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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 한국의 시장경제
임석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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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임석규의 <보수와 진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표면으로 떠오른 보수와 진보세력을 다룬 경제서적이다. 어쩌면 가장 민감한 부분일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나 진보는 단순히 경제적 부분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냄새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말해도 좌빨이라느니 수구세력으로 몰릴 수 있는 게 21세기 초두를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다. 

임석규는 공정거래위원회 독점정책과장, 소비자보호국장, 정책개발기획단장을 역임한 경험과 본인의 경제학지식으로 보수와 진보를 비교적 균형 있게 다룬다. 한 쪽으로 쏠리지 않은 시선으로 보수와 진보 모두를 다룬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없다. 이념, 사상, 사회구조, 선입견, 대립 상황 등 세상살이 대부분이 그렇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원래 그러했던 건 없다. 모든 것은 역사를 가지고 진화한다. 각각의 흐름이 있지만 모든 시대가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찾고 찾아 올라가면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조류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간략하게나마 애덤 스미스 이후의 보수와 진보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서양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주의가 힘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낳았는지 해당 역사와 각각의 흐름을 주도했던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다룬다. 그리고 중반쯤부터 시선을 우리 한국으로 돌린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보수든 진보든 관치(官治)라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철저한 자유 시장을 추구하는 것 같은 보수조차도 결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의한 성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측도 마찬가지다. 복지사회를 이룬 유럽도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인정하되 정부가 여러 불합리한 요건들을 앞서서 조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진보는 너무 정부를 의지한다. “정부가 성장촉진정책을 밀고 가는 것을 시장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이러한 성장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정책담당자를 시장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하”(149쪽)는 이상한 자유경제(?)관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200여년이란 기간 동안 인류가 치열하게 고민해온 위대한 유산이다. 따라서 둘 다 사회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나라들이 최소 150년은 겪었던 경제발전을 불과 30여년 만에 한꺼번에 겪음으로 보수와 진보가 단순히 경제적 관점을 벗어나 온갖 정치적인 싸움으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실용주의’다. “중요한 것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이다.”(235쪽) 

보수와 진보,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 하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비슷한 소리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했던 것이 실용주의인지 의심스럽다. 아나운서 옷 색깔을 조사하고, 자기 마음에 안드는 네티즌을 잡아들이는게 뭐가 실용적인지 모르겠다. 이건 단지 이명박 잘못만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정치세력과 관치의 덕을 입고 성장해온 거대기업 등이 모두 어우러져 나타난 슬픈 모습일 따름이다.  

잠깐 이야기가 딴 데로 빠졌는데 어쨌든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보수와 진보를 균형 있게 바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록에는 자본주의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유명한 글들을 원문(!)과 함께 수록해 놓았다. 이미 경제학에 빠삭한 분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겠으나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다시 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전체 윤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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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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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는 책을 왜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적은 책이다. 저자의 지나치다 느껴질 정도의 책 사랑과 은근한 자기과시가 눈에 아주 살짝 거슬렸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 정도 읽고 저 정도 난척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귀엽다.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처음엔 책 읽는 이유를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슬쩍 요즘 트렌드에 맞추는 척 하다가 이내 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병법을 일러주는 <삼국지>’보다 ‘환상과 상상, 그리고 풍자와 해학을 통해 타락한 현실세계를 비웃고, 인간의 욕망을 깊이 있게 살피고 있는 <서유기>를 읽으라'는 주장에서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리고 실용적 읽기나 속독에 거의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며 책이란 느리게 읽어야 하고, 빨리 읽히는 책이면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무래도 입시경쟁 속에서 책읽기마저도 논술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 쌓인 게 많았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계속 읽다보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은이의 흥분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결론은 하나다. “어쨌든 읽으라!”는 것이다.  

