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을 예고하는 1차 세계대전 속에서의 유년시절의 언뜻 평화로우면서도 어린 아이 특유의 잔인함이 엿보이는 평범한 일상, 그리고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을 암시하는 듯.

내 유년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 유년시절은 부덴가세 거리가 내다보이는 김 서린 창문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외운 구구단 표였다. 처음에는 커서 헐렁거리다가 나중에는 작아서 꽉 끼게 된 신발을 신고 걷던 등굣길이었다. 손톱으로 참수시킨 개미들이었다. 아버지와어머니가 설교대에 올라 성경 구절을 읽던 일요일이었다. 그때 어머니는<시편>을, 아버지는 고린도전서>를 읽었고 나는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루해하며 부모님의 낭독에 귀를 기울였다. 내 유년시절은 입속에 감추어놓은 1페니히 동전이었다. 동전의 짭짜름하고 톡 쏘는 맛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눈을 감고 혀로 동전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밀면 밀수록 동전은 당장이라도 목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갈 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나는 동전을 목 안으로 최대한 밀다가 갑자기 뱉어버렸다. 내 유년시절은 베개 아래 쌓아둔 책들이자 아버지와 함께 부르던 전래동요이자 광장에서 하던 술래잡기 놀이이자 크리스마스에 먹는 슈톨렌 케이크이자 동물원 소풍이었다. 남동생 프란츠의 요람에 얼굴을 들이밀고 그 애의 조그만 손을 이빨로 꽉 물었던 날도 내 유년시절의 일부였다. 그때 동생은 빽빽대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원래 갓난아이들은 잠에서 깨면 그렇게 울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한 짓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 유년시절은 비밀과 잘못으로 가득했다. 나는 내 비밀을 지키는 데만열중해서 다른 사람들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유 가격이 수백 마르크에서 나중에는 수백만 마르크까지 폭등하는 동안에도 나는 우리 부모님이대체 어디서 우유를 구해오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경찰 몰래 식료품 가게를 습격해서 먹을 것을 구해오는 건 아닌지 걱정해본 적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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