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살아있는 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흔적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일기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내가 요즘 부쩍 만날 때마다 디카로 사진도 많이 찍고, 다이어리에 짤막하게나마 만남에서 나눈 주된 얘기들을 남긴다고 했더니, 친구는 참 팔자 좋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그리곤 나 나름대로의 지금 쓰는 일기와 사진이 내포할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물론 100%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작은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크로써는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매일매일 다이어리에 지난 일상 중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적고, 여기에 오늘은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야구관전을 했다면 티켓과 사진을 붙이고, 그날의 살아있는 느낌까지 덧붙인다면 그날의 일들은 지나갔음에도 나의 다이어리 속에서 추억이란 옷으로 갈아입고서 다시금 나만의 역사로 재탄생된다. 내 친구처럼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그런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라며 개인의 기록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하찮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적인 역사는 인체의 대동맥과 같은 커다란 역사의 흐름에서 마치 모세혈관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세혈관이 없이 대동맥 또한 원활하게 흐름을 이어갈 수 없는 법, 그래서 개인의 역사의 의미와 가치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생활상이며, 문화의 단면을 돌아볼 수 있는 기준으로써 작지만 알찬 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혁명이란 이름을 내걸고 이념과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 선행되어야 이어갈 수 있는 고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체 게바라가 꿈꾸는 혁명의 고행 끝에서 자신이 꿈꾸며,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는 단지 대중들의 자유와 행복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대중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혁명의지는 일기장과 작은 노트에 마치 혁명가처럼 마음으로 되뇌이며 적어 내려간 시의 한 구절 한 구절 속에 깃들어 있었는데, 그 생각의 행적을 따라가며 진정한 혁명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봤다.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은 체 게바라가 쿠바혁명 성공의 달콤함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또 다른 혁명을 이끌다 미완의 세상과 이별을 고하기 근 3년 동안 혁명의 다짐처럼 때로는 고행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의 씨앗에 대한 기록을 그의 지나온 행적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발자취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혁명의 길목 길목에서까지 마음에 담아가며 암송했다던 세사르 바예호, 파블로 네루다, 니콜라스 기옌 그리고 레온 펠리뻬의 시 69편들은 체 게바라의 필사를 통해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듯 느껴진다. 특히 필자는 중남미시인답게 시 한편 한편에 담긴 의미를 연대적인 해석들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시속에 함축된 체 게바라의 생각의 행적들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어주는 시간의 연속성을 부여해 줌으로써 시공을 초월해 그와 함께 시를 읽으며, 함께 고민하는 듯 한 환상에 빠뜨린다.

체 게바라의 혁명적인 삶의 이야기와 그가 아끼던 시 구절에 담겨 있는 민중들의 자유와 행복을 향한 항거의식들이 40년이 지나 지구상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온전한 뿌리를 내렸다는 오늘날에 다시금 대중들의 마음을 자극하며, 다른 사회주의 이념과는 다른 보다 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비록 세상은 자본주의와 뿌리를 같이한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보기에는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이 열린 듯 보이지만, 보다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예전의 없고 가난한 시절의 고통에 버금가는 빈부차이로 인한 고충과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고통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더욱이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주체와 인권을 둘러싼 여러 갈등들은 40여년 전에 멈춰진 체 게바라가 부르짖던 자유의 외침소리가 울리고 멈춰진 혁명의 시계를 다시금 돌아가게 만들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마치 전설적인 혁명가가 남긴 홀쭉한 배낭 안에 담겨진 시를 통해 그가 꿈꾼 이상향의 세상을 위한 고뇌를 되짚어보고, 그가 자식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전한 이 한마디를 가슴에 담아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다.

“아빠는 너희들이 이 세상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