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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 작가라..책이라는 것과 친숙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최인호 작가는 내가 지금도 가끔씩 즐겨보는 드라마 '상도'의 원작자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 이후 최인호라는 작가는 한때 나름 잘나갔던, 젊은 작가시절 대한민국을 열광하게 했던 작가라는 것만을 더해서 알게 되었을 뿐 어떤 작품이 있는지,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특별히 독특하다던가, 획기적인 발상으로 이루어져있지는 않다. 내가 과연 나인지,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과 남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의 괴리 속에서 내가 바라보는 모든 도시의 낯설음과 낯익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나와 나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뽐내고 있다. 다만 나와 나의 괴리를 종교적인 영감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최근에 읽었던 소설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또다른 면에서 독자들과 일반 대중, 그리고 작가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그것은 과연 예술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작가를 위한 것인지, 그것을 수용할 독자 혹은 대중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의 회귀이다. 최인호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글을 쓴 이래 처음으로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미칠듯한 영감속에서 단거리 주법으로 글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즉 자신의 순간적인 영감을 200%이상 발휘하여 일필휘지하는 마음으로 원고지를 끝없이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 본인의 건강상태와 영적인 상태를 고려한 최선의, 그리고 가장 만족하는 글쓰기임을 밝히고 있다.
누구나 영감이라는 것을 받는다. 어떤 사물을 보다가, 어떤 사색에 잠기다가, 어떤 것을 듣다가, 어떤 행위를 하다가 우리는 문득 주체할 수 없을 표현의 욕구를 가진다. 그것을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예술의 영역으로 자신의 영감을 풀어헤친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과연 그 '영감'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영감'이라는 것은 독자를 만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영감'자체를 독자들과 교감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바가 작가의 영감이자 주제의식이었는지, 아니면 작가는 그 글쓰기의 열망을 영감을 통해 얻는, 즉 영감 자체가 글의 동기가 되는 것이어야 하는지. 최근까지 나는 그 영감은 동기에 그치는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흔히 영감 자체가 글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경우 작가 스스로는 한껏 우리를 그 영감에 같이 빠지자고 밀어부치지만 정작 독자들은 그 느낌에 어리둥절하고 방황하는 경우를 느끼기 때문이다. 정작 작가 역시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체, 순간적은 그 느낌의 휘저음으로 모든 것을 갈음하는 작품이 과연 천재성으로 대표되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작품으로 추앙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석으로 통해 오히려 작가가 더더욱 찬양받는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모를 연결고리들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어떠한 말을 하고 싶었는지 대충을 알겠지만 정확히 꼬집을 수는 없는 그런 작품.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고 그냥 우리 모두 뭉뚱그려서 그 영감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작품.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 이러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꼭 그 영감으로 뭉뚱그려 휘두른 작품도 괜찮을 수 있다는. 예술가라면, 예술이라면 그 쓰고싶다는 열망만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독자들이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 우리 모두, 주위의 모든 불이 꺼지고 창문으로 고즈넉한 달빛이 달아오를 때,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 아래 쏟아져나오는 영감의 늪 속에서 어떤 것이든 끄적이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쓰고 싶다", 말하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발현이 원고지 위에서 펼쳐진 예술을 바라볼 때, 한 번 쯤은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떠올려좀직하다.
그리고. 이 책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 쓰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원고지라는 작가의, 최인호만의 십자가에 다시 선 그 용기와 열망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그 찬사의 마음 속에서 열망의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