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조각 (겨울 한정 스페셜 에디션) -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개정 증보판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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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달의 조각
제목도 참 길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세계에 삽니다.


겨울 한정 스페셜 에디션
어떤가요?
애초 달의 조각 겨울 한정 스폐셜 에디션인 것은
크게 관여치않았다.
다만 미발표 원고 수록이 있다는 부분도 있고
이기주 작가님의 추천도서이기 때문에
열렬한 팬심으로
하현 작가의 작품을 읽게되었다.

달의조각이라고 하니까
왠지 Luna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달의 여신.
표지가 제목도 잘 안보이고
불편했으나 무슨 의도로 이렇게 표지를 만든 건지는
알겠더라는.
적당히 차가운 무관심
감정낭비

마음에 드는 구절도 더러 있었지만
이 글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고?

갸웃하면서 다시 읽어보았다.
읽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무리 같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려고 하는
의도는 알겠다 ... 이런 게 청춘이라면
나는 뭘했길래
이런 간질간질한 멘트한번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이 나이가 되있는 거지?
나에게 청춘은 언제였는데?
왔었는데 몰랐던 걸까
혹여 아직 나에게 청춘이 시작되지 않은 걸까.
당장 어제도 사자왕과 세금 관련해서 논쟁을 하고
이 나라에서 세금에 치여 못살겠네
당장 긴축해야하는데
여기서 뭘 더 긴축하라는 건데
애가 오렌지주스 사달라는데도 못사줄 정도로
긴축한다고 세금내느라 등골 휜다.
에라이, 가서 귤이나 까먹어라. @ !#^÷&₩#"
그게 귤이겠냐 그냥 귤상자지.
빈 상자 보냈겠냐.
평소 단란한 사자왕과 저도
세금을 빡빡 긁어가시는 나랏님 앞에서
기절초풍할 지경.
집을 내놔도 안팔리고 차를 내놔도 안팔리고
매출이 줄었는데 당장 세금은 기절하게 많아지고
억지 세금 어찌하오.
사는 게 힘들어지니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까지도 참 빡빡하죠?
청춘의 불안전함? 당장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읽기는 금방 읽히지만
왜 하필 그녀는 달을 선택했는가.
나름 서평들이 이 분 글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길래.
덥썩 들었지만,
저자의 고뇌라는 것이 내 마음에 썩 들어오질 않았다.
저자님께는 죄송하지만
겨우 이런 걸로? 혼란스러워하다니..
거기다
불완전한 시절 속의 자아를
구태여 달을 배경으로 꼬깃꼬깃 갖다 붙인 느낌?
그녀는 민들레 한송이
비바람에 단련된 옹이나무에 비해
홀씨가 가득한 민들레 한송이는
미풍에 그리도 흔들렸나보다.
IMF때부터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던
생계형 여대생 나는 예쁜 꽃이 아닌
넓다란 옹이나무로 자라는 걸 선택했고
보기엔 투박해도 꽤 튼튼하답니다.

낮잠
참 소녀소녀 하다.
달은 따뜻한 온기가 아니다.
차가운 한기다.
20대 초반 한 소년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무 차갑다고
그러면서
손톱모양작은달이라고 노래를 만들어 불러줬다.
그 친구는 아직도 노래를 할까?
항상 노래하는 배짱이가 생각나던 그 친구.

이제는 개미처럼 일을 하고 있으려나.
하이틴에세이?

서론, 본론, 사랑의 결론은 생존
이미 결혼을 하고
현실을 직시해서 일까
남의 과거는 왜 물어보고 혼자 재미있어하나
오글거리는 하이틴소설 읽는 줄.
스티커 이미지

나도 모르게 살짝 콧등이 찡긋올라갔다.
[결론은 너였으면 좋겠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자후가 들리는가.

사랑 후에 오는 것은 생존
나는 오늘도 사자우리에서 왕좌의 게임을 펼친다.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면 아무도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지]
36개월 꼬맹이 사자도 마찬가지야. ㅋ
동행
아빠의 책장에서의 저자는
얄미울 정도로 철없이
아빠의 부동산을 표현했다.
아빠가 놀라고 1억 만드는 목표였을까
부동산은 그냥 노신다고 차린 거였겠는가
이 철없는 따님 다시 생각하고 글 쓰셨음 한다.

아버지께서 당신 청춘을 바쳐 받은 퇴직금을
투자자문 사업으로 한방에 날려버리시고
돈까스 가게로 고생하실 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돈까스 가게는 나 빼고는 다들 말렸다.
명색히 대기업 전무출신 아버지가
내 또래 아이들에게 돌쇠아저씨라고 불리는 게
마음이 찢어질 뿐이지
그냥 묵묵하게 학교 끝나면 와서 일을 돕고 가곤 했다.
(하필이면 인수받은 돈까스 가게이름이 돌쇠인 걸 어쩌겠나.)
나는 왜 안 말렸냐고?
어떻게든 재기하시려는 눈빛을 봤거든.
그게 아버지다.