난 책을 좋아한다. 딱히 많이 읽는 건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책 모양이 좋았다. 이상하게 엄청 두꺼운 하드커버 책이 좋았다. 만화에 나오는 마법책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께서 사촌 형, 누나가 보던 책을 물려주었다. 두박스 이상 되는 상당한 양의 책이었다. 그 때 읽었던 책들은 아직도 기억난다. 중고등학교에는 만화에 빠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다. 일본문화에 관련한 책도 읽었다. 재수할 때는 얼른 수능이 끝나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수능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뭐, 그리 많이 읽은 건 아니다. 일단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끈기가 부족하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책은 살짝 지겨워 질만하면 또 나를 그 세계로 오라고 손짓한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초등학교 때 읽은 <물음표와 느낌표>는 아직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몇몇 신앙서적은 내 신앙여정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했고, 어떤 책은 회의에 빠진 나를 건지기도 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좌파에 대한 선입견을 뽑는데 일조했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 약자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1년에 20여권 읽던 나의 독서량은 조금씩 늘어나 이제는 4, 50권 정도는 읽는 것 같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 내가 벌써 20대 후반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 같은데. 어릴 때 더 많은 책을 읽어둘 껄 하는 후회된다. 대학을 빨리 졸업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만큼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해서이다.  

 

올해도 최소 일주일에 한 권이상은 보고 싶다. 그리고 관련해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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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 - 21세기 교회의 새 지형을 탐색하는 두 사람의 대화
브라이언 맥클라렌 지음, 김선일 옮김 / IVP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위험한 책이다. 책을 읽는 중에 몇 번이나 출판사를 확인했는지 모른다. 전문신학출판사에서 나왔으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큐메니컬 출판사라면 당연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학생운동단체인 ‘한국기독학생회(IVF)'의 출판부인 IVP에서 나온 책이다. 이 출판사는 8, 90년대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이끌던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상대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상당히 경계를 했었다. 국내에서는 데이비드 웰스의 <용기 있는 기독교(The Courage to be Protestant)>가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두 책은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이야기를 풀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용기 있는 기독교>는 전 IVP대표인 홍병룡이 한글로 옮겼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는 한 출판사가 수십 년간 쌓아온 사상을 스스로 해체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사실 책 내용은 간단하다. 세상은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이 책도 소설형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푸는 (<소피의 세계>나 <장미의 이름>처럼)포스트모던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점점 다원화-상대화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속해있는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인’이 변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복음주의권에서 “절대적인 가치와 권위가 사라지는 포스트모던한 세상에 대항하여 우리의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기존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책은 이렇게 되묻는다. 그 ‘순수한 복음’이라는 것-즉 ‘교리’라는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된 복음-이 사실은 모더니티의 영향을 받은 껍데기 아니냐고.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처럼 여겼던 기독교적인 것들 대부분이 실제로는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것은 복음주의, 자유주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렇다. 어떤 무언가가 절대 진리라는 주장하여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시대 속에 기독교 역시 그런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기존의 구분을 초월하거나 모두 수용한다. 따라서 복음과 역사적 기독교는 분리된다.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일방적 비아냥거림도 사라진다. 이제 더 이상 누가 지옥에 갈 것인지에 대해 논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회심’은 천국 가는 종착점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의 시작점이다. 예배에 있어서도 탈근대를 지향하는 만큼 근대 이전 모습을 참고하자고 작중 인물 ‘네오’가 주장한다.  

 

저자인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말하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사실 새롭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도 맥클라렌만의 독특한 주장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그거야말로 모더니티한 짓일 게다!). 다만 우리 가운데 이미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잘 포착해 활자화하고 정리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대답을 주려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세상을 변하는 데 과연 우리는 낡은 가죽부대를 지킬 필요가 있느냐고.  

나는 정말 반갑고 감사하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여러 신학적 문제를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어찌해야 할까? 나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은 모더니티-포스트모던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바로 아버지 세대만 해도 철저한 모더니티적 사고를 하고 있고, 지금 대학에 들어오는 세대는 어릴 적부터 자유로운 사고에 익숙하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 껴서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모더니티적 세계관에 열광하고 있었다. 한국은 뒤늦게 산업화가 진행된 만큼 변하는 속도도 겁나게 빨라서 온갖 부작용과 혼란이 혼재한다. 과연 대표적인 복음주의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 책은 한국 교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일으킨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가야하나? 이런 질문에 여전히 (포스트모던하게) 대답을 유보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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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uot;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quot; 라고?
    from 있는 그대로 보기! 2009-05-25 17:14 
    참 우습다. '진리'라는게 실종되었다(아니, 원래 없었다라고 하는게 그들의 논지에 맞겠다)라는 전제하에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난 진리를 믿는다. 진리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건 '어쩔 수 없는 배타성'일게다. 그러나 현대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지 않냐고 한다. 그냥 너한테 좋으면 좋은게 아니냐고 한다. 그럼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좋아하면 칼도 주고, 설탕 덩어리도 줘도 될까? 왜냐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그건 아니다! 아주 우스운..
 
