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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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삼한지에 대해 얘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먼저 나관중의 삼국지(이하 삼국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삼국지. 중국 후한 말 불세출의 영웅들의 향연
이러한 삼국지의 매력은 이들이 한나라에서 갈라져 다시 세 나라가 되고 다시 이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동안의 서로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 그리고 그 안에 세상사를 망라한 수많은 권모술수와 계략들, 매력적인 인물들의 밀도 높은 구성 때문이다.
또한 정사 삼국지(이하 정사 삼국지)와는 다른 허구의 사실들의 재창조를 통해 양자간의 비교를 통해 무궁무진한 이야기꺼리를 재생산 할 수도 있다.
소설 삼한지 역시 이러한 삼국지와 많이 닮아 있고 닮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는 여러 주연들 외에도 다양한 인물의 삶을 살려내며 상당한 스케일의 작품을 비교적 일관적으로 끌어가며 잘 살려내었다.
이 소설은 백여년간의 삼국의 정세를 다시 살려내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를 친숙하게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방대한 이야기들의 재구성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다.
다만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삼한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에는..
조금 아쉽다.
고구려, 백제, 신라.
책의 소개에도 적혀있듯이 이 세 나라가 왕권강화를 기반으로 진정한 나라의 체계를 완벽히 갖춘 6세기부터 7세기의 약 백여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촉한정통론을 앞세운 삼국지가 유비의 의형제들로부터 그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하듯이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익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신라, 진흥왕 이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진흥왕 이후 왕위를 계승한 진지왕.
그리고 진지왕의 폐위와 그의 아들들로부터 이야기는 이어져 내려온다.
그리고 그 이후 신라의 역사와 그에 물고 물리는 백제의 역사와 서동대왕의 등장
백제의 부활과 반복되는 백제와 신라의 다툼
그리고.. 고구려.
분명 삼한지는 삼국의 얘기이다.
그리고 삼국의 얘기,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렇게 많이 나오던 솥발형태라는 표현 그대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이러한 소설의 묘미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동안의 그 긴박함과 그 안에서의 매력적인 인물들의 수싸움이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가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동안 고구려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수나라가 쳐들어올 때와 당나라가 쳐들어올 때만 그들의 이야기는 나올 뿐이다.
물론 고구려는 그 지역적 특성상 백제와 신라에 비해 우리나라에 전해져오는 이야기나 사료가 적어 고증이 힘든 부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삼한지는 역사를 다룬 소설이지 역사가 아니다.
그 백제와 신라가 한참 싸우는 동안 고구려는 그저 왕은 아무생각이 없고 오로지 을지문덕과 연개소문만이 나라를 꿋꿋이 지키고 그저 중국을 막기에만 벅찰 뿐이다.
영웅의 포화
삼한지에는 너무도 많은 영웅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당시 나라를 위해, 명예를 위해, 가족을 위해 목숨을 초석같이 버릴 줄 알았던 훌륭한 영웅들이 많았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이 영웅들이 그토록 신라에만 몰려 있고, 그런데도 신라는 늘 삼국 중 가장 열세였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경우 그 비중이 워낙 적으니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이외에 영웅다운 영웅은 한 줄 비춰지는 경우도 없거니와
백제의 경우에도 무왕과 성충, 흥수와 은상, 사택지적, 계백과 같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무왕을 제외하고 그들의 활약상은 10권을 통해 극히 미미하다.
반면 신라는 진평왕과 백반왕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영웅이며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다.
김용춘과 김춘추, 그의 아들 법민.
김유신과 신라의 9대장수
두두리 거사 비형과 강수
또한 그 외에 훌륭한 화랑들.
그런데.
늘 신라는 군사적으로 열세이며 겨우겨우 당나라의 도움을 얻어 부지하다가
결국 당나라 군사에 힘입어 백제를 겨우 멸망시킨다.
모순이다.
삼한지에는 너무도 많은 영웅이 있다.
그런데 결국 그 영웅들을 물리치고 몰아내는 것은 결국 그렇게 무시당하는 당나라 장수와 군사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영웅들로, 이 책대로라면 계백만이 남아있는, 반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의자왕의 백제를 혼자 섬멸하지 못하고 당나라 십만 대군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소설은, 특히 이러한 역사소설은 한쪽의 편을 들게 함에 있어 그 편에게 혹은 그 반대편에게 감정의 이입을 충실히 시켜주어야 그 길고 긴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삼한지는 내가 잘 모르고 있던 우리네 역사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주고 나에게 그들의 익숙함을 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소설이다.
그리고 백년이라는 긴 세월을 작가의 힘으로 잘 끌고 온 잘 쓴 대하소설이다.
하지만 신라왕국 그토록 많은 영웅들의 무력함은 무언가 소설을 맥빠지게 만들고 몰입을 방해하게 한다.
우리네 역사에 영웅이 많은 것은 좋다.
그러나.
영웅은 영웅다워야 한다. 영웅은 능히 한나라를 구해야 하고 한나라를 스스로 섬멸할 수 있어야한다.
백제와 신라의 다툼.
영웅들의 말을 듣지 않는, 영웅이 남아있지 않은 미치광이 왕의 나라와
수많은 영웅들과 영웅들이 모시는 왕의 나라의 다툼이
결국 다른 나라에 의해 끝난다는 사실은 많이 어색하다. 그리고 슬프다.
신라가 당나라를 불러 올 수밖에 없게 한 백제와 고구려의 영웅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의 마지막 즈음에도
삼국지와 같은 걸출한 영웅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신라의 영웅들만 보았고,
그 영웅들이 능히 알아서 망해가는 나라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것만 보았다.
그네들만으로서도 우리네 역사에 충부한 영웅이 있었음을 능히 알수 있지만.
그들과 자웅을 겨룬 다른 영웅들의 얘기도 더욱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면.
삼국시대, 각 나라의 마지막 불타오름을
더욱 더 찬연히 빛낼 수 있었으리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