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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있는가 반면, 너무 어렵게 꼬아놔서 그 속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평상시 내가 생각하는 "시"는 저자가 어려운 단어, 이쁜 단어만 골라 섞어 풍부하게 표현한 문장 그것을 이용해 문학인 척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정면을 향해 선뜻선뜻 걷는 자이기보다는 이면의 모서리를 따라 위태로이 걷는 자일지도 모른다."
이병률 저자는 시인이지만 산문집도 잘 쓴다. 시보다는 이 분의 산문집을 나는 좋아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 한 권을 읽는데 이주가 걸린 것 같다.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 집 강아지 또리 때문이다. 책 좀 읽을라하면 옆에서 놀아달라고 하도 그래서 예전처럼 마음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다. 그나마 자고 있을 때 조금씩 읽다보니 그리고 두 번 읽어서 이주 정도 걸린 것 같다.
한때 책을 버리지 못한 그는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책을 두고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는 동네 전철역 역사의 작은 공간에 책을 몰래 꽂고 온다고 한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을 하던 중 한 여학생이 술 사주시면 안되냐고 하길래 거절하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락을 했고, 마지막 사인을 하던 중 남학생 보고 저녁 같이 먹자고 권해 셋이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분위가 안좋았다는 것. 얘기를 해보니 여학생, 남학생이 헤어진 사이였다는 것 저자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시각장애인 안마사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십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시신경이 마비되어 시력을 잃었으며, 그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겨울에 내리는 눈과 많이 사랑했던 여자라는 것
선배 시인이 꽤 오랜 기간 시를 쓰고 있는데 시가 잘 되질 않는다 해서 '그럼 마당 있는 집에 사시니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환경을 바꿔 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는 것
흑산도 섬에서 지내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소년을 만났고 소년와 섬에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고, 그 후 섬을 떠났어도 소년이 서울로 올라 온 적 있어 맛있는 것도 사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긴 여행을 떠난 후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가 우연히 그 소년을 알고 있다는 사람을 통해 소년을 다시 만났지만 그 소년은 어른이 되어 있었고, 평탄하지 않은 삶의 고통스런 흔적만 보였다는 것
충주 땅 달천강가 어느 민박집 젊은 주인이 자신에게는 쌍둥이 형이 하나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형은 자기와는 달리 뭐든 다 잘하는 인간이었고, 형하고 자신하고 사람들이 비교해서 형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랬다는 것.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밤 동네 형들과 강가로 멱을 감으러 나갔는데 물이 불어난 것을 인지 못해 형들이 물살에 휩쓸리게 되어 자신이 뛰어 들려고 했지만 모두 죽겠다 싶어 가느다란 버드 나무 가지 몇 개를 꺽어다 힘껏 던진 후 사력을 다해 형들을 잡아 당겼지만, 다른 형들은 다 나왔는데 자신의 쌍둥이 형만이 계속 안나와 다시 나뭇 가지를 형한테 던지며 잡으라고 했다는 것. 근데 그 순간 형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생각에 그만 형이 붙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버렸다는 것등
여행하면서 만나 사람이야기, 자신의 이야기,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 등 가볍게 표현 되어 선연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책 속에 잘 녹아들 수 있었다. 또한, 읽으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찾아왔고, 내가 잊고 있었던 문장이 찾아왔고, 내가 잊고 있었던 감정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잊고 있었던 향기도 찾아와서 찬찬히 읽어야겠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기도 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 작은 울림이 들어가 있어 다시 한 번 읽고 싶게 만든 책이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그 무엇이 과연 있는가 하는 나직한 물음이 가슴께에 밀려왔다. 온 마음으로 지키고픈 무엇이, 몇몇 날을 길바닥에 누워서라도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이냐고 울고불고 대들 그 무엇이 가슴 한쪽에 맺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걸 지켜내는 데 까짓 두려울 일은 그 무엇일 당장 알고만 싶어졌던 것이다."
"머릿속에선 용암이 튀는데 심장은 차마 그러라 명령할 수는 없었던 것. 그리하여 그 순간에 먹은 마음이 평생 죄로 남아 있는 것.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내부에는 그토록 무섭고도 지랄맞은 꽃이 자라고 있는가. 빛깔은 날카롭고 향은 진하디진한 그 꽃의 씨앗은 어디로 부터 스며들었단 말인가. "
"사람은 접으면 접혀지고 자르면 잘라지지만, 마음은 접어도 접히지 않고 잘라도 잘라지지 않는 게 무섭다."
"잘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따면 작은 수첩 하나를 구해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채워나가면 됩니다. 수첩에는 <작고 허름한 가게 장부>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