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를 꿈꾸다 시공 청소년 문학 51
이상권 지음 / 시공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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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1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에 시선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 문단에서 소설 한 편으로 한 해에 문학상 셋을 휩쓴

작가의 첫 탄생을 알리는 내용이였다.
12편의 소설책을 냈지만 다 합쳐 2만부만 팔렸다는 '정영문' 작가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전통적 소설 문법을 따르지 않은 채

이야기가 해체된 소설을 써 왔다고 했다.
그는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그래서 이번 3관왕에 오른 '어떤 작위의 세계'는 재미만 좇는 소설관(觀)에

복수하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이 기사를 글 첫머리로 시작한 이유는 이 글이 그동안 도서 선정에 대한 편향된 나의 인식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12편을 다 합쳐 고작 2만부가 팔렸다니..
이래서야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글 쓸 생각을 할까...?
 
요즘 선전하고 있는 '광해'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던 터에, 문득 '승자독식'의 세태가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늦은 깨달음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별나고 쉽지 않은,
우리 작가가 쓴 청소년 문학, '이상권'의 '마녀를 꿈꾸다'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 낯선, 흥미롭고 기괴한

 


 

책 첫장에 맞닥뜨리면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싶게 낯설고 기괴하다.
마치 낯설고 이상한 규칙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꿈'처럼,
꿈과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하기 조차

애매하다.

 

 그러다 이야기 중반 쯤 들어서면 그제야 이상하고 낯선 등장인물들이 꾸려가는 세상에 적응이 되며, 책 장 넘기는 속도도 빨라진다.


'마녀를 꿈꾸다'가 낯설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현실과 구분없이 뒤섞여 있는 환상적인 내용적 부분이 가장 크지만, 한편으론 줄거리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구조적인 부분 또한 이 소설의 낯설고 특별한 부분이다.

 


어느 저녁밥상에서
"우리 밥상은 죽음의 무덤이네''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큰 아이가
"죽음의 밥상??"
"그렇지, 소, 닭, 시금치, 콩나물... 다 죽은 시체네..?"
"와~ 우리 밥상이 공동묘지다!!"
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듯 신나라 한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이 말은 바로 이 책 속에서 이모가 내뱉은 말이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예전에도 많이 해 봤었지만,
막상 이렇게 입을 통해 내뱉자 이 사실이 새롭게 나의 의식속으로 확! 들어와 앉았다.

 


'자연물의 죽음을 먹고 인간이 살아간다'는 예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사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즐거운 식탐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먹음으로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자연의 원리, 생명 순환의 원리는
주혁이가 생명을 죽여대는 모습처럼 끔찍하게 느껴지게도 하고,
닭을 잡는 이모의 모습처럼 성스럽게 느껴지게도 하듯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먹음으로써 자연을 '정화'하고 '순환' 시키는 버섯의 생존처럼
'죽음'이라는 것과 '먹는 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성스러우며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죽음'과 '다른 생명체의 시체'를 먹는 다는 사실을 7살, 9살  아이들에게 내뱉은 것이 부자연스럽고 껄끄럽고, 잔혹할지도 모르겠다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 이 책은 중심 이야기보다 부스러기, 언저리 이야기가 더 중요하고 인상적이게 다가오게 한다.
이런것들이 이 책이 낯설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이며, 돋보이게 하는 차별점이다.
 

 

 

『주제를 배경처럼 만들며 그것도 마지막에서야 밀물처럼 밀려오게 합니다.
현재는 반복적인 리듬으로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데,
그사이 과거의 기억들은 아주 빠른 리듬에 번개처럼 번쩍이는 전개로

 편재시킨 이중적 구성도 독특합니다.
이런 과거의 단편들이 현재에 서서히 스며들어 최종적인 특유의 연대를 만들어 갑니다.
사이사이 미적 장치들을 나름 치밀하게 배치해
전체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작가의 지적 능력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 입니다.』 


                                                            - 임규찬 평론가의  작품해설 중 -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그래서 마술적인

 

 

현실성과 비현실성,
두 세계의 경계가 희미하게 혼합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며 낯설게 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낯설고 혼란스러운 느낌들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심리상태와 닮은 듯 하다.

 


갈수록 커져만 가는 아이 수문이(180cm를 넘기고 있는)와

반대로 자꾸만 작아지는 아이 주혁이(150cm)
온갖  버섯만 먹어대는 이모와
날마다 까만 숯가루만 먹어 대는 아저씨.
늘 찬송가를 부르며 거의 누워서만 지내는 엄청나게 뚱뚱한 왕이모와
왕이모의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외소한 왕이모부 등의 대립적인 형상들...

 

 

게다가 새(호랑지빠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주인공 수문이와,
모든 새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맨 손으로 모든 뱀을 잡는 다는 이모는
정말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
아니면 등장인물들이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반수면 상태의 꿈을 꾸는 듯 혼란스럽고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이모는 정말 '마녀'일지도 모르겠다.

 

 

 

마녀를 꿈꾸다.


아빠없이 태어나 닷새만에 엄마를 여윈 수문이는 이모와 왕이모를 오가며 자란다.
이모를 엄마처럼 따르지만,
배다른 형제인 이모는 수문이를 품기도 하고 내치기도 한다.

 


수시로 버림받은 아이.
무기력하게 버려졌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이모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강박'으로 수문이의 내면을 옥죄기도 하고, 그런 이모를 미워하면서도 따르게 하는 이중성으로 인해 늘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마녀를 꿈꾸다'는
어쩌면 '마녀'일지도 모르는 이모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의지하고자 했던 자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하며,
자신의 미래인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아니면 무기력한 세상에서 마술을 통해 변화시키고 싶은 주인공의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쉬운 듯 쉽지 않고,

    이렇게도 저것게도 보여지는'현대판'소설

 

 

 


시작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낯선 구조에 다양한 상징들로 인해,
읽으면 읽을 수록 건져낼 것이 많은 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쉽게 덤볐다가 며칠을 헤맸다.


책 읽는데 가속도가 붙기까지 시간이 걸렸으나,
막상 책을 덮고 나니, 이제야 퍼즐 조각을 맞추듯 여러 의미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사실 몇 번 더 읽고 제대로 그 의미를 찾았어야 하는데 급하게 쓰느라 놓친 이야기가 많아 아쉽다.
리뷰는 마쳤지만, 앞으로 몇 번 더 읽으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
다시 한 번 제대로 써야 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9살 딸 아이가 예민하게 굴때마다..
설마 '사춘기'가 벌써 오는 건 아닌가 하며 아이를 살피게 된다.
그만큼 '사춘기'는 한 집안에 '비상사태'를 예고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나의 '사춘기'는 그냥 그렇게 쉽게 넘어갔기에 아이들에게 다가올 '사춘기'를 어림하기가 어렵다.

 

가장 예민하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가장 많은 꿈을 꾸고, 가장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시기라는 작가의 말 처럼,
'사춘기'를 그저 방황과 고통의 시기가 아닌,
성장의 시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시기가 될 수 있도록 관심과 격려, 인내의 용기를 갖고 맞고자 한다.

 

용기와 희망, 그리고 생명과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연스러운 받아드림.
이것이 이 책에서 받은 선물이다.
이러한 낯설고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 우리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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