아버지 들고 다니시던 책 속의 1억 만들기는
저자님과 가족을 위한 1억이었을 걸 왜 모르니.

바다+술=새우튀김

내 친구 중에 민족K대 초붥양
그리운 그녀, 항상 달을 가까이하며
달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니
마치 이태백을 보는 듯 하였다.
청춘 부분을 읽다보니
너의 20살이 생각이 나는 구나.
엠티로 간 여름 바닷가
술을 즐기다
밤바다에 비추어진 달 잡으러 뛰어들어가던 너님.
그리고 밝아오는 아침햇살 모래사장 위
온몸은 반짝이는 모래가루가 적당히 묻혀져
4년 내 새우튀김이라 불린
설현 닮았던 너님.
아프지마라.
그래도 사랑했던 내 친구야.

그러고보니 이태백이야 말로 청춘이로고~!


달의 조각
그 부러질 듯한 얇은 조각의 달은
휘엉청 밝고 둥근 보름달로 차오를 일만 남았다.

만월이 되어라.

모두의 앞길을 환히 비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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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이 만나다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34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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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할아버지의 사진.
위의 사진과 함께
빈자리, 흑백의 할아버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이 있단다.]

지금은 떠나고 없으신 분이라는 복선을 깔아줍니다.

아이는 혼자 작은 배를 뚝딱뚝딱만들어요.
설계도 없이 잘도 만드는 구나.

구름들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황금 왕 잉어

나를 따라와~

책의 섬

거대한 소라껍데기섬

해파리들이 춤추는 바다를 지나

여기가 거긴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 곳.

배가 하늘로 올라가는지
바다가 낮아지는 건지


아기가 보면서 연신
우와~~~와아~~


고래다~해파리다~배다~배~

눈을 어디다 두질 못 하네요.
저도 보통,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선
꼭~

미리 읽어보는 데요.

몽환적이고 멋지더라고요.

아이에게 어떻게 읽어줘야 더 환상적이게
상상력을 톡톡 건들여줄까.


읽고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정말 재미있네요.

어른이 본 느낌이야 아이에게 와 닿을까싶지만

아이에게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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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만드는 집 - 돈.건강.관계의 흐름이 바뀌는 공간의 비밀
신기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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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내용을 책으로 만들다니 용감하심.
별 하나 달려다가 하나 더 달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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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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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마음이 허하신 분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 입니다.

당신의 옳다의 저자 정혜신 선생님이야 말로
이 시대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심리치료 전문의이며
주변의 우울감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손 내 미는 방법.
그들의 이야기 만을 듣는 공감이 아닌
정확한 공감의 정의를 내려주십니다.
또한 내담자의 상담 자세와
상담자의 상담 자세를 자세히 기술해놓으심으로써
상담하러 간 환자(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 동료,이웃)의
S.O.S신호와 어렵게 말문을 터놓게 하는 방법 등이
당신의 옳다, 이 책 한 권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봐온 상담심리학책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수 있는 책이라 단언합니다.

강조에 강조!
당신의 옳다는
상담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이거나
마음이 허해서 상담을 원하시는데
어떻게 상담을 시작해야 할지,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은 꼭 사서 보세요!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읽을 수록 가슴에 닿고
다시 읽으면 놓쳤던 부분,
정혜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체크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언제까지 건강할 수 있다 자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신이 옳다> 구절 중,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보호를 잘하는 사람은 타인을 도울 자격이 있다.]
지금 내 마음이 건강하다면 힘들어 하는 타인에서
손을 내밀어 다정한 천사가 되어주세요.
그렇게 덕을 쌓고 살다보면
언젠가 저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는 천사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흔이후,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소노 아야코
서평에서 말씀드렸 듯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덕입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해
배려와 사랑을 주어 신뢰를 하는 경우 덕을 쌓는다는 것인데
타인에 대한 이해, 공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이 책을 보면 나의 가짜 마음과 진짜 마음을 구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담(대화) 내에 상대방에 역전 당하지 않는 방법도
기술되어 있어
타인을 도와주면서도 내 마음을 지킬 수있는 방어능력까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적정심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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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클로저 - 나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세상과 가까워지는 심리 수업
일자 샌드 지음, 곽재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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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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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중 으뜸은 성숙한 자기보호다.
자기방어를 자기보호로 바꾸면 행복해진다.


컴클로저를 읽으며 아쉬웠던 점
독자들이 기초적으로 알고 읽으면
도움이 될만한 부분인
심리학의 기초, 자기 보호, 자기방어, 페르소나의 시작점을 통으로 잘라 먹었다.

