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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못생긴 여자]는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첫 소설이며, 데뷔작으로 언론의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 판권까지 확보한 소설이라고 한다.
"지난 몇 년간 '차별'이라는 말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민족, 사회, 문화, 외모, 취향..
감히 누가 어느 한쪽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못생겼다. 진짜로 못생겼다. 그렇다고 불구는 아니어서 남들이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고 내몸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다 붙어 있다. 하지만 영락없이 어딘가는 기준치보다 조금 더 짧거나 길다. 낡은 인형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쉼표 모양으로 구부러진 커다란 엄지발가락 그리고 미소를 지으려 할 때마다 왼쪽으로 일그러지며 슬픈 냉소로 변하는 얇은 입술 또한 냄새도 풍긴다. 온갖 종류의 냄새를 다 안고 다닌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내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아빠와 엄마는 상당히 미남, 미인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본 이후로 한 번도 내게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 아빠는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나를 자신의 연구실로 데려가 몇 달 동안 숙녀용 탈의실에서 지내게 했다. 유치원 또한 다니지 못 하게 했다. 집 담벼락을 넘은 적이 없었다. 단, 예외가 있었다. 고모와 함께 늦은 저녁에는 나갈 수 있었다. 어둠컴컴하니깐... 나는 고모를 좋아한다. 예쁘기도 하지만, 웃는 모습이 좋다. 고모의 직업은 피아니스트이다. 어느 날, 고모하고 손으로 수화식 대화를 나누는데 고모가 갑자기 나의 손을 잡더니 "손은 이렇게 이쁜데" 말을 하면서 나에게 아무렇게 피아노 건반을 쳐보라고 했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내 모습을 본 고모는 나에게 "나중에 굉장한 피아니스트가 될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 이후 음악이 내 인생을 사로 잡아주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 한다는 새로운 사실은 그동안 느껴 본 적 없는 감정들로 나의 일상을 채워주었다. 나를 움켜쥐고 있었던 일종의 공허함, 그 막막하기만 했던 기다림의 시간들이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했다. 경이로운 눈으로 나는 내 손가락이 음악을 창조해내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고모는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나를 피아노 시험에 치르게 해주고 콘서바토리 학교에 입학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먼저 말을 걸어준 루칠라와 친구가 되었다. 루칠라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고, 많이 먹기도 했고, 그리고 그것만큼 궁금증도 많은 아이였다. 루칠라는 고작해야 우리 집 담벼락을 넘어서지 못하는 나에게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알베르티나 선생님은 내가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부하는 학부모의 반대로 부터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강물에 뛰어 들어 자살해 버렸다. 엄마는 나에게 말을 걸어 준적도 없고, 나에게 눈길 조차 주지도 않았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들어가 침묵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고모는 아예 우리가 사는 집으로 들어왔고, 아빠는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준 루칠라가 갑자기 떠나버렸다. 그와 더불어 내 곁에 새로운 데 릴리스 선생님이 나타나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덕분에 고모의 지나친 낭만주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데 릴리스 선생님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할머니로 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엄마가 쓴 일기장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다소 충격적인 글이 담겨져 있었다. 고모에 대한, 아빠에 대한, 그리고 나의 대한... 생각이...
"아마도 우리 선하신 하느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시지 않는 이상 네가 콘서트 연주자가 될 리도 없고 유감스러운 얘기지만 선생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 이유는 온 세상 사람들이 외모와 순간의 쾌락만을 추앙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공공연한 품위를 유지한답시고 진창에서 구역질나도록 놀아대는 것 아니냐고."
영화 판권까지 확보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글쎄.. 갸우뚱했다. 사실 소설로서는 괜찮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관객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하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소설에서 나는 그 무엇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느끼지는 못했지만 잘 읽혔다. 감동이나 반전 그런 거 없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외모를 인정하고 의사 도움을 받고 그 안에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얘기 보다 괜찮아서 불편한 거리낌없이 편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 갈 수 있어 좋았다. 호평 중에 "희망이라는 긍정성을 잃지 않았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희망" 이라는 단어는 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니깐...
"오른쪽 눈하고, 얼굴 털 좀 손봤어. 하지만 못생긴 건 어쩔 수 없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좀 더 뛰어날 수 있으면, 나를 잊을 수 있으면, 내 외모를 잊고 살 수 있으면 말이야.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아.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해 질 때까지 여기 갇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야.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지. 나름 잘 지내. 그냥 그게 내 인생 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