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문 - 생명의 근원에 이르는 구도자의 인생산책
최민자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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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지문을 갖은 사람이 없듯 우리는 비슷한 듯 제각각의 삶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반복되는 일상 중에 자신의 삶의 최종 도달점은 어디이고, 이 땅에 이 시대에 태어나서 해야 할 천명적인 사명은 혹시 무엇인가? 에 대한 미궁의 자문 속에 빠질 때가 있다. 분명 나에게도 어떠한 절대자가 의도하는 삶의 지문이 있을 텐데 과연 나는 그 삶의 지문을 따라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책<삶의 지문>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정답은 아닐 지라도 정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짧은 이정표와 더불어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시야를 갖게 만들어 준다. 결국 세상의 만물을 바라보는 생각과 시야의 넓이가 커질수록 정답에 근접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삶의 지문>은 저자 최민자 교수의 구도적인 삶의 길의 발자취를 시간의 흐름순서에 따라서 크게 3부로 작게 12장으로 나누어 그려져 있다. 한 장 한 장 그 발자취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때로는 강의실에서 12가지의 다른 과목의 강의를 듣는 듯하다. 저자의 구도과정중의 깨달음과 더불어 책 중에 담긴 삶의 진리를 향한 정진의 열매와 같은 선지자들의 고매한 가르침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속된 마음이 치유되는 듯하다.
제1부 연꽃잎은 물에 젖지 않는다. 에서는 세상의 거울 속에 비추어진 삶에 급급하지 않고, 열린 마음을 담기 위한 삶의 진리, 세상의 진리를 찾아 때로는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때로는 스스로 처연한 동굴수양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었던 깨달음의 긴 발자취를 담고 있다.

천지는 가장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 없다.
사계는 명백한 법을 가지고 있지만 따지지 않는다.
만물은 완전한 질서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p.69 장자-<지북유>편)

이렇듯 말이 없는 천지와 사계를 완전한 질서 원리를 담고 있는 만물을 향한 정진의 과정들을 보면 마치 유별난 사람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정진의 열매들을 드러내 보였을 때는 지금의 세상과 자신에 대한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여해스승과의 선문답과 도가의 큰 성인 왕진인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남긴 깨달음 천천히 마음에 새기듯 읽어 내려가면 어느새 가슴속에 문이 조금씩 열리는 듯한 느낌이다.

“지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같이 스스로의 처신을 낮추는 겸허함이 있고, 스스로의 형상을 고집하지 않는 물과 같이 상대를 거스르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으며, 약함으로 나가기 때문에 도리어 강한 힘을 내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생활태도는 물과 같은 것.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면서도 결코 상대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p.139)

왕진인을 찾아 나선 발걸음 중에 만난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느낀 이러한 감흥들을 접하면서 결국 자연의 만물 속에 진정한 삶의 진리가 살아 숨 쉬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가 흐르는 생명체’ 라고 피력한 역사에 대한 고찰, 지난 나라의 수난으로 왜곡되고 버려지 유구한 우리나라의 상고사에 관한 부분을 접하면서 왜곡된 역사를 진실이라 믿으며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는 것은 ‘지금의 우리는 선조들의 거룩하고 의로운 목숨과 희생이 담긴 불멸의 정신을 무시하며 살아 왔구나’ 라는 회한을 느끼게 한다.
제2부 대륙에서 대륙으로 에서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의 현 상황 속에서 자칫 우리의 상고사가 묻혀버린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어가는 역사의 사실들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중의 하나인 장보고 기념탑의 건립에 담긴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전한다. 이는 분명 시작일 뿐이다. 고조선과 발해, 고구려에 걸친 대륙안에서 펼쳐놓은 우리 선조들의 불멸의 유산들은 분명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 최민자 교수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 민간인신분으로 세계의 중심축의 이동과 다가올 정신문명시대의 도래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는 ‘황금의 삼각주’ 라 불리는 중국, 북한, 러시아 3국의 접경인 두만강 하구 일대에 가칭 ‘유엔세계평화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이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과정, 이러한 인류를 통합할 수 있는 상징을 통해서 국가, 민족, 인종, 계급, 종교 간의 모든 파열음을 하나로 묶어 태어날 생명장(生命場) 부활의 의미를 전한다.
제3부 지혜의 길 행위의 길 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비록 선지자들과 같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이치에 좀 더 다가가고, 마음수양을 통해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안식의 길을 보여 준다.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개인의 자아발견과 성찰에서 제대로 된 국가관의 확립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물질계와 의식계의 상호소통을 인식하는 방법 등 진정한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준다. 보이는 물형계(物形界)의 성과도 영적 진화 과정의 부산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의 동기와 의도의 순수성과 일관성, 성실성에 기인한다는 것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 더불어 영적확장의 결혼에 대한 의미등도 우주의 섭리를 통해 해석해 놓고 있다.

<삶의 지문>에서 어찌 생각하면 쉽게 보고 느낄 수 없는 사상계의 원리들을 접하다보니 왠지 내 삶을 세상과 동떨어진 삶으로 고착시켜주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갖게 한다. 하지만 저자 역시 오랜 구도와 수행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일진데, 책 한권으로 그 만고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깨달음을 전함으로 받는 마음이 미동이 후에 나비효과처럼 커다란 삶의 진리에 대한 파도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자아발견의 시간도 중요했지만, <삶의 지문>을 통해서 전해들은 우리 선조들의 묻혀진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갖게 되는 자손된 자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은 앞으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더 넓혀주는 듯 했다.
늘 부족하다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진리를 향한 작은 미동을 더해 준 글이 있어 나누고 싶다.

“가섭아, 마음은 바람과 같아서 획 지나가 붙잡을 수가 없다.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아니한다.
마음은 등불의 불꽃과 같아서 많은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
마음은 번갯불가 같아서 났다가는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 여섯 가지 욕망에 한없이 얽매인다.
마음은 그림 그리는 사람과 같아서 곧잘 여러 가지 행동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원수의 집과 같아서 온갖 괴로움과 번뇌를 준다.
마음은 미친 코끼리와 같아서 흙과 모래를 짓밟듯이 일체의 좋은 갚음을 받을 행동을 파괴해 버린다.
마음은 파리와 같아서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생각하고 집착한다.
마음은 악한 도둑과 같아서 온갖 착한 행동을 약탈한다.
마음이 항상 빛을 탐내는 것은 마치 여름밤에 부나비가 불에 달려드는 것과 같다.
마음이 항상 소리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군인이 승리의 북소리를 즐기는 것과 같다.
마음이 항상 냄새를 탐내 집착하는 것은 마치 돼지가 더러운 데 누워 있기를 즐겨함과 같다.
마음이 항상 맛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와 여인이 맛있는 음식 먹기를 탐내는 것과 같다.
마음이 항상 접촉하기를 탐내는 것은 마치 파리가 기름에 달려드는 것과 같다.
가섭아, 마음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움이 위에 말한 바와 같으니라.”
(p. 360~361) 

‘참나’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먼저 이런 속된 마음의 헤아림부터 시작하여,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 깨닫게 된다.” 라는 여해 스승님의 말씀처럼 부단한 헌신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공부해 나아갈 때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의 지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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