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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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고(故) 정미경의 마지막 소설집

 

 

그간 소설이라는 장르는 조심스런 것었는데, 요 몇년 동안 그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창비출판사 온라인 독서모임인 <책읽는당>에서는 매월 문학분야, 인문분야의 책 1권씩을 함께 읽고 SNS를 통해 그 후기를 나눈다. 소설을 잘 안 읽었으니 당연히 모르는 소설가가 대부분인데, 책읽는당 2월도서 《새벽까지 희미하게》 덕분에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산 것 같은 한 소설가를 만났다.

작가의 유작 '못', '엄마, 나는 바보예요', '새벽까지 희미하게', '목 놓아 우네', '장마', 이렇게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후배 작가 2명과 남편의 추모 산문까지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아련해진다.

각 단편 속 인물인 공과 금희, 조, 유석과 송이, 여자 심과 남자 심, 장과 윤. 캐릭터 모두 흔히 볼수 있는 일상의 인물이면서 또 독특했다. 전체적인 색깔이 어둡지만 절망적이지 않다고 해야할까. 삶에 드리워진 불행들을 어떻게 읽어내야할지, 그 불행 넘어로 그래도 살아내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읽어내야할지 그것은 물론 독자의 몫일게다.

소설을 읽으며 단편의 매력, 묘미... 그런 맛을 느꼈다. 아니 작가가 잘 써서 그런거겠지? 짧은 스토리와 몇 안되는 인물, 혹은 화자가 되는 이의 심리 하나만으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 작품해설에서는 <자본주의 세속에 대한 냉엄한 통찰과 이해>,<'말했던 것'과 '말하지 못했던 것'의 사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 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게 이런 거였구나 싶다. 대단한 사건 없는 다섯 편의 단편에서 그토록 팽팽한 긴장감과 강렬함을 느낀 걸 보면 분명 훌륭한 작품임이 맞다.

소설을 다 읽고, 가슴이 아직 뛰고있을 때 지인들과 남편의 추모산문을 읽으며 눈시울이 적셔졌다. 아~ 소설 하나도 허투루 읽으면 안되었구나. 방배동 지하 원룸에서 작가가 전쟁을 치루며 태어난 문장들이었구나. 한 남자의 예쁜 아내로, 두 아들의 엄마로, 또 가족들을 위해 성실히 살아내면서 글을 써내었던 작가. 그녀의  생전에 소설 제목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고 아내를 추모하는 남편의 글은 우리의 짧디 짧은 인생을 돌아보며 숙연해지게 한다.

바보, 내가 그립고 보고 싶거든 내가 두고 온 글 속으로 들어와봐. 거기 냐 숨소리와 눈길과 기침 소리 하나까지도 그대로 다 살아 있어. 조용히 그쪽으로 와봐. 나는 거기에 살아 있어. 떠나지 않았어.
(김병종, 추모산문 중)

 <못>

성공이후 두 번의 실직, 아내와의 이혼, 물건을 자꾸 사들이곤 다시 반품하는 공.
마트 가전매장 판매일을 하는 금희, 시끄러운 공에 비해 말이 많지 않은그녀.  잠시간의 연애후 취직이 된 공은 금희에게 연락을 끊고 금희도 공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제목 <못>처럼 금희에겐 분명 상처의 못이 박혔을텐데, 상처를 대하는 금희의 모습이 단호하다. 길 고양이 점순이의 폭탄병원비에도 그렇게 반응했던 것처럼.

다음에 또 오자.
막 빠져나온 세차 기계를 되돌아보는 금희에게 무심코 말했을 때 그녀의 대답은 뜻밖에 단호했지.

다음. 다음이란 건 없어.

 

 

 

<엄마, 나는 바보예요>

조. 마흔 중반에 어느 정도의 재산을 늘린 자산가. 그리고 꾸준히 환자들을 상담하며 경력을 쌓고 인정받아온 정신과 의사. 부인과 친구 의사들. 아들.
주인공 1인층의 심리묘사와 빠른 전개로 쿵! 하는 결말을 가져 온 단편. 앞서 읽은 <못>에서와는 달리 또 다른 계층의 삶을 이해해본다. 아버지 조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인데 제목과 결말의 초점은 아들에게 있다. 아들의 비극이 곧 아버지의 비극이겠지. "엄마, 나는 바보예요" 주인공의 아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성공한 모습 뒤에 따라온 가족, 자식에 관련된 불안과 불화가 심리적으로 어떤 느낌일지가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유석.  그림책 작가가 된 송이의 소식을 듣고 과거 함께 일했던 시간을 회상한다. 송이는 그 이름처럼 참 예쁠 것 같다. 장애가 있는 동생과 장애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아버지. 하는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시간들을 뒤로하고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린 팬티'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이름을 내는 작가가 되었는데. 슬픈 스토리인데 푸푸, 웃음이 난다. 조그만 놀이터의 모과나무를 안고 있는 송이는... 그렇게 희망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그러니까 썬글라스를 낀 채로 모과나무를 안고 있던 송이.
기억의 멀고 가까움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강렬함으로 정해지는 거라면 그건 아마 가장 가까운 기억이겠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달이 떠 있던 놀이터는 줄이 한량없이 긴 괘종시계의 추처럼 예고 없이 스윽 떠오르곤 했다. 날것의 밑바닥을누군가에게 들켰다고 느끼는 순간, 무릎이 꺾일 만큼 힘든 순간, 어떤 석연치 않은 순간, 그리고 또...... 그 새벽에 송이는 서로가 한층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까? 유석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새벽에 유석이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목 놓아 우네>

여자 심, 남자 심. 스팸이 들어간 김밥을 화장실에서 몰래먹는 각기 다른 두 사람.
여자 심에게 깃든 어린 날의 불행, 남자 심에게 깃든 실연의 불행, 그리고 둘이 주고받는 문자. 신선했다. 근데 진짜 제목처럼 '왠지 목 놓아 울며 씹어삼키는 차가운 김밥'같은 무언가가 생각났다. 이제는 김밥 대신 따뜻한 국물 음식을 한 술 뜨는 두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장마>

다른 작품들처럼 이번에도 두 남녀가 등장한다. 업무차 일본에 자주 간 장과 또 다른 개인적인 일로 일본 초행길인 윤의 만남. 새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남자와 푸우 인형에게 애착증세를 보이는 여자.(우리집 큰딸도 13년째 푸우의 냄새를 좋아하는데ㅋㅋ) 낯선 서로에게 당연히 의심은 기본, 그러나 차츰 거리감이 좁혀지며 서로 이해하게 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한다.

"다시 오게 된다면, 부오또를 한번 더 보고싶어요."
남자의 얼굴이 한순간 환해진다. 고개를 기울여 네게만 알려준다는 듯 조용히 속삭였다.
"아까 해설을 읽어봤는데, 그 방 안에 가득 매달려 있는 동백꽃 중 하나만 생화라더군."
"계절과 상관없이?"
"계절과는 상관없이, 오직 한송이만."

단편들 속에 유독 여름성경학교, 전도사, 새벽기도, 목사... 이런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띄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작은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나 보다. 병을 앓던 힘든 시간에 남편에게 "아빠가 기도해주면 되잖아" 라고 말하며 평온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나 또한 이 책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연로하신 교우분 심방을 다녀온 날 읽었던 터라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정미경 작가가 가족과 지인들, 독자들에게, 또 처음 작품을 대한 나에게 예쁜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분이 될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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