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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 한국의 시장경제
임석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임석규의 <보수와 진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표면으로 떠오른 보수와 진보세력을 다룬 경제서적이다. 어쩌면 가장 민감한 부분일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나 진보는 단순히 경제적 부분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냄새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말해도 좌빨이라느니 수구세력으로 몰릴 수 있는 게 21세기 초두를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다.
임석규는 공정거래위원회 독점정책과장, 소비자보호국장, 정책개발기획단장을 역임한 경험과 본인의 경제학지식으로 보수와 진보를 비교적 균형 있게 다룬다. 한 쪽으로 쏠리지 않은 시선으로 보수와 진보 모두를 다룬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없다. 이념, 사상, 사회구조, 선입견, 대립 상황 등 세상살이 대부분이 그렇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원래 그러했던 건 없다. 모든 것은 역사를 가지고 진화한다. 각각의 흐름이 있지만 모든 시대가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찾고 찾아 올라가면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조류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간략하게나마 애덤 스미스 이후의 보수와 진보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서양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주의가 힘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낳았는지 해당 역사와 각각의 흐름을 주도했던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다룬다. 그리고 중반쯤부터 시선을 우리 한국으로 돌린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보수든 진보든 관치(官治)라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철저한 자유 시장을 추구하는 것 같은 보수조차도 결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의한 성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측도 마찬가지다. 복지사회를 이룬 유럽도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인정하되 정부가 여러 불합리한 요건들을 앞서서 조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진보는 너무 정부를 의지한다. “정부가 성장촉진정책을 밀고 가는 것을 시장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이러한 성장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정책담당자를 시장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하”(149쪽)는 이상한 자유경제(?)관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200여년이란 기간 동안 인류가 치열하게 고민해온 위대한 유산이다. 따라서 둘 다 사회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나라들이 최소 150년은 겪었던 경제발전을 불과 30여년 만에 한꺼번에 겪음으로 보수와 진보가 단순히 경제적 관점을 벗어나 온갖 정치적인 싸움으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실용주의’다. “중요한 것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이다.”(235쪽)
보수와 진보,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 하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비슷한 소리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했던 것이 실용주의인지 의심스럽다. 아나운서 옷 색깔을 조사하고, 자기 마음에 안드는 네티즌을 잡아들이는게 뭐가 실용적인지 모르겠다. 이건 단지 이명박 잘못만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정치세력과 관치의 덕을 입고 성장해온 거대기업 등이 모두 어우러져 나타난 슬픈 모습일 따름이다.
잠깐 이야기가 딴 데로 빠졌는데 어쨌든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보수와 진보를 균형 있게 바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록에는 자본주의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유명한 글들을 원문(!)과 함께 수록해 놓았다. 이미 경제학에 빠삭한 분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겠으나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다시 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전체 윤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