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리데와의 투닥거림.
옷을 주는 행위의 의미.
전쟁 중을 상기시키는 모든 것들.

엘프리데가 내 뒤에 와서 섰다. "여기는 여학교가 아니야, 베를린 토박이. 병영이라고." "네 일에나 신경 쓰시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되레 내가 당황해서 뒷목이 따가웠다. "네가 가르쳐줬잖아, 안 그래?" 나는 도발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까운 말투로 덧붙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왠지 엘프리데의 마음을 사고 싶었다. 그녀와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어찌됐든 애송이 말이 맞아. 특별히 독의 종류별 중독 증상에 관심 있는것이 아니라면 이런 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지. 너는 죽을 준비를 하는 게 재미있나 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울라에게 줄 와인색 원피스를 빨았다. 내가 특별히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울라의 호감을 얻고 싶어서 그 옷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그 옷을 입은 울라를 보면 내 삶이 베를린에서 그로스-파르치로 완전히 옮겨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베를린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옷을 울라에게 주는 것은 일종의 포기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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