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막내 딸인 나는 사람들로 북적되는 집안에서,
특별히 주목을 받지도 않았고, 큰 기대를 받지도 않았고, 그래서 큰 책임감도 없었다.
삶은 쉬웠고, 평탄한 편이였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할 일 하며, 적당히 회사 다니다 결혼했다.
그런데 부모가 되면서 한 인간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위치에 서게 되자 삶의 태도가 바뀌였다.
최소한 내 자식에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고 할 때,
정말로 그런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소중한 내 아이의 몸을 만들 음식들이 정말 안전한 것인가 하는 점이였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 처럼, 처음 시작은 막막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나름의 결론을 내야했다.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났고 커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거리부터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곧 그것은 철학적 물음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 환경에 대한 물음으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 생명에 대한 물음으로 확대되었다.
이책 『식탁 위의 세상』의 작가인 켈시 티머먼도 책 속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는 나보다 5살 아래이고, 두 자녀를 두고 있고, 그렇게 세상 속으로 뛰어 들었다.
나는 비록 내 머릿속에서만 끝냈고, 가끔 장바구니를 통해서만 실천했지만 말이다.
『식탁 위의 세상』
음식, 아주 세세하고 까다롭게
그렇게 따지고 가려먹던 어느날....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기로 했다.
어떤 '오기'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너무나 열심히 집중했기에 뒤돌아설때는 냉정했다.
그 이후로 음식에 관한 책은 별로 보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이 책...
나하고 뭔가 같은 고민을 했고, 같은 생각의 여정을 걸었을 것 같은 작가의 걸음걸음이 궁금했다.
이 책은 우리가 식탁에 올리는 음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찾아가는 여정기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음식들 - 커피, 초콜릿, 바나나 - 이야기와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바닷가재'와 중국농산물(특별히 사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커피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다.
아마도 남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아프리카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다...
그런데 초콜릿이야기부터 바닷가재 이야기까지... 가슴에 불이 당겨진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니,
초콜릿과 바나나에서는 '어린이 노동자' 이야기가,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고통위에 차가운 자본이 서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이 쳐 놓은 노예적 삶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에 대한 분노, 연민, 동정?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실감나지 않는 현실들이 저 넘어 세계에서는 끝나지 않는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초콜릿 : 서아프리카
3년전쯤 이 책『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아동노동'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노동력 착취와 노예적인 삶을 사는 아프리카 농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카카오 농사를 짓는 아프리카인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책 내용을 간추려보면..
카카오 농사를 지어 실제로 이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2.5%
농부들은 1년에 약 300달러(33만 8,000원)을 버는데 이것은 8명, 10명, 12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구의 수입이다.
허쉬 초콜릿 하나가 팔릴 때 3원을 받는다.
농사를 지으면 돈은 적게 벌고 위험부담은 크다.
책 속에 인용된 라즈 파텔의 『식량전쟁』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이 세계 식품 무역의 40%를 장악하고,
20개 기업이 사실상 세계 커피 무역을 독점하며,
6개 기업이 밀 무역의 70%를 장악하고,
1개 기업이 차 무역의 98%를 독점하며,
10개 기업이 전체 농약 판매의 90%를 차지한다.
6개 소매업체가 식료품점의 50%를 소유한다.
얼마전 기사에서 본 내용이다.
'최상위 1%가 전세계 인구 나머지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출처: 국제 NGO '옥스팜 인터내셔널')
바나나 : 코스타리카산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아주 특별한 날 먹는 과일이였다.
그래서 어른들은 지금도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옛날에는 바나나가 귀해서 맛있었는데, 요즘은 제일 싼게 바나나야.. 그러니까 맛도 없어~"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문득 떠오른다.
그때 바나나와 지금 바나나가 다르다는 것을!!
옛날 바나나는 '그로 미셸' 품종이였다.
현재 나오는 바나나 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멸종되는 바람에 현재의 '캐번디시'가 대체했다.
맞다!
우리 입맛이 바뀐 것이 아니라 바나나가 바뀐 것이다.
벨기에 연구소에는 1,200종이 넘는 바나나 품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류는 상품화 하기 좋은 단 하나의 품종만을 생산했다.
단일품종은 병충해에 약하다.
결국 당도가 높았던 '그로 미셸'은 멸종이 되 버렸고,
그 뒤를 새로운 품종인 '캐번디시'가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캐번디시'보다 훨씬 당도가 높은 바나나 품종이 여럿 있다고 한다.
다만 '캐번디시'가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 품종만 생산하고 있다.
가끔, 이 품종마저 병충해에 약해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보곤 했다.
인간의 방만한 욕심이 사람들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식이라는 렌즈로 세상의 이면을 보다》
이 책 맨 처음에는 이제.. 우리의 주식인 쌀 소비를 앞지른 '커피'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흥미가 떨어졌다.
그렇지만 절대로 책을 놓지 마시기를...
작가 켈시 티머먼이 식탁에 놓여지는 음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음식들의 고향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불합리와 그러한 삶에 순응해 사는 사람들과 시스템에 대해 본 대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음식 한 입이 순응 아니면 저항'이라는 작가의 깨달음.
'내가 먹는 음식 한 조각이 모두 정치적 선언'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나의 권리 행사와 의무의 책임을 느꼈다.
세상을 보는 창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음식은 생물학적 필수품이자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나는 환경문제나 인권문제.. 이런 것들이 다소 '종교화'되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변화를 위해서는 대규모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는 '종교적인' 규모의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읽으면서 가속도가 붙는다.
그리고 더 친근해 지고, 가치가 선명해진다.
그러니 꼭!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책 뒷표지에 쓰여진 것처럼,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본다.
하지만 그런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또 '소금'과 같은 귀한 가치와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 책 저자인 '켈시 티머먼'이 바로 그 '소금'같은 존재이다.
이제 나도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겠다.
일단은 장바구니부터...
로컬푸드와 '공정무역'제품 사용,
그리고 실천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몸에 영양분을 주는 음식에 감사하고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이 세계 어디에 있든지.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