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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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잠시 눈을 감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단지 안내방송만으로 이정표 없이도 갈 수 있는 역을 그려봤다. 물론 환승을 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역에서는 출구만 몇 번 들락날락하면 가려는 지상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승을 해서 이동해야하는 사정이면 크게 달라진다.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사방, 위아래로 연결된 계단과 통로를 따라서 단번에 가려는 지상의 입구에 도달하기란 매번 가던 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듯 이정표는 우리의 나아갈 선택의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인 셈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희망이 가득 찬 꿈과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매일매일 좀 더 가까운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정표가 늘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정표가 제시한 길이라도 때론 우리는 남들보다 멀게 돌아오는 길에 들어설 때도 있다. 이럴 때 느끼는 것이 실망과 좌절이다.

지난 과거의 이정표로는 돌아갈 수 없고 오늘의 이정표를 따라서 미래의 길을 찾아가야하는데 그 길을 한 번 잘못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 길을 무척 힘겹게 느끼며, 마치 이 길은 따라가도 희망이 없는 길처럼 느끼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 척척 희망 가득한 미래에 이르는 빠른 길로 자신을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그동안 자신을 인생의 목표와 희망으로 이끌어주었던 수많은 이정표들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만난 수많은 이정표에는 많은 분들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누구보다 부모님의 사랑은 인생에 있어 큰 이정표가 되며, 다음으로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책들도 지난 삶에 있어 자신을 미래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꿈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정표는 그 꿈으로 자신의 모든 정열은 향한다. 하지만 꿈이 없다면 그 삶 앞에 수많은 이정표들은 끝없는 유혹의 소용돌이처럼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유혹은 곧 금전적인 욕망으로 자신을 사로잡히고 말며, 그때부터는 돈이 희망이 된다.

그동안 나의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에 마치 단 한 번의 실수만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수없이 남 탓도 해보고 내 탓을 해봤다. 하지만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만 지체될 뿐이었다. 그 남 탓과 내 탓을 하는 내 마음속에는 집착이 남아 있던 것이다. 책 속의 “꿈이 있는 사람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가난이나 고통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아. 그들에게 삶은 자유와 진리를 찾는 여행이지.” (p.215) 이 두 구절은 마치 그동안 내가 방황한 인생에서 놓쳐버린 아니 간과했던 삶의 진리로 느껴졌다.

경기침체와 불황, 여기에 수많은 불신으로 인해 멈춰선 지 오래된 꿈과 희망의 발전소, <지하철 이정표 도난사건>으로 그려낸 두 주인공 철수와 부장판사의 세상체험은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유혹에 길들여져 저버릴 수 없었던 불필요한 집착을 벗어던지고,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며 두려워하지 않을 미래로 안내할 굳은 이정표를 마음속에 그려준다. 그리고 또 이 소설속의 대화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빠져 있다. 이는 아마도 저자가 소설 안이든 세상 속에서든 나누는 모든 이들과의 대화를 마음으로 질문하고 마음으로 느꼈을 때 진정한 인생과 희망의 이정표를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앞으로 지하철역 이정표를 지나칠 때면 문득 문득 나의 미래로 뻗은 길의 이정표를 그려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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