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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부모의 오답백과
앨리사 쿼트 지음, 박지웅 외 옮김 / 알마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덧 불혹을 앞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나 역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으로부터 확실성이 없는 가능성에 대한 능력을 높이 평가 받았던 탓에 쉽게 자신의 특별함을 세상의 보편함속에 내 던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바로 마치 특별한 자아의식이 오래 된 중독처럼 내면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중독에는 나와 가족들과 친구들과 모두가 빠져 있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특별함이란 중독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햇볕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노출 시켰을 때 사회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가치과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요즘의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에 비해 외국어를 익히고, 셈을 하는 능력과 더불어 예체능적인 능력에 이르기까지 보다 다양한 능력계발과 적성을 키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도 다양한 능력 중 어떤 한 분야에서 독특한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일찍이 발견하여 키워가고 있다면 다른 능력의 발견을 위한 기울이는 노력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아이들 다양성의 추구를 넘어 지나치게 많은 능력을 강요받고 있는 탓에 자신의 순수한 능력이 때로는 퇴색될 때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다. 가령 아이는 문학적인 소질이 있어도 영어 수학 등의 보편화 된 측정과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탓에 책을 맘껏 읽을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찾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자신의 소질은 한동안 묻혀버린 채 살아가게 되고, 다행히 대학 등의 전공 선택을 통해서 직업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평생 자신의 소질이나 능력은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게 되는 셈이다.
그로인한 공허함과 좌절감이 바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들도 그리고 자신도 크게 문제 삼지 않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그것은 결국 삶에 큰 의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지금 자신 처한 삶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심한 좌절과 미련은 오래토록 인생의 그림자로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재부모의 오답백과>를 통해 영재교육의 허와 실들을 보면서, 교육의 어려움을 또 다시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이 어느 덧 경제적인 상품가치로까지 빗대어 설명되는 요즘, 아이와 부모와 학교들은 성적을 위한 그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전쟁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영재교육열이다. 과학적인 효과가 비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효과”로 포장된 비싼 영재교재와 교구들은 부모들의 욕망을 자극해 봇물을 이루고, 어느 덧 2세 교육은 “문화자본” 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져 부의 되물림은 풍족한 능력개발 열기로 이어진다.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상위계층의 위화감이 더해지면서 발생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파급효과가 전반적인 사회교육흐름에까지 그 잘못된 파도지만 몸을 싣지 못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받는 멸시와 친구들로부터 받는 따돌림까지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일찌감치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순수함에서 비롯되어야 할 인생의 가치나 목표마저도 흐리 멍텅하게 만들어 버린다.
무엇보다 지금의 부모들이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에서 지적하는 여러 가지 비효율적이며, 비감성적인 교육 열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아이들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나 과시용으로 키우지 말고,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행복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랑의 지혜를 맘속에 담을 수 있도록 아이들 스스로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자유스러운 공간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러한 자유로운 공간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스스로 깨닫게끔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 모두를 각자 독특함을 갖고도 순수하며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영재로 키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