그래서 컴클로저를 읽으면서
자기보호,자기방어의 애매한 부분에
혼동을 가지고 오해하며
읽는 독자분들이 있을까도 싶다.

컴클로저에서 말하는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헬레니즘 철학에 기초 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에피쿠로스학파 VS 스토아학파
..그리고 페르소나.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 쾌락,
그리고 자살을 연상시킨다.
스토아 학파는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얘기했다.
(에피쿠로스 학파 관련 내용은
제일 밑으로 쭉 내리심
그들이 말하는 행복, 쾌락,자살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음.)

페르소나? 가면... 누구나 가면은 쓰고 있다.
가면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자칫 오해를 살만하다.
나는 페르소나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과
대처능력이 토대하여 나온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
현실과의 타협이라고 해도 될런지도 모른다.

지의 삶, 회사에서, 학생은 학생으로써의 가면.
가정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나름의 가면이 있을 것이다.
나는 페르소나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이 살았지만
살다보니 적당한 자기보호에 대해 필요성을 깨닫고

회사에서의 행동과 집에서의 행동이 다르고
친구들 대하거나 누군가를 대할 때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페르소나를 유도 해내고
서로의 관계를 지속해왔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으로 나 또한 눈치껏 그들이 원할만한
페르소나를 찾아냄으로써
보다 친밀하고 원활한 인간관계 구축을 도모해왔다.
너무 계산적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
그대로의 100%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았는가.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바라는 모범적인 딸이라는 모습이 존재한다.

상황에 맞춰 다양한 가면을 바꿔쓰는 모습들 중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 것인가.
페르소나라는 자체는
나에게 남들이 나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이며 방패가 되기도 한다.

에피크로스 적 측면의 쾌락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추구한다는 말이 아닌
행복의 지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 스크롤 제일 밑에 부연 설명)


함께있어 행복하고 즐겁고 유쾌, 상쾌하면
그 사람과 계속 만나고 싶어할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의 만남이 불쾌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면
만남을 기피하며 그 사람을 피할 것이다.
이런 크로스 적인 우발적인 만남이
에피쿠르스 적인 사람이다.

반면 스토아학파는 매일매일의 순간마다
쪽대본을 받아 삶을 연기 하는
필연적이고 운명에 엮여 살아가다 보니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너는 너의 역할이 있으며
너로 인해 행복해하는
나의 역할이 정해져있고,
나라는 사람은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세계관이다.
스토아적인 삶이란 필연적이고 운명적이다.
순응, 저항이 없다.

오히려 저항하는 것을 부정한다.
왜 나의 삶이 이 지경이 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없이 그것이 나의 주어진 인생이라는 것.

그들은 삶을 실타래에 비유한다.
우리는 실타래가 완전히 다 풀리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
그 실타래를 풀다보니 실에 부분부분이 다른 색이었더라.
끊겨있더라.
그것 또한 풀어봐야 아는 것인 것처럼
결정론을 주장한다.
시간의 경과는 실을 푸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간단 명료한가.



학파내의 주장은 그러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견주어 생각해보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는 사회라는 것을 이루고 사는 구성원들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 있는 나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고
나는 그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해나가고 있다.
전체라는 것과 조화를 이루는 삶.
그것이 스토아 학파의 중심모토이다.


스토아적인 사회에 살다보면
그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들 답답해서 그 탈출구를 찾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도.
그래서 컴클로저 같은 책을 사서 읽으시는지도?

행복, 쾌락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에피쿠르스 학파에게 밤문화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스토아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밤문화가 생겨났다.
밤문화에서 쓰고있던 페르소나를 벗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가끔 술에 의존하여 (만화, 게임 등)
페르소나를 벗고자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컴클로저에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에피쿠르스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나에게 있는 페르소나는 어떠하며
그것을 쓰고있는 가 벗고 있는가, 들고 있는가.
검점해볼 필요가 있다.
이 점이 바로 컴클로저에서
집요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 아닐까?


에피크로스 적으로 한 사회를 이뤄서
유지하기에는 통제되지 않는 요소들에
다소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페르소나라는 가드를 올리는 것.
그것이 스토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구성원으로써
적절한 페르소나는 필요하다는 나의 의견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에피쿠르스적인 삶을 살다가도
스토아적으로 고착되기도 한
어떻게 보면 비범한 에피쿠르스 적 삶을 살고 있다.
보통의 페르소나는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방어에 주력하다보니
나를 위한 보호가 감금이 될 수 있는 데,
바로 그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이 된다.
페르소나로 인한 자신의 억압으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와 자신의 페르소나를 진짜의 나라고 착각을 하거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비극.

