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다시보기
박홍규 / 필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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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고 싶다. 과연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 정치가를, 그의 말대로라면 철인통치라자로 말하면서 권력을 준 사람이 관념 속에 사는 소수의 철학자들인지, 혹은 부유한 사대부 귀족들인지, 적어도 모든 독재권력가들은 자신의 국가를 칭할 때 독재국가라고 하지 않는다는 아주 상식적인 사실을 짚지 않고 있다. 모든 독재국가들은 <민주>국가라고 칭한다. 현재 대한민국도, 과거의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권력을 준 것은, 이명박에게 권력을 준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땅의 주인 행세를 하는 모든 민중이다. 독재자는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그 선거는 결코 귀족이나 부유층이 표수를 더 갖는 금권정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 선거 원칙의 하나인 평등선거에 의해서 모두 한 표씩을 행사했다. 저 ‘어버이회’에서도 한 표, 아마 전라도를 ‘홍어X'라고 부르는 일베의 회원들도 한 표를 행사했다. 도대체 어떻게 독재자를 철인통치자로 만든것이 철학자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철학자들이 너무 말을 잘해서 국민들이 속아넘어갔다면 그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 플라톤이 그토록 혐오하고 있는 소피스트들일 뿐이다. 그는 변증술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논증에서 이기는 것만 관심이 있는 웅변술을 하는 자들인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주 뛰어난 철학자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자신의 책에서 이런 글을 쓰다니, 과연 그가 철학 교수인지 너무도 난감하다. 그가 쓴 수많은 철학 서적, 특히 플라톤을 다루는 책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욱 가소로운 것은 이것이다.

“”플라톤을 몇 번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한 기억만 남아있다. 어떤 감동도 받지 못했다. .... 사춘기에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플라톤이 등장하는 철학책을 끼고 도는 지적 사치에 젖었으리라. 그중 하나가 러셀이 쓴 <서양철학사>였다. 1958년에 번역되고 문교부에서 펴낸 상하 두 권의 방대한 그 책은 시골 중학교의 책꽂이에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 그 책 덕분에 나는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기억 속에 분명히 담아두게 됐다.

어떤 책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원저를 읽기 전에 그것에 대한 해설서를 먼저 읽는 것은 올바른 독서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서양철학의 원저를 읽기란 지금도 그렇지만 사오십 년 전의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p. 35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이다. 플라톤을 비판하는 근거가 <국가>원전이 아니라 위대한 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의 플라톤 편을 읽고 비판한다는 그 어처구니없음을 어찌 학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슬픈 고백인듯 내뱉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부끄러운 고백이다. 해설서라는 것은 적어도 플라톤 <국가>편에 대한 한 권의 해설서여야 하거늘, 하물며 해설서도 <서양철학사>의 플라톤 편이다. 본문만 1038페이지에 해당하는(최신판 2009을유문화사에서 한 권으로 다시 나왔다.) 1. 고대철학 중 166~232 플라톤 편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고 말이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출판 사정이 안 좋아서 번역이 안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수십년 전부터 본인이 주로 보았다고 하는 박종현 선생님이 번역을 시작했고, 젊은 학자들이 모인 <정암학당>에서 고르기아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고 있는 중이다. 본인도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도 미안하겠지만 수치심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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