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에 봉선화가 다 떨어진 것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어린 여종을 보며 마치 패왕별희의 항우와
우미인이 이별할 때와 같다는 공감의 표현.
미미한 풀벌레도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천성에 따라 사는데 사람은 왜 천성대로 살지 못하고 권세와 명예와 출세를 탐하는 마음에 쉽게 변질되는가를 묻는
질문.
방안에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관찰했던 생물학자와 같은 모습들, 그 관찰에서 나온 삶의 지혜와 신기한 발견을 글로 기록했다는 것.
이런 다양한 면에서 이덕무의
문장은 <고전>의 매력에 한껏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자연 만물과 하찮게
여기던 벌레 하나를 통해서도 사람의 됨됨이와 삶의 지혜를 배우고, 특별히 어린아이들의 동심에서 배우고자 하는 바가 컸던 이덕무. 따뜻함과 더불어
강인함, 인감됨에 대해서 함께 본받을 것이 많은 책이었다. '온도'라는 글자 때문에 혹여 베스트셀러를 흉내내는 가벼운 책은 아닐까 잠깐
생각했는데 그 깊이와 온도가 한층 탁월한 책이었다.
또, 이
책이 가진 <고전>에 대한 번역과 해석의 멋이라면 번역자의 사유와 질문에도 있었다.
- 사막을 건너다가 우연히 전갈을 만났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죽느냐 전갈이 죽느냐 생사의 결판을 내야하는가?
-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적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인긴 아니면 말이 적은
사람인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토하고 싶고 내뱉고 싶은 말과 글을 쓰지 못한다면 가슴이 멍들고 정신이 병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병들게 된다. 이치가 이러한데 어떻게 글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