컴클로저에서는 바로 이점을 집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자샌드는 알고 있었다,

방어를 하는 페르소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내가 강자의 입장에서 상대방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성숙한 페르소나,
방어는 하되 적절한 조절의 전략적 페르소나가 있다.
과연 나는 그 페르소나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컴클로저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이 말?)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그 가면을 항상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은 외담이지만,

더 큰 쾌락을 위한 지금의 쾌락을 미루는 정신세계
다이어트를 하면서 힘겨워하지만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
에피크로스 학파에서 말하는 부분을
좀 더 현실원리에 입각해서 다듬었다고 해야할까.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의미는?
화장이라는 것은 자기를 돌보는 속에서
타인에게 더 좋게 보이게 하려는
스토아적인 의도가 다분하다.

역사적으로 에피크로스 학파가 나온 이후
스토아 학파가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으신지,
왜 그 자유분방함에 맞선
억압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인데
지금 우리는 그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컴클로저를 읽는 내내
너무도 다양한 사례가 오히려 지루함을 가지고 왔다.
집중력을 흐렸다.

그제 아이 양육에 대한
육아서적 포스팅을 올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컴클로저 도처에
양육자로 부터 발생한 문제가
잘못된 자기보호로 정착된 경우
심리상담 또는 개인만의 노력이 아닌
부모와 관계, 가족의 발견 등을 통해
극복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컴클로저 일반적인 사례들은 아닐지도.

컴클로저에서 말하는 양육자 마다의
여러 스타일이 있다는데
이에 따라 자녀가 어떤 성인이 되었는지
다양한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또, 컴클로저를 읽다 놀란 점은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하는 말이
양육자가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잘못된 환경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녀가 되물림 하는 것이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찾는 자기보호기재로써
그런 (잘못된)익숙한 환경이
본인에게 대처하기 쉽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갸우뚱. 석연찮은 구석도 있었다.


컴클로저, 부모 핑계대지마
많은 사례들을 읽다보니
왠지 모르게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나에게 우리 부모님은 최고의 부모님이었는데
컴클로저에 쓰여있는 데로라면
나 또한 내가 모르는 자기방어로 똘똘 뭉친
무의식의 컴클로저 아닐까?
나까지 흔들리다니!!

억울하신 부모님 많으시겠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도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고
보여주고 싶은 만 있고
어떻게 키우고 싶다라는 마음에
부모님 나름의 페르소나가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 맞춰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막내 딸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가면을 쓰고 있다.
가끔 그 가면이 벗겨져 살짝 놀라긴 할지언정
어쪄랴?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이시고
악의적인 페르소나를 가진 관계가 아니니까,

주변에 자기방어 끝내주는
컴클로저가 있다면?
근데 제 주변에 자기방어 끝내주는
고슴도치 한마리가 있는데
그냥 두는 게 맞겠죠?
그녀는 그냥 스토어 학파의 페르소나임을 떠나
'더 이상 가까이 오지마!!!!'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거든요.
가까이 가면 화를 내고
멀리하면 마음 편해하는 게 보여요.
그럼, 그녀가 원하는 데로 해야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자.

컴클로저 외 내용

에피크로스 적 측면의 쾌락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추구한다는 말이 아닌
행복의 지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성욕을 느낀다고 아무에게나 행위를 할 수 없다.
억지로 하게 될 경우 그 순간이 지난 후
그는 과연 행복이 지속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사려가 중요하다고 했다.
욕망을 추구할 때 사려가 없으면 안된다.
그들이 말하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고 행복해하는 나의 쾌감을 위한
나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라고 이야기 한다.
그로인해 그 당시 쾌락이라는
전제의 사회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에피쿠르스가 말하는 자살이라는 것.
통상적으로 보면 자살이라는 것은
회계를 할 시간이 없다.
바로 내 자신이 나를 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지고 더이상 행복을 느낄 수 없고
괴로움이 지속될 거라는 확고함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사지가 마비가 되고
정신만 있는 환자가 고통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치며 안락사를 요구하지만

사회에서는
"왜 죽으려고 하느냐 견뎌봐라,
그렇게 죽게 놔둘 수 없다."고 답한다.

이는 에피쿠르스 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보다 잔인한 것은 없다.

스토아적 또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입지가 있는 반면
에피쿠르스 적인 사람에게 나의 생명이란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중심은 나의 삶이 된다.
모든 것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내가 죽어서 슬퍼할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수 있을까?

인식한다고 해도 몹시 괴로운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지금 내가 죽으면 그만인 것이지
아픈 건 에피쿠르스 적인 면에서
엄격하게 따지기엔 그들의 입장일 뿐이다.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자살하려던 사람이 망설이는 것은

아직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위해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 삼고 그만큼의 한 가지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이고 최악의 상황은 아니겠다.

또는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의 변명이며
내가 지금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자기정당화이기도 할 수 있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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