 
바람처럼 2009-05-2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정말.. 재미있는(?) 현실입니다. IVP... 두고 봐야겠군요.
데이비드 웰스의 책과 상반된다는 이야기에 한번 검색해본건데...
정말 ㅎㄷㄷ 합니다.
뭐... 전 '포스트모던'하지 못해서.. 틀렸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헌신의 기쁨
존 화이트 지음, 박영민 옮김 / IVP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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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비LTC 과제를 위해 집어든 책이다. <헌신의 기쁨>이라. 제목이 조금 부담스럽다. <사랑받는 자의 기쁨>이라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그러나 책을 읽으며 헌신하는 자의 기쁨이 단지 사랑받고 마는 자의 기쁨보다 훨씬 크고 값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헌신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보통은 잘 모르고 산다. 국어사전에는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 나와 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헌신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왠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보는 듯). 그런데 그 헌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교회에서 IVF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면 그것이 헌신이 되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인의 헌신이 단순히 교회 생활,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전 생활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총체적인 헌신, 어느 단체에서 섬기는 것을 떠나 ‘치열한 영적 전투의 전방’에서 싸우는 것 자체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삶을 드리는 것이며 기쁨과 함께 고난도 함께 겪는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오늘날에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기피하고 있는 것들이다. ‘십자가의 길’,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충성’, ‘고난과 그리스도인’, ‘자기 십자가를 지라’, ‘믿음의 좁은 길’ 등 각 챕터를 장식하는 소제목부터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본문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한 사실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은 절대 마조히즘 환자가 아니라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강조하다보면 마치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않으며 희생적인 삶만 살게 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은 필요 없는 고난은 피하셨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담담히 짊어지셨다. 그것이 가족과 사회의 풍조와 어긋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나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과 사랑을 받고 누리자. 그러나 주님께서 마땅히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고행이 아니다!)은 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기에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내가 IVF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정한 후,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온 것이 두려움이다. 과연 내가 지금 이것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사람들은 취직하기 위해서 저렇게 공부하는데 여기서 엉뚱한 짓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님께서 이해해 주시지 않을 것 같은 생각들. 실제로 작년에 많이 직면한 문제이며, 지금도 계속 싸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성적 등 작은 것에 너무나 쉽게 흔들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도 첫 부르심의 때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이 된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부분은 실제가 아님도 경험으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우리가 소명을 확신하고 두려움의 문을 당당히 통과한다면 대부분의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141쪽)’

난 작년에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예비LTC를 가지 않았다(단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선한 손길로 나를 이끌어 올해 다시 기회가 왔다. 사실 리더니 멤버니 IVF니를 떠나 캠퍼스와 세상속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한다. 너무나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벌써부터 주눅 들어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작은 발걸음, 작은 섬김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진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그 물방울의 역할만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섬기는 자로서 이 책에서 말하는 기쁨을 나도 경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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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처럼 하나님은
도널드 밀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쁜 표지에 은은하게 박힌 노란 글씨. 감성적인 여성들에게나 어울릴만한 표지와 제목때문에 1년전의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추천글을 보고, 무엇보다 기독교에 있어선 약간 비주류계 잡지(예를 들면 '복음과 상황' 같은)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걸 보고나서야 구입했습니다.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죠.

그러나 표지랑은 다르게 너무나 시니컬한 저자의 말투. 그리고 누구나 속으로 생각했었지만 '감히' 입밖에 내지 못했던 질문들을 마구 쏟아 놓는 화법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 너무 솔직해서 신선했다고나 할까요? 기독교에 이런 직설적인 작가가 있었던가요?

