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엑스페르투스 - 실험, 인류의 미래를 열다
이한음 지음 / 효형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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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일, 연중무휴, 거기에 편의점도 아닌데 24시간 내내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공간이 있으니 그곳은 다름 아닌 실험실이다. 인간의 실험을 통한 발명과 발견은 어쩌면 기상천외한 자연과 우주의 신비로운 진리에 한걸음씩 내딛는 과정이다. 그러한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고, 앞으로도 보다 문화를 향상시켜 나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험은 어떠한 개념이나 가설을 사실로 도출해내는 과정이다. 200년 전 찰스 다윈은 평생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인류의 창조론을 뒤엎는 진화론을 내놓게 된다. 무엇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종교계였다. 따라서 진화론을 비난하며 마치 큰 죄를 짓는 냥 다윈의 연구성과를 못 마땅해했다. 20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떠한가? 진화론에 대한 연구는 다윈에 의해 끝난 것이 아니며, 그 후로도 인간은 진화했으며, 또 다른 진화의 흔적들을 찾아서 실험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실험은 단지 인간의 지난 진화의 흔적뿐만 아니라 미래의 진화한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도 한다.

 책<호모 엑스페르투스>는 다윈의 진화론 이후에 계속된 또 다른 인간진화 흔적의 발견을 통한 인간의 비밀을 하나씩 캐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사회과학 실험이다. 실험의 범위는 이제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발전이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의 혁식과 발전의 거듭으로만 인간들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며, 철저한 경제적인 논리 또한 실험의 결과물에 따라오는 바, 수많은 신기술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실험과 분석과정을 거친 소비자의 심리학과도 접목시켜야 소비자들을 향유케 함으로써 경제성까지 갖추게 된다. 더욱이 책속의 1, 2장에서는 무엇보다 생노병사에 얽힌 신비한 인체의 비밀과 종의 다양성 대한 연구, 그리고 원시지구에서 발전해온 지구의 현재의 지구의 모습의 수수께끼를 풀어 다른 행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의 각종 실험을 통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조명해보게 한다. 그리고 3장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서다’ 에서는 인간의 실험의 결과는 이제 자연을 모방한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창조의 길에 다다랐음을 복제기술과 합성생물학의 발전상을 통해서 예고하고 있다.

  물질의 창조는 여전히 신의 영역이어야 하며,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태초의 자연과 더불어 태동한 인간이 자연을 창조할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결코 인간에게도 행복한 일만을 가져다 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자연과 같이 대가없이 주고받는 순수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인간이 보여주는 도덕성은 無에서 無로 돌아가라는 자연의 이치와는 크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베일에 싸인 자연의 이치와 진리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이 무섭게도 느껴진다.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와 피소유자 사이에서 생기는 불균형은 곧 그것에 지배하고 지배되는 자로 나뉘게 될 거라는 것 또한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는 인류의 실험을 통한 숭고한 노력들은 존경받고 박수 받아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한 숭고한 노력의 결실에 우리는 이기심보다는 애초에 가졌던 순수한 희생으로서의 사랑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실험의 결과는 다름 아닌 인간의 편의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그 결과물의 이용에 있어서도 보편적인 혜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한 애초의 순수한 희생정신을 통한 실험의 도전정신이야말로 앞으로 또 다른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가치로 존재하게 되고, 후대에 더욱 발전해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인류의 실험을 통해서 이룩한 수많은 과학적 기술과 이치의 올바른 씀임에 있어 도덕성의 불가결성을 역설하고 했지만, 그보다 작게 이러한 실험을 통한 도전정신은 우리에게 이것을 당부하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좋은 것만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무조건 피하기 보다는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실험하듯 체험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때, 보다 인생의 보편적인 가치와 원만한 인간관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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