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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지인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이 작가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책 페이지를 펼쳤을 때부터 알아봤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평온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마무리되는 소설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동물과 자연 그리고 차와 커피 속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도서관 설계 이 세 가지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었다. 특히 별장 풍경을 이쁘게 표현해서 읽으면서 나도 그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서 신간이 나왔을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쓸쓸하거든. 마음은 편하지만."
이혼을 둘러싼 분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아들이 유학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들에게 이혼을 알릴 때도 먼저 메일을 보내고 그다음 날 전화를 거는 수순을 밟았다. 아들은 담담했다. 감상적인 말을 하지도, 어느 쪽 편을 들려 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합의한 두 달 내로 새 집을 찾아야 했다. 아내가 아닌 오카다 자신이 집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카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었는데, 아내 몰래 5년 동안 가나를 사귀었지만 차였고, 타이밍에 맞춰 아내가 이혼하자고 한 것이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카다는 나가기로 했다. 새로 시작할 혼자만의 생활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면서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은 곳이 좋겠다. 그런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물건을 찾기 힘든데, 다행히 알고 지낸 지인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 이노카시라 공원에 면해 있는 오십 년 더 된 이층 목조 주택이었다. 주택 주인인 소노다 씨는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지만 주택을 팔 생각이 없다고 했다. 월세로 주는 것인데, 조건이 있었다. 집의 형태만 보존된다면 인테리어를 해도 된다는 것, 월세 이년 분을 미리 낼 것, 고양이 후미 밥 챙겨줄 것등 쉬운 조건들이었다. 대신 언제든 소노다 자신이 일본으로 오게 되면 나가줘야 한다는 조건도 들어있었다. 단, 집 공사 들어간 비용에 대해서는 반을 준다는 한해서 계약을 했다. 드디어 오카다는 이사를 했다.
"이 오래된 단독주택이 겨우 세상과 연결됐다."
자주 다니던 국숫집에서 옛 애인 가나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이후 가나에게서 메일이 왔고, 가나가 자신의 집에서 걸어서 십 분도 안 걸리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나는 아버지하고 같이 살고 있었다. 생활비와 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반반씩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가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았다. 아버지와 딸이라기보다는 셰어 하우스의 주민 같은, 어딘지 모르게 담백한 관계였다.
"난 유산은 안 남겨줄 거다, 땅이랑 집 판 돈도 다 써버릴 거다, 넌 네가 번 돈으로 알아서 살아라, 그러지 뭐야" "별로 사치하는 것도 아니면서 쉬세 좋은 소리는. 그래서 내가 그거 좋은데요, 신나게 쓰세요,라고 했거든. 남으면 오빠가 용돈으로 쓸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그 녀석한테는 빚을 남겨줄 거다, 라나..."
서로 집을 오가고 도와주고 하는 사이였지만,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불안전한 상태로 계속 지냈다.
오카다는 자신에게 새로운 만남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귀찮을 듯싶었다. 타인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갈 자신도 별로 없다. 가족이 아니라 좋은 집을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을 했다.
"오래된 걸 이것저것 손보는 게 즐겁거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원도 업자를 부르면 되살아나고, 다다미도 이불도 손질하면 새것이 되고, 장지도 덧문도 마찬가지야. 부엌 공사도 그랬어. 어둡지, 간장 냄새나지, 전체적으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물론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싹 고쳤더니 몰라보게 좋아졌어. 수명이 다해가던 게 되살아나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쁜 거야."
-그만 우아하다는 말 듣고 싶다. -
이혼하면서 오래된 집을 구하고, 자신의 집과 가까운 거리에 옛 애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시로 가나에게 불려나가고, 청소도. 음식도 그 어느 것도 눈치 안 보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약간의 쓸쓸함이 그에게는 잠깐이나마 우아함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연. 집. 아들. 아내. 직장. 애인 등 이런 관계들이 조화로운 듯하면서도 불협화음이 많다. 일본은 불륜에 관한 얘기가 많은데... 그 부분을 완화시켜버린다. 오카다의 일상은 모두 잔잔하다. 그럼에도 빠져버리는 것은 그 속에 리듬 같은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편안한 느낌을 프레임에 담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오래된 집의 구성, 남겨진 물건과 냄새, 벌레 이런 것들이 사라지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남아있거나 하는 그 과정이 살짝 자극을 해줘서 좋았다.
이분은 건축과 자연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분이신 것 같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은 자연이라는 보석을 숨겨놨다면,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책은 리듬의 팁을 숨겨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