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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3월
평점 :
이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사사기(AI판사)』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적 도시 국가 ‘뉴소울시티’를 배경으로, 범죄율 제로를 자랑하는 완벽한 사회를 그린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인간 판사나 운동경기 심판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인공지능 판사와 심판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듯하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오심은 오심일 뿐"이라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판결에 인맥, 학연, 혈연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뉴소울시티의 중심에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설계된 AI 판사 ‘저스티스-44’가 있다. 인간의 감정이나 편견 없이 오로지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만 판결하는 AI 판사는 처음에는 이상적인 사법 체계처럼 보인다.
특히 소설의 초반부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야구 경기에서 벌어지는 석연찮은 판정이다. 체어맨이라 불리는 AI 심판이 내린 아웃 판정을 두고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하지만, 곧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며칠 전 발목을 다친 선수가 걷는 자세가 불안정해 몸의 방향이 약간 쏠린 것이 아웃 판정의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과 선수들 모두 체어맨의 결정이 틀릴 리 없다는 믿음을 보인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을 암시한다. 과연 AI 판정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 기계의 눈으로 분석된 데이터가 인간의 미묘한 상태나 상황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가? 현실이라면 사람의 눈과 감정으로 충분히 고려될 부상 후유증이, 데이터만으로 해석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은 점차 AI 판사 ‘저스티스-44’의 판결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인간의 판단과 기계의 판단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괴리를 직시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AI의 판단에 조금씩 의문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배제와 불안은 현대 사회가 기술 발전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사사기(AI판사)』는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완벽함의 이면에 감춰진 인간성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며, 공정함과 정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AI 판사가 판결하는 미래 사회가 진정으로 공평하고 정당한 사회일까? 기술이 줄 수 있는 편리함과 효율성 뒤에 숨겨진 인간적 고뇌와 딜레마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이 작품은, 기술과 윤리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