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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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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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1741~1793)는 영.정조 시대에 활약한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라고 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쉰셋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이만 권이 넘는 책을 읽은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책만 보는 바보'였다고 역자는 명명한다. 에세이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18세기 실학자의 글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함으로 책을 펼쳤다.

옮긴이는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두 권의 산문집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낀 듯하다. 이덕무 특유의 감성과 사유를 통해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책이었다고 소개한다. 소소한 일상만큼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 또 어디있을까? 스마트폰으로 소소한 일상의 단상을 기록하기 좋아하는 나처럼 조선의 이덕무도 붓과 먹으로 써내려갔을 일상의 문장들을 만나보았다.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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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부터 마음에 잔잔히 와 닿았다. 어느 봄날 복숭아꽃을 보면서 붉은 물결이라 표현하며 그 풍경에서 온화함을 즐기는 멋! "항상 나의 뜻을 삼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자연의 온화함을 자신의 삶에 담아내고자 함을 그림처럼 표현해준 문장이다. 글이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표현이 참 멋지다. 글을 읽을 때, 그림이 그려지는 글, 그런 글을 써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듯 이덕무는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같다. 매화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매탕'이라는 자호를 쓸 정도였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알듯하다.

한자로 남겨진 조선 학자의 글을 읽기 쉬운 우리말로 다시 옮기는 작업을 상상해보니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다. 한문으로는 고작 2~3줄이 한글로는 긴 문장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옮긴이의 번역과 해석을 같이 읽어나가는 맛이 있다. 이덕무의 글을 좋아하고 매니아가 될만큼 그 사상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이덕무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p.73)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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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선귤당농소》

"다른 향기가 더 좋다고 나의 향기를지우고, 다른 색깔이 더 빛난다고 나의 색깔을 없애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매화의 향기와 색깔을 지녔다면 매화답게 살면 되고 유자의 향기와 색깔을 지녔다면 유자답게 살면 된다. 향기가 진한 장미도 아름다운 꽃이고 향기가 없는 모란도 아름다운 꽃이다." (옮긴이의 글)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선귤당농소》

"마음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뜻은 애써 참으려고 해도 표현하게 되어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든지.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고, 뜻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글이 바로 진실한 말이고 참된 글이다."(옮긴이의 글)

"어린아이가 울고 웃는 것은 타고난 천성이다. 어찌 인위적으로 한 것이겠는가! 어른들은 기쁘고 노여운 감정을 거짓으로 꾸민다. 어린아이에게 부끄러워할 일이다." 《이목구심서3》

빗줄기에 봉선화가 다 떨어진 것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어린 여종을 보며 마치 패왕별희의 항우와 우미인이 이별할 때와 같다는 공감의 표현.
미미한 풀벌레도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천성에 따라 사는데 사람은 왜 천성대로 살지 못하고 권세와 명예와 출세를 탐하는 마음에 쉽게 변질되는가를 묻는 질문.
방안에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관찰했던 생물학자와 같은 모습들, 그 관찰에서 나온 삶의 지혜와 신기한 발견을 글로 기록했다는 것.
이런 다양한 면에서 이덕무의 문장은 <고전>의 매력에 한껏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자연 만물과 하찮게 여기던 벌레 하나를 통해서도 사람의 됨됨이와 삶의 지혜를 배우고, 특별히 어린아이들의 동심에서 배우고자 하는 바가 컸던 이덕무. 따뜻함과 더불어 강인함, 인감됨에 대해서 함께 본받을 것이 많은 책이었다. '온도'라는 글자 때문에 혹여 베스트셀러를 흉내내는 가벼운 책은 아닐까 잠깐 생각했는데 그 깊이와 온도가 한층 탁월한 책이었다.

또, 이 책이 가진 <고전>에 대한 번역과 해석의 멋이라면 번역자의 사유와 질문에도 있었다.
- 사막을 건너다가 우연히 전갈을 만났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죽느냐 전갈이 죽느냐 생사의 결판을 내야하는가?
-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적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인긴 아니면 말이 적은 사람인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토하고 싶고 내뱉고 싶은 말과 글을 쓰지 못한다면 가슴이 멍들고 정신이 병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병들게 된다. 이치가 이러한데 어떻게 글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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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얼 출신으로 가난 중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위해, 넓고 깊은 앎을 위해 책을 빌려서라도 읽으며 붓끝으로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문장을 써내려 갔을 조선의 이덕무를 가만히 그려보며 책을 덮으니 추운 겨울날이 따스해지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문장, 따뜻한 문장, 그러나 그 어떤 문장보다 힘있는 문장들을 만나보길 추천해 본다. 나도 이덕무에 관한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머리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써 꾸미거나 자꾸 다듬으려고 한다.
그러나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 가득 쌓여 있는 말과 글을 도저히 참거나 막을 수 없을 때 그 말과 글을 그냥 토하고 뱉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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