전 재즈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카우보이 비밥'을 보고 조금 관심이 생기려다 말았습니다. 저자도 재즈는 그리 많이 아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을 의미하기 위해 재즈를 사용한 듯 합니다. 흔히 쓰는 사도 바울식의 상투적이고 종교적인 표현이 아닌 나의 언어로 나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의미인 듯.

저자의 MBTI는 추측건데 INTP일 것 같습니다. 냉소적이고, 혼자 있기 좋아하고, 어떤 면에선 게으르기도 하고, 사람들과 융합되기 싫어하는 모습. 딱 저를 보는 것 같네요. 물론 전 저자처럼 과감하게 리드 대학(기독교인의 입장에선 타락한 대학)같은데 가거나 히피들과 어울리거나 하진 못하지만,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특히 모태신앙인으로 자라 하나님하면 하나님그분보다 주일학교가 먼저 떠올랐던 저의 어린시절이 말입니다.

몇가지 뽑자면" 우리는 부자 교회에 다니는 가난한 집이었고 그래서 내 상상 속의 하나님은 돈 많고 큰 차를 모는 남자였다.”(12쪽)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애초에 왜 자기를 ‘아버지’로 칭하셨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아버지상에 비추어, 내게 이것은 마케팅의 실수로 보인다. 자식을 버리는 아버지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나님은 어쩌자고 아버지로 자처하시는 걸까?”(14쪽) “좋은 일이 생기면 나는 하나님의 답이라 생각했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다시 슬롯머신으로 돌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며 손잡이를 몇 번 더 당겼다. 나는 이런 하나님이 아주 좋았다.” (20쪽)등등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감히(!) 신실한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딴지를 걸거나 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교만해 보이지 않는건 진실한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의 최대 강점은 그 솔직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톡톡 튀는 그의 문체는 너무나 정형화되어 재미없어진 오늘날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저자는 주제별로 자신의 고백적인 이야기를 계속해 갑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여기선 다 소개 못할것 같네요.

다음은 이 책의 한 회심자가 불신자였던 시절의 고백
"알고 보니 예수는 아주 불온하고 직선적이더군요. 외교적이지 않고요. 그런데도 만약 그분을 만난다면 그분이 정말 나를 좋아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수를 만나면 그분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그 생각이 얼마나 나를 홀가분하게 했는지 말로 설명 못합니다. 라디오에서 어떤 기독교인들의 말을 들을 때는 그런 기분 든 적 없거든요. 혹시 만난다면 그 사람들은 나한테 호통을 칠거라고 늘 생각했지요. 하지만 예수는 달랐어요."

이부분은 얼마나 이 세상의 '기독교'를 잘 묘사한 부분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호통을 쳤는데, 우리는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자 했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믿지 않는 분들이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책임은 바로 믿는자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주인에게 빚을 탕감받은 주제에 사랑을 베풀지 못한 종처럼 말이죠.

저자는 '공동체'를 다루며 기존의 기독교 공동체 보다 히피족들이나 자유주의 교회가 더욱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는 사실을 기술합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조건적이라는 점이었다. 사랑받긴 받지만 만일 의문, 성경이 사실인가 또는 미국이 좋은 나라인가, 또는 지난주 설교가 좋았나 따위에 의문을 품으면 별로 사랑받지 못했다. 말로는 사랑받지만, 생각을 고칠 때까지 관계적 일용품이 끊기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248쪽)"
절대 공감입니다. 개인적으로 IVF를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은 그곳에선 자유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공동체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느끼는 것과 같았습니다.

한가지 더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옳은 말이었다. 나는 그게 옳은 말임을 알았다. 옳은 말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잘못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교만한 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내 모든 자학과 자기혐오가 하나님한테서 온 것이 아니며, 그런 목소리는 하나님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시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왠지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야만 할 것 같았고 그 내용을 사실로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266~267쪽)"
저자가 다이앤이라는 사려깊은 여인과의 상담하는 부분입니다. 꼭 저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입니다. 작년 여름 수련회 원투원때랑 똑같은 마음입니다. 정말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모습. 그러나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까...

뭔가 뒤죽박죽 적었는데, 하나님은 틀에 박히신 분이 아니십니다. 전 진심으로 세상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갖 언어로 치장되고 가공된 복음이 아닌, 진실로 사람을 꿰뚫는 날카롭고 힘있는 복음을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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