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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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p.378~379)

책 말미에 저자는 ‘니묄러의 인용문’을 위와 같이 바꾸어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시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표현한다. 아마도 위의 구절 하나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대한민국의 정권을 잡고 1년 동안 국민들에게 보여준 민주주의의 실상이 아니었을까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현 이명박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큰 탓인지, 그동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갖고 있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감은 자취를 잃어 가고, 불신과 반감은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출범과 함께 과거 IMF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전 세계적인 경제공황위기라는 외환 요소가 신생 정부의 자리 잡음을 힘겹게 했던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역시나 국민의 기대어린 눈빛에 희망이라는 힘을 불어넣어 주기엔 역부족인 듯 느껴진다.

더욱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주권이 과연 나를 포함한 국민에게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저자는 ‘후불제 민주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제헌헌법부터 국민들에게 미리 보장한 자유와 평등, 행복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용을 지난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민주화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 지불했으며, 지금보다 더 안정적이며 평화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또 지불해야하기에 ‘후불제 민주주의’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확립에 어떠한 비용을 지불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성인이 되어서 투표를 통해서 의사를 전달한 것 외에 특별히 지불한 것이 없으며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대한민국의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키워가고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것은 그동안 지불해서 완성해 온 민주주의가 흐릿한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불제 민주주의>을 한편으로는 경계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이유는 저자가 현재는 정치에서 벗어나 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정권의 장관직까지 지내며 실세에 가담했기에 현 정권에 대한 배타심은 남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내용 중에 내내 따라다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만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동안 정치에 대한 식견의 부족으로 말할 수 없었던 현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질시와 우려감을 대신 역설하는 듯해 조금은 후련함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있다. 우리가 자신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과 같은 입시교육에 앞서, 지역적 갈등과 진보와 보수 같은 사상적인 대립을 떠나 인간존엄과 존중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민주주의를 앞으로도 지켜갈 가장 기본법인 헌법에 명시된 자유와 평등과 행복에 대한 참의미를 가르치는 또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 가져야 할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헌법의 참의미를 알고 지켜나갈 때 그 하위 법과 법률 역시도 자연스럽게 지켜질 것이고, 나중엔 후불제가 아닌 ‘선불제 민주주의의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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