은 광복(1945)을 맞이한 지 약 30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었고 굴욕적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의 열기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경제적 밀착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역자들은 일본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때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비교할 수도 없이 늘어났다. 일본이 아직까지 종이신문을 바탕으로 하는 언론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인터넷이 생기면서 일본 언론을 인터넷으로 보고 분석하는 네티즌들도 늘어났으며 일본에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불매운동 진행 전까지 날로 늘어가는 추세였다. 서점에서 일본어 학습 서적을 보려면 서점 입구에 들어서고 1분도 되지 않아서 찾을 수 있고 NHK 뉴스 콘텐츠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선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나 활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1970년대에 역자들이 품었던 올바른 일본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화와 칼》의 6판은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 일본의 문화를 짚어보고 오늘의 현상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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