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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조금은 무시무시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실험이 소재가 되고 있다.
바로 획득형질이 유전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리센코 후작은 1812년에 풍전등화의 러시아를 지켜낸 것은 제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러시아의 겨울이었다고 강조하며 '한랭 내성'을 가진 인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세계 최초로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의 유전'을 인간에게 적용해보기로 결심한다.
야망에 가득한 리센코 후작은 수많은 아이와 소년소녀를 영하 수십도의 물에 담금질하며, 추위에 강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추위를 이기면 결혼을 시킨후 갓 태어난 아이까지 얼음물에 담그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일삼는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증명해내기 위해 했던 그의 행동은 정말 잔인하고도 무모했다.
"내 이론의 핵심은 '노력의 알갱이'야. 동물이 외부 환경과 싸우면서 세포 내부에 기록되는 그 알갱이. 높은 곳에 매달린 나뭇잎을 따 먹기 위해 목을 빼려는 기린의 노력. 이런 육체적인 노력의 알갱이가 자식들에게 전달되는 거야."(107쪽)
리센코 후작의 잔인한 실험 속에도 베소와 케케는 사랑을 키워 간다. 마치 '여명의 눈동자'에 나오는 최재성과 채시라의 사랑같은 극한 상황속에도 꽃필 수밖에 없는 위로였다.
"늘 보고 싶었고, 다시 듣고 싶었던 목소리로 하얀 달이 말했다. 베소의 품에서 케케는 눈을 감고 생긋 웃었다."(165쪽)
"결혼이란 따뜻한 어둠이었다...... 베소가 입수를 끝내고 반쯤 언 채로 들어오면 케케는 품었던 체온의 절반을 떼어 주었다.결혼은 좁은 온기였다."(179쪽)
"섹스는 초콜릿이었다. 케케의 뇌리에 남아 있던 생선알과 초콜릿의 이미지가 코로 쏟아지면서 짐승의 냄새가 되었다. 케케가 베소의 냄새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 케케 뇌의 냄새였다. 오염된 부부는 추위와 충만에 겨워 서로의 냄새를 함껏 끌어안았다. 케케는 작은 설렘을 복용하면서 검음의 굴레를 버텨냈다.
베소와 케케의 사랑은 그들은 버티게 해주는 힘일뿐. 그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언덕에 올랐다(죽었다.). 리센코 후작은 점점 잔인해졌다. 정점에 도달한 '악' 그 자체였다.
"이에 아이들과 함께 입수하며 울고 웃던 후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때 착하고, 젊고, 패기 넘치던 천재 유전학자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홀로드나야가 세워진 지 20년이 되던 해, 후작이 획득한 악마성은 강철처럼 견고했다."(195쪽)
리센코 후작의 획득 형질의 유전 실험은 어쩌면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추위에 강한 이들이 아닌 악에 강한 이가 세상에 나왔으니.
획득 형질의 유전이라니. 처음에는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지만, 신생아 마저 얼음물에 집어 넣었을 때는 천재 유전학자가 아니라 잔인하고 어리석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케케와 나타샤, 베소를 둘러싼 이야기는 신비로운 한편 가슴 아팠다.
누가 누구를 대상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실험을 하고, 이용하는 것은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면, 그 보다 악한 일이 또 있을까.
과학적 이론과 역사적 사실을 버무려 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며 많은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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