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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평점 :
최근 즐겨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현실과 큰 괴리감이 느껴지게도 친절은 기본에 인정스럽고 눈물이 많으며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이미지로 그려졌다. 이 책을 통해 또다시 그런 의사를 만나게 됐다.
저자 레이첼 클라크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었다. 그녀는 시골 마을에서 지역 보건의 일을 하면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테러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을 뻔한 엄청난 일을 겪기도 했다. 생사가 오갔던 찰나에 목숨과 맞바꾼 일종의 사명이라 느꼈을까. 저널리스트에서 의사로의 직업 전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책을 구성하는 두 개의 파트 중 첫 번째 파트에서는 레이첼이 의사가 되어 겪은 에피소드와 거기에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들을 다룬다. 앞서 드라마에서 연출하는 의사의 이미지가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듯이 레이첼이 의사가 되어 직접 경험한 의사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환자를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감정이 없는 듯한 의료계의 특성에 실망감과 혼란을 느낀 레이첼은 완화 의료를 선택했다. 완화 의료 보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이 더 익숙한데, 어쨌든 죽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가까운 위치이기 때문에 완화 의료를 행하는 의사든 의료를 받는 환자든 주변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하는(p.230)’ 호스피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거기에는 죽음 앞에 선 레이첼의 아버지도 포함이 되었다. 의학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레이첼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아버지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들을 마주한 것이다. 아무리 환자들의 죽음을 많이 접한 노련한 의사라 할지라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레이첼이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바는 단순하게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한 감정적인 호소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돌본 수많은 환자들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된 진지한 삶의 성찰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이면서 동시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들이 의미 있게 인생의 끝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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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6
아버지는 의학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어렸을 땐 아버지를 영웅으로 받들며 빠져들었던 온갖 이야기가 이젠 부녀지간의 친밀감을 상징하는,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하고 소중한 형태로 바뀌었다.
p.214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치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