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푸른사상 소설선 72
이수현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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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은 상처가 아니라, 살아냈다는 증거야."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저는 이 책이 제 마음을 흔들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이수현 작가님의 장편소설 『비늘』은 표지의 짙은 보랏빛처럼,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삶의 어두운 이면,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그 후유증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강도희는 이혼 전문 변호사입니다. 차갑고 건조한 법정에서 양육비 미지급이라는 현실적인 고통과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의 깊은 그늘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그녀가 의뢰인들의 고통을 끌어안을수록, 숨겨왔던 자신의 상처—아버지로 인한 가정 폭력과 성적 학대의 기억—가 덧없이 되살아납니다.

폭력은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치유되지 못한 채 한 인간의 내면을 잠식합니다. 도희를 따라가며 저는 가정 내 폭력이 얼마나 크나큰 범죄인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대물림될 수 있다는 서늘한 현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소설의 전개 방식은 이 무거운 주제를 지루할 틈 없이 이끌어갑니다. 현실의 법정 서사 위에 신화 속 이야기 형식, 그리고 환상적인 장치가 교차하며 독자의 몰입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특히, 인간의 잔혹함과 이중성을 대조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인면어'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이 물고기 앞에서, 도희는 깊은 고독과 연민을 느낍니다. 인간의 고통과 생존 본능을 압축한 듯한 이 인면어의 비늘에 손끝이 닿는 순간, 당신도 아마 도희처럼 오랫동안 감춰왔던 감정의 통로가 찌릿하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늘은 이 소설에서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은 시간의 표면이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단한 껍질이자, 동시에 타인의 아픔을 감각하는 예민한 감각기관입니다. 도희는 의뢰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결국 자신의 '비늘'을 스스로 벗겨내고 회복하는 지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당신의 비늘은 어떤 모양인가요?"라고 따뜻하게 질문합니다. 완벽하지 않고,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누구도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위로를 건넵니다.

비늘은 곧 살아냄의 흔적입니다. 상처가 반사하는 빛을 통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믿고 싶게 만드는, 진심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본 도서는 서평 모집으로 이수현작가님으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독자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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